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주일학교에서 퇴출 위기를 맞은 산타 할아버지

중간 영역(2) :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다

유치부 교사회의


성탄일이 가까워 오자 유치부 주일학교 교사회의에서 교사들 간에 논쟁이 붙었다.

 A 교사 : 교회라는 곳은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학교와는 다른 곳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성탄일입니다. 선생님들도 성탄일이 다가오면 아무런 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던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다 예수님의 탄생을 복음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상업적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거든요. 


B 교사 :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A 선생님은 너무 교회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보시는 것 아닌가요? 아이들은 이제 5~6세 밖에 안 돼요. 지금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세상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알아야 하는 나이는 아니거든요.  


C 교사 :  일단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들어와서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는 것은 일종의 꾸며낸 거짓말인데, 교회가 거짓말을 가르쳐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치고, 거짓말을 하여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Senior D교사 : 아이들에게 참과 거짓, 선과 악 같은 너무 이분법적 사고를 주입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선과 악을 놓고 보면, 100% 선함과 100% 악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선하고 어느 정도 악한 것이거든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선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신일 겁니다. 그리고 100% 악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탄이겠죠.  참과 거짓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참을 이야기하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거짓으로 꾸며 대는 것이 분명히 있죠. 그런데 그것은 거짓이 아니라, 허구가 들어오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시도 가르치고 문학도 가르치잖아요? 그것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거짓도 아니죠. 허구의 세계인 것이죠. 참과 거짓 사이에는 허구라는 것이 있는 겁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바로 거짓이 아니라, 허구의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허구적인 상상력이 필요하고, 참과 거짓 사이의 영역이 풍성해야 상징화 능력이 생겨난다고 해요. 아이들에게는 참과 거짓으로만 나눠지는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메마른 정서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 이분법적 사유의 역사


이분법의 역사

소크라테스는 아이디어를 분석하기 위해 변증법적 질문 방법을 사용했으며, 종종 아이디어를 지식 대 무지 또는 정의 대 불의와 같은 이분법적으로 이항대립을 시켰다. 

플라톤이 저술한 수많은 대화편은 이분법적 사고를 이용해 철학적 사상을 탐구한 문학 작품이다. 

대화의 사용은 본질적으로 대조되는 관점을 포함하며, 소크라테스는 종종 대담자의 주장의 약점을 드러내는 질문자의 역할을 한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대화를 통한 윤리적, 인식론적 탐구를 위해 이분법을 사용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철학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범주화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분법적 사고는 분류와 범주화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범주"에서 다양한 유형의 존재와 실체를 구별하고 이를 실체 대 속성, 잠재성 대 현실과 같은 이분법적 범주로 구성한다.

2500년 철학의 역사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석이라면, 철학은 그 긴 기간 동안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당대의 문화, 예술, 문학, 과학 및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쳐 왔던 것이다. 

근대를 연 데카르트 역시 이분법적 틀 안에서 사유하였다.

특히 그의 이원론과 체계적인 의심 방법은 그의 철학의 기초입니다. 

데카르트의 정신과 신체의 명확한 분리, 주관과 객관의 확고한 구별 등은 당시 과학, 수학, 문화, 사상, 예술에  이르기까지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니체의 전복적 사유 ; 유희

이를 뒤집어엎은 철학자가 바로 니체다.

니체는 이분법적 세계에 푹 젖어 있는 근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분법을 뒤집어야 했다.

이를 위해 근대만 뒤집는 것으로는 역부족임을 자각,  소크라테스까지 전복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니체의 저서 [선악의 저편]의 첫 문장이 


  "진리가 여자라면..."


으로 시작한다.

지금까지 2500년 철학의 역사, 진리의 역사를 이끌어 온 주체는 바로 남성이었다. 

지금까지의 남성철학은 이항 대립과 경직된 틀을 특징으로 하는  이분법적 철학이었다.

이를 간파한 니체는 2,500년의 철학을 단숨에 뒤집었다. 

전통적인 이분법에 대한 그의 급진적인 비판과 절대 진리에 대한 거부는 철학적 사고에 심오한 변화를 가져왔다.

 

니체는 전복적 사유를 통해 철학적 사유의 틀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세울 수 있는 틀마저 없애 버린 결과를 맞이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시스템이 없는 연극에 불과했다. 

그는 철학적 담론을 지배했던 경직된 이분법적 구조를 거부하고 혼돈, 복잡성, 삶의 유동성을 포함했다.

그의 철학은 어떤 체계가 없는 유희에 불과했다.


"니체의 말년 저작들은... 진리와 환상, 삶과 죽음, 쾌락과 고통 등의 상호의존성과 삶의 양면성을 함께 긍정하고 유희할 것을 주장했다."([니체와 프로이트], 이창재, 79)


니체는 인간론을 바꿔 버렸다.

그는 과거의 형이상학적 환상에 의존한 인간으로부터 환상을 제거하여 스스로 의식적 노력으로 생을 감당할 수 있는 '초인'으로서 인간론으로 바꾼다.

그는 초인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의지를 행사하여 전통적인 도덕성과 이분법을 초월하는 능력을 구현한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그동안의 이성, 윤리, 객관적 진리와 같은 철학적 이상을 배제하고 모든 모순과 복잡성을 지닌 삶 전체를 포용하는 것이었다.


Nietzsche의 Übermensch (초인) 이상은 순전한 의지력과 자기주장을 통해 인간의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겠다는 생각을 장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역량 강화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사회적, 관계적 측면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개인주의와 사회적 유대감 사이의 균형이 부족하면 자아가 과도하게 부풀려져 지속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어느 날 쓰러져 10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살다가 사망한다. 니체 삶의 이 비극적인 종말은 인간 조건에 내재된 한계와 취약성을 무시한 결과의 잠재적인 결과를 강조한다. 

니체의 정신적, 육체적 붕괴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위험성과 인간 완벽이라는 달성할 수 없는 이상 추구를 통렬하게 일깨워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제3의 공간, 중간영역


데카르트로 시작한 이분법적인 근대적 사고의 폐해를 니체를 미리 예견했다.

심신 이원론과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는 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의 재앙적 사건에 기여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이분법적 근대적 사고의 대표적인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니체가 탈근대를 주창하고 나섰지만,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혼자 만의 초인적 사고, 자아 팽창은 궁극적으로 그의 비극적인 몰락으로 이어졌다.


대조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을 선택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적 경향으로 등장하여 근대 사상의 경직된 구조를 해체하고자 했다. 

이 후기 구조주의 운동은 프랑스와 유럽의 문화 경관을 일시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후기 구조주의는 해체주의를 낳은 근본적인 틀을 해체함으로써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해체주의는 프랑스, 유럽, 그리고 더 넓은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기초를 크게 붕괴시켰고, 확립된 규범에 도전하고 광범위한 지적 격변을 불러일으켰다.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은 오히려 또 다른 문화 파괴와 사회 붕괴를 가져왔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사람이 바로 도널드 위니캇이다.

그가 주창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바로 중간영역, 중간현상, 중간 대상의 개념이다.


어머니와 유아 사이에는 주체와 객체가 외에도 제3의 영역, 곧 중간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위니캇의 이 중간영역 개념은 인류 역사상 최초에 제시된 상징적 공간, 화해의 공간, 모순의 공간이다. 

이 중간 영역 안에서 주관과 객관의 모순, 현실과 환상 사이의 역설, 지배와 피지배의 패러독스가 중화된다


위의 논쟁에서 Senior D 교사가 주장하는 상징, 허구적 상상력이 바로 이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중간영역을 잘 경험하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지만, 어떤 사람은 이 영역에서 좋은 경험을 얻지 못함으로써 현실을 왜곡하고, 사실과 거짓을 뒤섞어 놓고, 뭐가 참이고 뭐가 거짓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는 바로 아이들의 중간 영역에서 영원히 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