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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를 먹어야 할 때와 뱉어야 할 때

감정의 분화


화와 짜증의 차이

감정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우리 행동과 반응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감정을 잘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특히, 화나 짜증 같은 감정을 느낄 때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를 안다. 

반면, 짜증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느끼는 모호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짜증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짜증이 나면, 그 짜증이 왜 나는지, 누구에게 짜증이 나는 건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짜증은 미분화된 감정이라면, 화는 그래도 이유와 목표가 분명한 감정이다.


감정의 사회화

짜증은 대상이 불분명한 반면, 감정은 대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화된다.

감정은 어디서 촉발되었는지를 알고 그 감정을 표현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아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화되어야 한다.

감정을 사회화함으로써 상황과 대상에 따라 감정의 내용과 질, 수위 등을 조절하 수 있게 된다.

감정을 사회화함으로써 나와 대상 사이에 침범을 막는 경계를 설정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을 사회화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으며, 이는 대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서적 분화

정서적 분화는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정서적 분화가 잘 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의 미세한 부분까지 잘 표현해 낸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타인에 대해서도 높은 공감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타인이 자신에게 침범하거나 경계를 넘어설 때, 정서적으로 잘 분화된 사람은 즉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쉽게 타인의 침범을 막아낸다. 

정서적 분화가 잘 된 사람에게는 아무라도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해댄다거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일방적인 주장이나 분화가 잘 된 사람의 수준에 맞지 않는 미성숙한 감정을 표현해 봤자, 즉시 튕겨져 나오기 때문이다. 


중년기의 변화


남자는 중년이 되면서 자신의 내면과 사회적 페르소나 사이의 거리를 좁혀 자기 비리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그것은 부부관계 안에서만 남편의 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부부관계가 아니면 남편의 미성숙한 감정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반드시 아내와의 관계에서만 남편은 철이 들게 되어 있다. 

부부간에 이런 작업을 충실히 하다 보면, 남편은 철들게 되는데, 남편이 철들 때쯤 되면 그때는 죽을 때가 다 된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 

집안에서는 남편은 밖에서처럼 사회적 페르소나를 사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페르소나를 사용할 수 없음으로 인해 드러나는 아기처럼 유치함과 미성숙함은 아내 앞에서, 자녀들 앞에서 그대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괴리가 바로 남편 내면에 항존해 온 비리이다. 

남자는 아내로 인해 철이 들어가면서 페르소나와 내면 사이에 발생한 비리를 지워나갈 수 있다. 


남자의 비리는 제1 자아(내면 자아)와 제2 자아(사회적 자아)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남자가 사회생활 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내면을 감춰야 하는 것으로 비리가 생겨나는 것이지만, 개인의 영역에서는, 즉 결혼생활에서는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형태로 흔적을 남긴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부부 관계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

부부 사이에는 사회적 방어기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부부간에는 서로 눈치 보며 자기 할 말을 못 해서 억압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밖에서는 나이스하게 잘 지내는 남자가 집에 들어오면 마구 흐트러지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드러낸다.

밖에서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지키느라 품위 있게 행동해 왔다면, 집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밖에서 억압해 온 감정의 긴장을 놓아 버리면서, 자신 안에 미성숙한 감정들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아내는 남편의 미성숙한 감정을 드러내는 시점에 발맞춰 결혼생활하면서 받아 온 상처를 하나씩 하나씩 다 드러내기 시작한다. 


감정의 면에서는 아무래도 아내가 남편보다는 우위에 있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여성성이 바로 '지금-여기의 감정'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감정의 수준과 남편의 감정의 수준에는 차원을 달리하는 괴리가 있어 중년기의 부부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남편으로서는 외부에서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을 원시적인 상태 그대로 아내에게 드러내도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편은 오히려 자신의 유치함과 미성숙함을 당당함으로 바꿔 아내와 자녀들을 억압하려 든다. 

하지만 남편은 어느 순간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녀들은 이미 어머니 편에 서 있고,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해 주거나 대변해 주는 자녀는 더 이상 없다.


여러 측면에서 리비도가 상승해 가는 국면을 맞이하는 아내는 그동안 억압해 온 감정을 끌어올리면서 더 이상 참지 않는다.

아내는 그동안 이유를 몰라 짜증으로 일관해 오던 상황이 그 이유들을 알아가면서 ‘지금-여기’의 감정으로 그때그때 대처해 간다.

아내의 here-and-now의 감정에 압도된 남편은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능력으로 발휘해 온 이성의 능력과 논리력이다.

남편은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해 오면서 배우고 익히고 터득해 온 것들이 있다.

자기 계발을 위해 많은 책을 읽어 왔고, 정보수집능력이 어느 정도 갖춰져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아내의 감정에 맞서 본다.


중년 여성, 선악과를 먹어야 한다


분노는 내가 왜 화나는지를 알 때의 상태이다.

그러나 짜증은 자신의 감정을 모르는데 자신 안에 뭔가가 비비 꼬여 있는 것이 올라오는 것이다. 

나의 감정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애매한 감정의 상태인 짜증은 분노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평소에 짜증이 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감정이 무엇이며, 어떤 상태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감정의 영역에서 분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분석이 잘 안 된다.

이 분석은 이성의 분석이 아니라, 감정으로 알아차리는 분화로서의 분석이다.


상대방이 나를 침범하거나 선을 넘었을 때, 감정 분화가 잘 일어난 사람은 즉각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상황에 맞는 감정을 꺼내어 상대방이 나를 침범하는 것을 막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사회화시키는 것이다.

감정을 사회화시키지 못하면 감정적이 된다.

감정을 사회화시킨다는 것은 경계를 잘 세워 외부인의 침범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감정은 feeling이지만 감정적(emotional)이 되면 몸이 동반되는 흥분이 일어난다.

그래서 분노로 표현되거나 큰 소리를 치거나, 얼굴이 울거락불거락 하거나, 몸이 떨리거나,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린다.

우울증에 걸린 여성은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어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선악과를 따주는 사람이다.


중년기 여성은 그동안 억압했던 감정을 끌어올리면서 자신이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왜 몸이 아픈지, 왜 이리도 갱년기가 힘든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중년여성은 선악과를 먹어야 한다


짜증을 잘 내는 사람도 지식의 선악과를 먹어야 한다.

왜 짜증이 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아는 지식의 선악과를 먹어야 한다.

그래야 짜증을 멈출 수 있다.

짜증이 멈추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억압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지식의 선악과가 필요하다. 

여성 안에는 모성성이 있어서 그동안 남편에 대해 너무 많은 이해를 해 왔다.


그래서 여성 자신이 신체적 심리적 영적 증상을 앓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중년이 되면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이해를 멈추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선악과를 먹어야 한다.

내가 왜 짜증이 나는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왜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중년남자, 그동안 먹은 선악과를 뱉어야 한다



중년기를 넘어서면, 아무리 똑똑한 남편이라도 아내의 ‘지금-여기’의 감정을 당해낼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남편은 이성의 저주를 받아 정보와 지식의 세계에 빠져 there-and-then의 세계에 살고 있다면,

아내는 오랫동안 억압해 온 감정이 올라오면서 here-and-now의 차원이라는 가장 생생한 현실의 세계에 살고 있다. 


아내의 감정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합리적이고 보편적이며 매우 상식적인 판단을 하지만, 판단하는 것 자체가 아내와의 관계 실패의 원인이 된다.

정답을 찾으러 교과서를 뒤지는 남편은 답 자체로 존재하는 (아내의) 감정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제 남편은 모든 합리적 판단, 보편적 사고, 상식을 버리고 아내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휙휙 휘둘릴 수 있어야 한다.

밖에서 똑똑한 남편일수록 집에 들어오면 바보가 되는 이유를 남자들은 알아야 한다.


로버트 A 존슨은, 남자를 성배를 찾기 위해 외부세계를 주유하지만, 여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여자는 성배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도 외부세계에서 성배를 열심히 찾아봤지만, 자신의 갑옷과 멋진 창을 얻을 수 있을 뿐, 더 단단한 갑옷과 더 멋진 창을 얻은 남자일수록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이미 바보가 되어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외부세계에서 전리품 획득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내면세계 안에는 7살도 채 못 되는 <영원한 소년>이 살고 있다. 


그래서 40대 중반 이후의 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남편 이야기를 꺼내면 각자 자기 남편의 바보시리즈를 늘어놓으며 깔깔거릴 뿐이다.

7살짜리 아이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유치 찬란한 짓들을 어머니 같은 아내 앞에서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모습 자체가 아내의 눈에는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다.

남편은 내면의 <영원한 소년>을 가리기 위해 그동안 합리성과 보편성으로 뒷받침해 주는 지식의 체계를 구축해 온 것이다.

중년기에는 남편의  there-and-then의 이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측면과 아내의 here-and-now의 감정이 본격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한다.

이것은 게임 자체가 안 되는 비균형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판판이 깨지게 되어 있다.

남편이 이기는 방법은 과거의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가부장적 권위나 폭력성 또는 억압적으로 보이는 분노의 표출 밖에는 없다.    

이제 중년기 이후의 남자들은 그동안 따 먹었던 선악과를 다 뱉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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