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지도사진은 나무 위키에서 복사함)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 말 안에는 이 책의 정체성이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들어있다.
어쩌면 작가의 정체성인지로 모른다.
또한 [파친코]를 읽는 독자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 책에 매료된 나의 정체성이라는 점이다.
[파친코]는 망가진 역사를 극복하는 한국의 가족 이야기이다.
반대로 어쩌면 [파친코]는 망가진 역사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역사를 가족 관계 안에서 반복하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여 마음속에 저며 오는 부분이 있다.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망가진 나라의 역사에 갇히지 않고 시대적 아픔을 극복하려고 나름 한계상황을 넘어서는 노력을 하였던 분들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자신의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조선의 마지막 신하였지만, 나라가 망한 후 동분서주하며 아픔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셨다.
그러는 중에 할아버지는 자녀들을 돌보지 못해 많은 상처를 남겼다.
나의 아버지에게 남겨진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시대적 아픔을 극복하려고 최선의 삶을 살아낸 분이다.
나 또한 아버지가 남긴 상처를 극복해야만 했다.
모두 역사가 망가뜨린 가족의 역사이지만, 이제 나도 상관이 없다.
망가진 역사로 인해 받은 상처는 내가 일어서는 동기가 되고 에너지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소설에서 언청이 훈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언청이 훈이를 첫 인물로 등장시킨 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훈이는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인물로서, 가족과 사회에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의 존재는 소설 전반에 걸쳐 중요한 주제를 강화한다.
망가진 역사는 훈이의 장애의 출현으로 상징된다.
첫째, 차별과 소외의 주제이다.
훈이는 장애를 가짐으로써 가족 내에서조차 소외를 경험한다.
이는 소설이 다루고 있는 일본 내 한국인들의 차별과도 연결된다.
훈이의 존재는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성원들이 겪는 고통을 상징하며,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둘째, 생존과 끈기를 상징한다.
훈이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
이는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끈기와 강인함을 상징한다.
셋째, 훈이라는 캐릭터는 인간의 가치를 신체적 조건이나 사회적 위치에 의해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가족에게 있어서 중요한 존재이며, 그의 역할은 단순한 장애인을 넘어서는 인간적 가치를 상징한다.
넷째, 전통과 변화를 상징한다.
훈이는 또한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의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사회적 태도를 반영한다.
그는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며, 가족 내에서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나타낸다.
소설이 시작하는 장소는 부산의 작은 섬, 영도이다.
영도라 함은 나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섬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영도는 부산에서도 외곽 중의 외곽이었다.
625라는 한국 전쟁이 터지자, 수많은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영도구의 청학동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청학동에는 공동묘지가 있었지만, 자연환경으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곧바로 보이는 것이 바로 오륙도였다.
집 바로 뒤에는 고갈산(지금의 '봉래산')이 있었다.
어린 시절 바다와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영도라는 섬이었다.
내가 살던 집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류장 더 올라가면 태종대라는 유명 관광지도 나온다.
그렇지만 소설의 당시 1911년의 영도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영도에 사는 다른 아이들은 훈이의 부모처럼 분별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랄 정도로 운이 좋지 않았다. 적들에게 짓밟히거나 자연재해로 황폐해진 나라에서는 으레 그렇듯이 노인과 과부, 고아 같은 약자들은 식민지 땅에서 더없이 절박한 처지였다."
어쩌면 소설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일본에 가장 가까운 지역이 바로 영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영도가 설정된 것 같다.
영도는 난중일기에 임란발발 당시 왜구의 선박들이 정박한 곳이 바로 영도이다.
개화기에는 부동항을 찾아 남하해 온 러시아 제국이 대한제국에 이 섬을 조차지로 영도를 두 번이나 요구하기도 했으나, 독립협회가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조차 시도는 무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