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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새롭게 발견되어야 한다(3-2):자연적결혼의한계


자연적 결혼의 의미


여자 나이 50세면 이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결혼한 여성은 더욱 그러하다.

부부가 각자 본성대로 산답시고 결혼의 '자연'상태에 머물러 사는 것을 삶의 의미의 전부라 여겨왔다면, 나이 50이면 그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젊은 시절 두 남녀가 만리장성을 쌓은 것 때문에 그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는 데에 삶의 의미를 뒀던 결혼생활인 것이다. 


K의 경우처럼, 대부분 부부는 각자 성욕, 본능적 충동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중에 자녀도 낳고 가정의 경제적 부를 이루기도 했을 것이다.

많은 부부가 나이 50을 넘어가면서, 결혼의 의미, 그리고 인생의 의미의 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만리장성을 쌓은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결혼의 의미를 다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부부는 나이가 60이 되건, 70이 되건 50대에 이룩한 자연적 결혼의 결말을 지루한 드라마처럼 그냥 연장해 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여자 나이 50이 되었는데, 앞으로 살아갈 세월이 또 다른 50년을 제시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자연적 결혼이 전부라 여겨 왔고, 더 이상 배우자로부터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없는 가운데 앞으로 50년을 더 살라 하면, 절망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여기서 내가 성적 욕구, 성적 흥분을 말한다고 해서, 결혼의 의미가 꼭 그런 이슈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에 대한 책임에서는 벗어나지만, 자녀 인생에서 자녀 스스로 이룩해 가는 성취와 성과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자녀들이 세상에서 거둬 온 전리품을 부모의 눈앞에 펼쳐놓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자연적 결혼 생활에서 얻는 의미도 즐거운 것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내가 결혼해서 살만큼 다 산 것 같은데 이제 절반 밖에 못 살았다는 데에 있다.

그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나이 50을 넘기면서 결혼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은데, 앞으로 50년을 더 살라고 하면 기절할 일이 아니겠는가?


자연적 결혼의 한계

100세를 살아야 할 이들 부부의 선택은 세 가지가 되겠다.


첫째,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모양대로 삶을 연장해 가는 것이다.

둘째, 황혼이혼이다.

셋째, 졸혼이다.


앞의 글의 K가 자기만의 공간, 편안함, 안정감을 찾아가는 동안, 남편과의 관계는 아주 안 좋아졌다.  

K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을 위한 작업을 하면서 1년을 보냈다.

1년 후에 부부의 공간으로 돌아와 보니, 서로가 매우 생소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K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 보니까 너무 좋더라. 남편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나니까, 가장 나 다워 지는 것 같더라. 나는 이것이 너무 좋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 자신 만의 삶을 살아라. "


K는 가정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황혼이혼이냐 졸혼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K는 자연적 의미의 결혼의 의미의 종말을 맞은 셈이다.


이 외에는 방법이 없는가?


100세 시대 부부관계는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서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관계를 정리해 가는 자연적 결혼관계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위한 새로운 부부관계로 재설정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는 경계를 정하고 상호 독립하여 고유한 자기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부부관계만큼은 그 예외이다.

왜냐하면 결혼의 의미는 '부부가 하나 됨'에 있기 때문이다.

자연적 관계로서 결혼관계에서 '부부의 하나 됨'은 육체적 결합을 의미했고, 보다 온전한 결합을 위해 정신적 결합을 추구하는 것을 강조했다.

즉 한 몸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도 하나여야 함이 강조된 것이다.


100세 시대의 '부부의 하나 됨'은 다른 차원, 즉  거론되어야 한다.

젊은 부부가 결혼할 때, 그 결혼의 이념이 바로 그것이었다.


  "장성하여 부모를 떠나 남자와 여자가 연합함"


이었다.

그러한 결혼의 의미가 나이 50에 이르러 퇴색하기 시작했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연적 결혼의 결말에 이른 것이다.


K 가 남편에게 하지 못한 것


K의 남편이 남편으로서 역할을 해 준 것에 대해 K는 긍정적 평가해 왔다.


결혼 전 연애할 때 남편은 데이트할 때마다 꼭 K의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연애 기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K에게 맞춰 주변의 모든 관계와 환경을 재구성해 주는 남자였다.

결혼하기 전에 K가 예비 남편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 남자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 그리고

     "이 남자는 나를 위해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구나"였다.


결혼한 후에도, 남편은 K를 크게 실망시키지 않았다.

남편은 K의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 훌륭한 슈퍼바이저였다.

K가 이런저런 공부를 한다거나 학위취득을 위해 대학원에 간다거나 할 때마다 남편을 아내를 자랑스러워해 줬다.


K가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면, 남편의 그런 지지와 격려를 통해 K 자신이 남편을 이상화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돈 잘 벌어다 주고, 아내가 뭘 하든지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며, 매우 이상적인 남편으로서 역할이 K가 4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서서히 부담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이 K에게 무조건적 지원과 공감으로 너무 잘해 주니까, 남편이 좀 서운하게 하는 일이 발생해도 K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길이 차단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K는 평소 내가 강의하는 중에,


  "너무 좋은 남편은 나쁜 남편이다"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K 자신이 여성으로서 남편의 보호가 필요할 때, 예를 들면 집에서 먼 곳에서 약속이 있어 갔다가 올 때 남편이 데리러 와주기를 원할 때, K는 어이없이 거절당하고 마는 것이다.

특히 주말이 되면 집안일이 잔뜩 쌓여 있는데, 남편은 피곤하다고 방에 들어가 자게 되면서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던 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까 크고 작은 분노가 목까지 차 올랐다.

그러나 K는 남편은 너무 좋은 남편이라는 생각과 가정의 화목함을 깰 수 없다는 신념으로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여러 해를 보낸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헌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15평의 작은 오피스텔을 구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을 케렌시아로 명명하면서 남편과 구별된 삶을 누리게 된 것이다.


K의 후회는 "가정의 화목을 위해 그때그때 화를 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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