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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5) : 청소년기의 성적 환상

성적 환상의 범람과 승화



탐구자 : 보통의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보편적인 문제로 돌아와 보죠. 청소년기에 넘치는 성적 리비도로 인하여 성적 환상이 충만할 때인데 청소년들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자위행위’인 것 같아요. 청소년들 중에는 그 문제를 신앙적으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꼭 신앙을 갖지 않은 청소년들도 대부분 하는 고민일 것 같아요.


분석가 : 이 문제의 대상은 남자 청소년이 되어야 논의의 초점이 분명해질 것 같네요. 여자 청소년은 이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남자 청소년은 거의 98%가 이 문제에 해당된다고 봐야 합니다. 자위행위의 문제 역시 신체와 정신의 갭의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 경우는 정신의 발달이 신체 발달을 좇아가지 못한다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성적 리비도가 너무 넘쳐나서 신체가 감당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청소년기에 성적 리비도의 과다함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만들기란 불가능합니다. 그 시기에는 그것이 정상이고 건강한 것입니다.  


탐구자 : 개중에는 정신력으로 신앙으로 이겨내겠다고 하는 청소년들이 있고, 또는 아예 그런 갈등 없이 자위행위를 왜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청소년들이 있더라고요. 


분석가 : 그 두 부류는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일단 청소년기에는 성적 리비도가 넘쳐나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처럼 정신력으로 신앙으로 이겨내겠다고 할 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강박증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임상에서 그런 청소년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은 죄의식과 싸우기 위해 주로 강한 강박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미 강박증상이 심각한 경우, 사고(thought)에 의해 성적인 리비도가 일찍부터 억압되어 왔다면 후자의 경우처럼 자위행위를 할 필요성을 못 느끼죠. 이런 청소년은 몽정도 없고, 야동을 보고자 하는 충동조차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연애가 불가능하고, 이성의 성, 성적 환상, 성적 리비도 등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낯선 주제로 남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되게 만드는 정신적 기제는 바로 ‘죄책감’ 때문이죠. 죄책감이라 함은 신앙적인 죄책감도 있지만, 정신 영역에서 경찰기능을 하는 초자아가 너무 강한 경우 초자아가 자아를 억압하여 소위 ‘나쁜 짓’을 못하게 만드는 심리적 억압의 결과로써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 : 청소년들에게 신앙적으로 가르치기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자위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나도 목회자로서 청소년 사역을 할 때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번은 헌금함에서 청소년 학생이 넣은 질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때에 자위행위를 해도 되나요? 만일 목사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 나는 그 행위를 멈추겠습니다.’ 그때 제가 준 답변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습니다. 그 질문지를 받고 나는 ‘율법적’으로 훈계를 하는 방식으로 설교했습니다. “자위를 할 때는 성적 환상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 환상이 작동할 때 진행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면서 자연스럽게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한 주간 동안 고민했습니다. 과연 내 답변이 정답을 말한 것인가? 정답을 말했을 뿐, 청소년들의 삶을 반영하지 못해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 주에 그 주제를 다시 꺼내어서 설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은 ‘죄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라고 설교했습니다.


탐구자 : ‘죄 지을 수 있는 능력’이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이긴 하나 왠지 성경적이지는 못한 것 같은데요? 


신학자 : 물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입니다. 아까 분석가께서 심한 강박증을 언급하면서 연애도 불가능하고, 성적 환상이 메말라 버리고, 이성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경우에 처한 사람은 곧 ‘죄지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담임 목사의 입장에서 그 성도를 보게 되면, 그는 매우 경건한 성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바로 그런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 5:20)고 말합니다. 


탐구자 : 그렇지만 죄인 줄 알고 반복적으로 짓는 죄 아닙니까? 


신학자 : 그렇게 정죄하기는 쉽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정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 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타자에게 투사하기 위해 정죄를 강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청소년기의 자위행위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이 그 몸에서 넘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 수정된 설교의 요지입니다.  


분석가 : 그렇습니다. 성적환상이 많은 죄를 구성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큰 복입니다. 성적환상은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환상 영역의 가장 기초를 이루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적환상은 우리 인간 본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실만 가지고 살아가면 인과관계에 매여서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성적환상을 가지고 얼마나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목표 중 하나는 성적 리비도를 어떻게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키느냐는 것이었죠.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적환상이라는 것은 마치 전기와도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그 전기 덕분에 온갖 다양한 차원의 삶을 영위해 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이 성적 환상이 본능적인 것이고 생명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이 자위행위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런 성적 리비도를 가지고 아동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다양한 삶을 열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청소년기에 마땅히 가져야 할 도전의식이라고 봅니다. 입시 문제에 쫓기는 청소년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니까 몸을 통한 자아실현이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바로 성적 환상에 그대로 노출되기 십상이죠. 청소년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운동과 몸으로 할 수 있는 놀이들을 하고, 고전을 읽고, 고전음악을 듣고 미술전시회도 갈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청소년들이 성적 환상을 신체로 발버둥 쳐 가면서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사용하는 방식들을 터득해 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 본능적으로 휘둘리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 될 것이며, 아울러 거칠게 튀어나오는 공격성도 순화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탐구자 : 과연 우리나라와 같이 입시지옥 같은 분위기에서 청소년들의 그런 다양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철학자 : 생명현상은 자발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현상이 범람할 정도로 넘쳐나는 청소년 시기에는, 건강한 청소년일수록 주변 환경이 어떠하든지 스스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갈 수 있습니다. 자발성은 절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 하지만, 그것은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들의 이야기이고,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는 시간이 많을수록 잡념이 많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으로 놀이를 하지 못한 청소년일수록 잡념이 들어올 때는 성적공상의 형태로 가장 우선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성적공상이 많이 발생할수록, 그만큼 자발성이 떨어집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이라기보다는, 생명현상이 발현되지 못한 결과,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탐구자 :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실증과학에서 이미 증명된 데이터를 각 분야의 지식으로 분류하고 체계화한 사실적 내용들이겠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조금 전에 분석가가 말씀하신 허구의 세계가 매우 중요할 것 같군요. 


분석가 : 옛날에는 서구에서도 청소년, 또는 사춘기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산업화의 결과로 나온 개념 중 하나죠. 산업화로 인해 교육제도가 체계화되면서 한 사람이 자라서 산업현장에 진입하기 전까지 사회활동이 유보되는 기간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청소년기입니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사회가 복잡한 구조를 갖추게 되고, 세계에 대한 지식이 많아졌기 때문에, 사람은 보다 폭넓은 지식을 배우는 기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청소년기라는 유보기간을 가지게 되면서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계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가지게 됩니다. 만일 사람이 그런 허구적 상상력 없이 사실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삭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실만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 볼까요? 그런 세상에서는 결혼을 해도 성관계에 있으나 사랑은 없게 될 것입니다. TV에서는 뉴스와 다큐멘터리는 있으나 드라마나 예능이 없어 슬픔도 웃음도 낭만도 없게 될 것입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자연과학이나 객관적 역사만 있고, 문학, 사회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이나 음악 미술 같은 예술의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겁니다. 


 탐구자 : 그런 세계는 인과관계만 있고 스토리나 내러티브가 없는, 무미건조하고 황량한 세상이 되겠군요.


분석가 :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다행인 거죠.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나 한 인간이 하루의 삶의 내용이나, 또는 TV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내용을 보면 사실적인 것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허구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서사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로서의 정체성, narrative identity)입니다. 청소년기가 바로 사회적 책임감이 유보된 가운데 허구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특권적 기간입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세계를 알기 위해 객관적 지식을 터득해 가는 공부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풍성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고전 문학’을 많이 읽기나 예술의 세계에 자신을 노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이런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구성할 때, 성적 본능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승화시키는 차원들을 창출해 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삶을 구성해 나갈 때 청소년들은 정신과 신체의 갭을 줄여나가는 자발성을 터득하게 되면서 자신감 있는 몸을 획득할 뿐 아니라, 자존감이 높아지는 존재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노력을 하는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면 진정한 ‘몸적 자기(bodily self)’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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