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적 경향성 극복하다
다음의 이야기는 대상관계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의 임상 사례이다.([놀이와 현실], 119~124), 한국심리치료연구소)
그는 10대 초반부터 분석을 받기 시작 25년째 분석이 이어져 왔다.
분석가를 수없이 바꿔 봤지만, 자신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마지막 분석가인 도널드 위니캇을 찾았다.
그는 분석을 받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의 핵심은 '남근 선망'이었다.
위니캇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남자인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지요. 그러나 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한 소녀에게 말하고 있어요. 나는 이 소녀에게 말합니다. '남근선망에 관해서 말하고 있군요.' "
위니캇이 판단하기에 그는 분명히 동성애자가 아니었으며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기혼자였다.
그렇지만 위니캇이 보기에 이 남자로 하여금 25년간 자신의 분석을 계속하게 했던 미지의 요소가 거기에 있었다.
이 남자는 끊임없이 자기 안에 있는 소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 소녀에 대해 말한다면 그는 나를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 위니캇이 말한 다음의 언급이 환자의 문제의 핵심을 찔렀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이것을 말했다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나의 상담 의자에 남자가 있는데, 소녀를 보고 있고 그 소녀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은 나입니다. 미친 사람은 나 자신이지요."
위니캇의 이 말을 듣는 순간, 환자는 이제 미친 환경 안에서 건강한 정신을 가진 자기 자신을 느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위니캇의 한마디가 그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위니캇은 이 상황에 대해 이런 해석을 남긴다.
"이것은 나의 광증이 그로 하여금 나의 입장에 서서 소녀로서의 자신을 볼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남자로 알고 있었고, 결코 그가 남자임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이 복잡한 상황은 이 남자에게 특별한 현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와 나는 그의 어머니가 그가 아기였을 때 남아라는 생각 이전에 그를 여아로 보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년에게서 소녀를 보았던 그 광증은 그의 어머니의 것이었으며, 이것은 위니캇이 "미친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바로 현재 안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과 광증을 가지고 있다.
위니캇을 연구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누구나 불안을 가지고 있지만 괄호를 쳐서 빠져나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위니캇은 환자를 공감하는 중에 환자가 투사하는 대로 동일시가 일어나(투사적 동일시) 환자가 고통받고 있는 문제의 지점까지 내려가다 보니, 자신이 광증이 있는 지점까지 도달한 것이다.
위니캇은 환자와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면서, 어릴 때 가둬 놓고 나온 유아기의 광증에 도달하기 위해 괄호를 풀어버린 것이다.
그 광증은 환자의 어머니의 것이었고, 환자는 그 광증을 괄호 안에 가두지 못해 늘 풀려 있어서 수시로 튀어나와 자신의 '소녀성'의 존재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위니캇은 환자가 투사한 광증(소녀임)을 가지고 와서 자신과 동일시하였고, 동일시한 것을 자신 안에서 소화해 내었다.
환자는 분석을 받은 날 밤에 아내와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성교를 가졌다.
그래서 그는 그 다음날 마땅히 기분이 좋았어야 했는데도 병이 났고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한다.
위니캇은 이러한 감정의 불일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은 여성적 자아, 즉 이 소녀로부터 오는 항의입니다."
라고 해석했다.
내가 보기에, 그 소녀는 치료자와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면서 자신의 존재가 더 이상 환자에게 머무를 필요가 없어졌고, 결과적으로 환자를 떠나게 되었다.
환자의 신체는 30년 이상 자신의 신체 안에 머물러 있던 소녀가 떠나가는 것에 대해 애도를 한 결과 신체적인 병으로 나타났다.
위니캇이 환자와의 관계에서 투사적 동일시를 경험하게 된 것은, 환자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해 준 결과였다.
그것은 바로 환자 내면의 깊은 곳을 공감하기 위해 치료자 자신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리고 위니캇은 자신 내면에 있는 유아기의 소녀를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을 본 위니캇은 스스로에게 "이거 내가 미친 거 아냐?" 하는 항의를 스스로에게 했고, 그것을 환자에게 그대로 옮겼다.
"미친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라고.
환자의 어머니는 첫아들을 낳고, 둘째도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딸이라고 확신을 했으며, 그렇게 태어나기를 원했다.
어머니는 환자를 아들로 낳고도 계속해서 딸처럼 키웠으며, 그 딸과 동일시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위니캇은 환자에게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러자 오랫동안 환자 안에서 소외되었던 소녀는 그러한 공감을 받고 환자에게서 떠나간 것이었다.
위니캇은 이처럼 환자의 상태를 그대로 비춰 주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관찰했다.
환자의 상태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위니캇은 깊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직접 살아 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