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사고와 공황장애 그리고 시대정신
공황장애는 '연예인병'이라 할 만큼 연예인들 중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이 많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경규, 김구라, 이병헌 등이다.
그 외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연예인이 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공황장애는 고치기 힘든 병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정신분석가는 공황장애 치료가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공황장애가 오는 이유를 알면 치료는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단, 공황장애는 집단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병이라고 보면 된다.
나 자신이 개별화가 잘 안 되었다면, 나도 언제든지 공황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연예인은 집단의 투사,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그러한 인기에 연연하는 연예인이라면, 자기가 받는 인기의 오르내림에 따라 울증과 조증 사이를 수없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연예인들 사이에 인기의 등급에 따라 다른 연예인을 비교 대상으로 삼고 있거나, 타 연예인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고, 타 연예인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는 등, 인기 정도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는 극도로 집단적 사고를 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인기 정도에 관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개별화가 잘 되어 있는 사람으로서 공황장애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게 보면, 공황장애라는 것은 꼭 연예인에게만 찾아오는 병이 아니라, 집단화되어 집단적 사고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병이다.
40대 중반인 K는 3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그녀에게는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하나 있다.
K에게 공황장애가 시작된 것은 4년 전에 남편이 교통사고 사망한 이후 1년이 지나면서부터였다.
남편은 4명의 형제 중 막내였다.
그는 원래 마마보이여서 결혼하고도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결혼 후 남편은 제대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고, 가정 경제는 아내가 책임져야 했다.
남편은 철없는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해 어머니에게 졸라 억대가 넘어가는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면서 친구들과 압구정동, 청담동 등 강남 일대의 클럽을 전전하였다.
이런 류의 마마보이가 그렇듯, 꼭 교통사고를 일으켜 몸져눕기도 여러 차례 했다.
마침내는 이 남편은 스포츠카의 본성을 찾아주느라 새벽 2시 서울 도심에서 쌩쌩 달리느라 충돌 사고를 일으켜 사망한다.
이때부터 시어머니가 이 집안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보험에서 받은 보험금을 어머니가 관리하면서 그동안 지옥에 가면서도 눈에 밟힌다는 막내 아들을 위해 모아 놓은 돈으로 K의 가족을 책임지기로 했다.
시어머니는 K에게는 너무나도 자상한 어머니였다.
남편이 사망한 후, K는 친정보다 시댁과 급격하게 관계가 좋아졌다.
자녀들의 등록금과 용돈 그리고 생활비를 시어머니가 다 대 주겠다는 것이었다.
K는 남편이 죽은 후, 시어머니 덕에 오히려 더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대신 K는 모든 것을 시어머니에게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K는 그런 의존 상황이 자신을 공황장애로 몰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K는 남편이 사망한 후, 모든 상황이 예전보다 더욱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남편은 친구들과 노느라 맨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늘 사고만 치던 사고뭉치였다.
K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 주기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남편과 2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남편의 넓은 품과 안전한 울타리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밖에서 사고만이라도 안 쳤으면 했으나 20년 동안 경찰서 호출을 자주 당하여 늘 불안에 사로잡혀 살아야 했다.
이제 망나니 같은 남편 사라지고 시어머니가 개입하자 모든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K는 남편의 자리를 빈자리로 남겨 둔 부분에 대해, 그리고 남편이 떠나간 데 대해 애도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 또는 중요한 가족이 떠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는 애도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당사자는 그 사람이 떠나간 세상을 제대로 살게 되고, 현실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만일 중요한 사람이 떠나가는 것에 대한 애도를 하지 못하면,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너무 잘해주니까, 오히려 남편이 죽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K는 남편의 떠나감에 대한 애도를 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K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
이제 40대 중반인 K는 70대 후반인 시어머니에 자신과 자녀들의 인생과 미래까지 맡기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만일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남편의 형제가 많은 관계로 재산을 제대로 물려받기도 힘든 상황이 된다.
그렇지만 K에게는 이런 상황도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나중 일이고, K는 지금이 좋은 것이다.
모든 상황을 시어머니에게 맡기다 보니, 시어머니는 마치 딸을 챙겨 주듯이 며느리를 보살폈다.
K는 이제 시어머니로부터 독립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K는 모든 사고를 시어머니가 사고하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시어머니의 감정대로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K는 자신만의 고유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집단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황장애에 많이 시달린다.
이유는 바로 집단적으로 살아온 것 때문이다.
과거에도 분명히 집단적 사고를 많이 하고 살았다.
특히 조선시대는 집단적 사고 체계로서 유교를 숭상하였다.
그 당시에는 공황장애라는 용어도 없었겠지만, 공황장애를 앓아 본 사람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집단적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같이 전체주의적 사회라면 집단적 사회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하지만, 북한 사람이 공황장애의 증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사치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왜 집단적 사고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우리 사회가 유교사회나 전체주의 사회에 비해 훨씬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유교적 사회나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사회도 개인도 개별화된 삶을 살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1970년 이후 다섯 번의 세대 변천(유교세대, X세대, Y 세대, N 세대, MZ 세대, 최근의 알파 세대)이 있었다.
K의 경우, Y 세대로서 X 세대 이전의 유교사회 세대에 속한 시어머니의 비위에 맞춰 살고 있다면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
각 세대마다 시대정신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살지 못하면, 무의식이 반란을 일으킨다.
과거 60대를 넘어선 나의 세대에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면서 아무런 상처 없이, 결핍 없이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1960, 70년대에는 거의 대부분 그런 사랑 결핍과 돌봄의 부재에서 살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아동 또는 청소년 등에게 나타나는 정신적인 증상 같은 것은 없었다.
당시에는 사회 시스템이 집단적이었기 때문에 각 개인에게 개별화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였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사회가 분화되어 가는 만큼 개별적인 삶, 나만의 고유한 사고, 나만의 고유한 감정 등으로로 스스로 개별화하지 못하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시대정신에 어긋나게 되면서,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을 일으키게 된다.
사회가 발달해 가고 분화되어 가는 만큼 개인의 정신과 정서, 영성, 감정, 사고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분화되지 않으면 시대정신에 어긋나게 되면서 개인의 차원에서 고통을 받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삶과 사고와 감정 등을 분화시키지 못하면, 대표적으로 겪는 증상으로서 공황장애가 찾아와 내 삶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공황장애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 네 삶을 독립, 개별화하고 분화하라. 그리고 너만의 고유한 삶을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