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거절하는 대상이지만 흥분시키는 대상

페어베언의 흥분시키는 대상, 감질나게 하는 대상

흥분시키는 대상


거절하는 대상-흥분시키는 대상

C라는 여성은 아버지의 사랑을 그렇게 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오빠를 더 사랑했고, C는 오빠가 먹다 남은 부스러기를 먹는 느낌으로 살았다.

아버지가 오빠 선물을 사다 주면서 원 플러스 원에 걸려 하나를 더 받아 온다거나, 또는 오빠의 선물을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는 것을 C에게 주었다.

C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좋았다. 


누구는 아버지로부터 세뱃돈을 만원 받은 것에 감격했다가, 자신의 형이 10만 원을 받는 것을 보고 감격을 거두고 1만 원 받은 것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는 등,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힘들어한다.

그렇지만 C의 경우는 좀 다르다.

원 플러스 원이든, 사은품이든 아버지로부터 뭔가를 받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고마워했다.

아버지로부터 구십 아홉 번 거절당하면서도 어쩌다 한번 받는 것을 감지덕지로 여기게 된 것이다. 


페어베언(Ronald Fairbairn)에 의하면, 이런 아버지는 거절하는 대상이자, 동시에 흥분시키는 대상이다.

아버지가 거절하는 대상이기만 한 것이라면 아예 기대도 하지 않을 것이지만, 어쩌다 한번 주는 것으로 기대를 멈추지 않고, 스스로 희망고문하면서 어쩌다 한번 주는 것에 감격하는 것이다


흥분시키는 대상-감질나는 대상

1970년대 어느 시골의 <가게>라는 곳이다. 

<가게>는 마을 슈퍼가 생겨나기 전의 형태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어머니는 이제 갓 나은 아기를 양육하면서 가게를 돌봤다.


이런 어머니는 의도하지 않게 아기에게 감질나게 만드는 경험을 많이 하게 만들고 말았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 아기는 전력을 다해 젖을 빨고 있다.

손님이 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오는 순간, 어머니는 젖을 빠는 아기의 입과 젖을 분리시킨 후 아기를 옆에 두고 손님을 맞으러 가야 한다.

아기는 먹다 말고 어머니의 젖을 찾기 위해 입맛을 계속 다셔야 한다.

손님이 물건을 사고 문을 열고 나가면 어머니는 아기 곁에 와서 아기를 안고 다시 젖을 아기의 입에 물리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아기의 정서적인 상태는 어떠하겠는가?

그런 어머니는 아기에게 감질나게 만드는 것이고, 아기에게 어머니는 흥분시키는 대상으로 남는다. 


미국의 자아심리학자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감질나게 한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상 그 자체가 유보적이라는 것, 즉 주겠다는 약속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 같이 있고, 유혹과 좌절이 같이 있기 때문에 감질나게 한다" 


거절하는 대상이자 흥분시키는 대상이나 감질나게 하는 대상이자 흥분시키는 대상의 공통점은 바로 주겠다는 약속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 공존하고, 유혹과 조절이 공존하는 점이다.


그나마 거절하는 대상이자 흥분시키는 대상보다는 감질나게 하면서 흥분시키는 대상이 낫다.

사실은 두 대상이 다 거기서 거기다.

개인의 정서 환경이 좀 다를 뿐이다. 

전자는 100번 중 99번을 거절하고 한번 주는 것이지만, 후자는 그래도 거절이 전자보다 훨씬 적다.



C의 흥분시키는 대상으로서의 전 남편

 

이글 처음에 등장한 C는 어떤 남자를 만나는 동안 짧은 기간 안에 금목걸이, 금반지, 다이어 등의 선물 공세로 쉽게 몸을 허락했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모텔로 향했고, 만난 지 6개월도 안 되어 임신을 하고 말았다. 

배가 불러오기 전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시댁에는 돈이 많았고, 남편은 한량이자 마마보이였다.

아들에 대한 모든 것을 시어머니가 관장했고, 아들은 시시콜콜 자기 주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다 했다.

심지어 남편은 연애할 때 아내에게 무슨 선물을 얼마 주고 해 줬다는 둥, 결혼 후에 아내가 시어머니를 뭐라고 욕하더라는 둥, 부부싸움의 동기가 된 이슈가 뭔지, 심지어는 부부관계를 할 때 체위까지 구체적으로 어머니에게 말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부부싸움, 관계 체위까지 다 피드백해 주면서 아들의 내외관계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들이 아내에 대해, 시어머니에게 대해 아내가 욕한 것까지 그리고 자신이 파악한 처가의 약점까지 모아서 어머니에게 보고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아내는 친정어머니에게 알렸다.

결국 두 집안싸움으로 번져, 양가 부모의 합의에 따라 두 부부는 이혼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부부는 자신의 결혼생활 주체가 아니었다.  

이혼 후 1년이 지나면서 남편은 다른 여자가 생겼다.

아내는 이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다.

자신에게 연애할 때 이런저런 선물을 해 주던 남편을 잊을 수가 없다.

C는 자신의 아버지가 거절하는 대상이자 흥분시키는 대상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런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을 알리가 없다. 

전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다.

전 남편은 C의 약점을 알고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제는 전남편이 그녀에게 값비싼 금반지나 금목걸이를 사줄 필요도 없이, 1~2만 원짜리 선물만 사다 줘도 그날에는 모텔로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C는 결혼생활하는 동안 전남편이 자신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는지도 알고 있고,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전남편을 만나면 뭔가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이 팔려 남편의 욕망의 방향을 알지 못한 채, 그 선물만으로 자신은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남편은 아버지와 똑같이 거절하는 대상이면서 흥분시키는 대상인 것이다.


C는 99개를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의 범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내게 잘해 준 하나에만 의식을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C와 같이 결핍이 많은 사람이 이런 거절하면서 흥분시키는 대상을 만나면 하나를 얻기 위해 아흔 아홉을 착취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C 는 착취당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하나를 주는 것에 흥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은 상대방이 아니라 관계를 사랑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