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결혼은 상대방이 아니라 관계를 사랑하는 것

결혼 말고 연애


어떤 아들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는 결혼 안 할 거예요. 나한테 그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아들에게 왜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아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번 돈으로 아내와 내 자식이 다 함께 써야 한다는 게 나는 용납이 안돼! 나 혼자 쓰기도 부족한데, 내가 땀 흘려 번 돈을 왜 내가 나눠 써야 해?"


어머니가 기가 막혀하며 물었다.


  "너 지금 여자 친구도 있잖아. 너는 어릴 때부터 연애 대장이었잖아."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자를 만날 때마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합의한 후에 연애를 해. 결혼 말고 연애만."


이 아들이 말하는 '결혼 말고 연애'는 오늘날 이대남이대녀의 풍속도 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모든 이대남이대녀가 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만나면 싸우는 연애


어떤 상담자가 만난 남자 청년은 여자 친구에 대한 난감한 이야기를 했다. 


  "제가 이 여자를 만나기만 하면 둘이 그렇게 싸워요. 만난 지 100일이 넘었는데 만날 때마다 싸우지 않는 경우가 없어요.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은 그러지 않았거든요. 평소에 잘 지내다가 어느 날 싸우게 되면서 결국 헤어지게 되더라고요. 그녀들은 평소에 자기 본성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어느 날 화를 내면서 자기 본색을 다 드러내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여자가 그렇게 돌변하는 것에 질색을 하게 되면서 손절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 만나는 이 여자는 첫날부터 싸웠어요. 만날 때마다 싸우는데, 예전 같으면 벌써 헤어졌죠. 그런데 이 여자는 싸우면 싸울수록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 여자를 떠날 수가 없어요. 제가 처음으로 '아~ 나는 이 여자하고 결혼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상담을 오게 된 것은, 제가 이 여자 하고 결혼하면 불행해지지 않을까요?"

이 내담자는 아마도 진정한 자기 짝을 만난 듯하다. 

이 청년은 평소 모범생으로 살아오면서 감정에 대한 통제를 잘해 왔을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부모가 정해 준 규범을 잘 따르고 화를 잘 내지 않는 반면, 평소 순응적이며 거절을 하지 못하는 청년일 수 있다. 

이 청년이 원하는 여성은 평소 고분고분하고 희생적인 모성성이 풍부한 현모양처형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자기 속을 뒤집어 놓는 강적을 만난 것이다. 


만일 이 청년이 평소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현모양처형의 여성을 만났다면, 결혼 후 그녀는 모성성을 십분 발휘하는 헌신적인 여성일 수 있다.

그러다가 그가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관계의 역전을 꾀하는 아내의 반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중년 아내가 내면에서 올라오는 반란으로 남편의 삶을 뒤집어 놓을 것이다. 

이런 유형은 지금 40대 부부에게 매우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대남이대녀가 지금의 40대 이후 세대와 다른 점이 바로 이런 현상이다. 

중년기에 일어나야 할 사건들을 연애 시절에 겪게 되는 것이다. 


이 청년은 왜 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가?


첫째, 자기 내면에 억압된 이면 인격을 드러내어 주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의 진정한 짝, 여성성을 만난 것이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영적 동일성을 확립해 가게 된다. 

이 청년은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던 포인트를 자극시켜 주는 그 여성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매력 포인트가 갈등의 포인트(**)


누구나 결혼 전 이성에 대한 이상적 조건을 10가지 정도를 만들어 놓는다.

그 조건에 맞는 상대를 만나고자 하지만 그 이상적 조건에 따라 결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대방에 대해 첫눈에 반하거나 차츰 매력을 느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적 조건을 상대방으로부터 하나씩 확인해 가면서 결혼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단 한 가지의 매력 포인트에 반하게 되는데, 그것도 평소에 10가지 이상적인 조건과 전혀 무관한 것일 수 있다.

오히려 한 가지 매력 포인트는 까다로운 이상적 조건을 다 덮어 버린다. 

이성에 대해 반할 때는 상대방의 인격 전반을 판단하여 반하는 법은 절대로 없다.

단 한 가지에 반하는 것이다. 


원래 결혼이란 이렇게 정신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서서히 정신이 들기 시작하면서 각자 앞에, 그리고 서로 앞에 냉혹한 현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하면 연애할 때 매력 포인트였던 것이 이제는 갈등의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의식은 10가지 이상적 조건을 만들어 냈지만,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그 무엇인가가 상대방을 보는 눈에 콩깍지를 씌우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이런 과정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한 가지 매력 포인트에 반한다는 것은, 


  "바로 저 사람이야 말로 유아기부터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하는 무의식적 자각이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어떤 여성은 연애시절, 많은 남자들이 너무 입을 가볍게 놀리는 것, 자기 자랑을 마구 늘어놓는 것,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러다가 과묵한 남자를 만나 그것을 매력포인트로 느끼게 되면서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는 남편이 너무 말이 없음에 대해 답답하게 느끼면서 자기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너무 반응이 없다고 공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결혼은 '관계'를 사랑하는 것(***)


연애할 때와 결혼한 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연애할 때는 각자 정체성을 자신 안에서 찾는다.

연애가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상대방 안에서 찾게 된다.

내가 상대방 안에 있고, 상대방이 내 안에 있음이 확인되고 그것을 일평생 연장하고자 할 때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상대방이 나와 독립된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기(self)>로 여겨질 때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결혼하고 나면 부부는 정체성을 이제 상대방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찾게 된다.   

신화학자인 조셉 켐벨은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신화의 힘],39)라고 말한다.

각자는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관계 안에서 부부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연애할 때는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결혼하고 나면 서로의 관계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셉 켐벨은 "결혼이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조한다. 


결혼한 부부가 쉽게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가, 상대방을 미워할 수는 있어도 <자기> 관계에 있는 배우자이기 때문이다.  

캠벨은 <자기>라는 개념을 '신화적 이미지'라고 말한다.

결혼은 연급술적 신화를 가지고 있는데, <자기> 안에서 둘이 하나로 되기 때문이다.  


IMF 때에 많은 가정이 이혼 위기를 맞아 많은 남편들이 가정에서 쫓겨났다.

더 이상 돈을 벌어다 주는 능력이 없으니 남편 역할도, 아버지 역할도, 가장 역할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런 가정의 부부는 부부였을지는 몰라도 부부'관계' 안에 있지 않았다.

부부가 각자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을 뿐, <자기>로 연결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로 연결되어 연금술적 승화를 이룬 부부라면 절대 이혼할 수 없다.


앞의 예에서, 결혼하기 거부하는 청년이 자신이 번 돈으로 아내와 자식과 나누어 써야 한다는 것이 용납이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관계를 맺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자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는 새롭게 발견되어야 한다(3-3): 자유함의 결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