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영역(1): 허구냐 허위(거짓말)이냐
산타클로스가 아이 엄마에게 고소를 당한다. '거짓과 사기를 일삼아 아이들의 왕노릇을 하는 사이비 교주같은 사람이며, 상거래법을 위반하고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건은 점점 확대돼 산타클로스는 결국 법정에 서고, 사람들은 산타를 반대하는 파와 찬성하는 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인다. 산타가 필요없으며 그의 존재 의미가 더 축소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대파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얻어서 산타클로스는 마침내 화형을 언도받는다.(국제신문 2012. 12.9)
위의 내용은 솔오페라단의 '산타클로스는 재판 중'이라는 이탈리아산 창작오페라에서 산타 클로스의 법정 지위를 다룬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관련된 절대주의적 입장은 비록 거짓말이 거짓말을 당한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의도일지라도 모든 거짓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칸트에게 행동의 도덕성에 대한 중요한 테스트는 모든 사람이 나와 동일한 기반에서 행동하도록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습니다. 거짓말을 당한 사람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도록 할 수 있습니까? 진실성과 정직성은 사회가 잘 돌아가는 데 기본이 되며,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느낀다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음식을 구하고 손으로 집을 짓는 데 갇혀 있을 것입니다. 너무 의심스러워서 계약자나 거리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비록 거짓말이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더 잘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의 인간 존엄성은 손상됩니다. 따라서 칸트와 절대주의자들은 모든 거짓말이 사회 구조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과장된 것 같습니다. 사실 거짓말은 늘 일어나고 있지만 사회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과장되더라도 절대주의적 입장은 거짓말의 결과적 위험을 노출합니다. 거짓말이 발견되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신뢰 상실에 대한 우려는 산타 거짓말에 반대하는 McKay의 입장을 결정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와 보호자의 관계가 아이의 감정적 성장에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산타의 거짓말로 인해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고 그러한 손실이 광범위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할까요? (이상, Prindle Post, "부모는 산타클로스에 관해 자녀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까요?"에서)
서구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래 니체까지 이분법적 사고, 또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참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두움, 질서와 혼돈, 삶과 죽음, 주관과 객관 등 이분법적 사고가 오랜 기간 인간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
칸트의 과장된 우려는 허위와 허구에 대한 구별을 하지 못한 결과이다.
허위(거짓)에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제시하여 속이려는 고의적인 의도가 포함된다.
그러나 허구는 속이는데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경험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구성하는 상상력 과정의 산물이다.
뉴스는 사실과 허위를 가르는 이분법적 세계에서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소설은 허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을 재구성함으로써 인간의 현실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소설은 뉴스와 같은 직접적인 사실 서술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 삶의 측면을 보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허위의 세계와 허구의 세계를 구별해 낼 수 있다면,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가 진짜냐 가짜냐, 또는 가짜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