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국 사회는 베이붐 시대를 맞이한다.
한국 사회는 자연스럽게 모성성 과잉시대를 맞게 되었고, 그것은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가부장적 질서하의 가족구조, 남아선호사항, 남성 위주의 권위주의 등으로 매우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특히 한국 전쟁 이후의 베이붐 세대가 인구 폭발로 인한 자연적인 경쟁적 분위기에 편승한 치열한 교육열과 경쟁에 힘입어 경제성장 및 발전을 이룩했다.
이와 아울러 한국사회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속된 모성성 과잉이라는 현상을 낳았다.
조선시대의 유교문화는 산업형 가부장적 가족구조와 잘 어우러졌으며, 가정 내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크게 강조되었다.
약 50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 근대화에 각 가정에서의 어머니들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는 그림자 영역이다.
대부분 여성들은 시부모를 모시는 며느리로 들어가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눈먼 장님 3년 도합 10년에 걸친 그림자 생활을 하면서 오직 <현모양처>라는 이데올로기를 이상화하며 모성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자발적으로 자기희생을 감수해 왔다.
1960년대 한국 사회는 전쟁 후 급격한 경제발전과 함께 가족 중심의 가치관이 강조되었고, 특히 여성은 가정에서 자녀를 돌보고 양육하는 역할에 집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여성이 사회적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가정 내 어머니의 책임이 대단히 컸다.
자녀의 성공이 어머니의 성공과 영광으로 직결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자녀의 삶에 대한 과도한 개입과 통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었고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부가되면서 어머니들은 자녀의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을 위해 더욱 헌신적인 역할을 했다.
이 당시의 희생적 어머니의 '교육열' 현상은 모성 과잉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모성 과잉은 어머니가 자녀에 대한 지나친 돌봄과 통제를 나타내는 현상이다.
어머니가 자녀의 모든 일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자녀는 자율성을 잃고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딸의 경우, 어머니의 과도한 보호가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딸은 어머니의 기대와 요구에 맞추려 하면서 자기 주체성을 잃거나 미숙한 상태로 남을 수 있다.
아들이든 딸이든 어머니의 모성성 과잉을 경험한 결과, 독립성이 부족해질 뿐 아니라, 자아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어머니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게 된다.
어머니의 모성성에 의지하여 연약한 자신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부모의 영향력은 40대 초반까지이다.
40대 초반까지 어머니의 영향력으로 사회적 자아를 형성해 갈 수 있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에 뒷받침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부모의 영향력이 끝나는 40대 중반 이후, 크게 방황하게 된다.
그동안 어머니를 통해 자아를 형성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존재로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모성성 과잉을 경험한 자녀들은 40대 중반 이후부터 존재론적 방황으로 새로운 정체성 혼돈을 겪게 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고, 개인의 자아실현과 스펙 쌓기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모성성 과잉 현상도 점차 완화되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자녀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독립을 허용하는 현대적 부모 역할 방식이 확산되면서, 자녀에 대한 과도한 통제와 개입이 줄어들었다.
특히 여성들이 더 이상 모성성을 자신의 본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됨으로써, 젊을 때부터 여성성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어머니 세대만 해도 기본적으로 모성성을 사용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많이 품어 주는 넓은 품을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어머니 세대의 여자들은 남편감을 찾으면서도 여자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아도 모성성을 발휘하면서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이나 결핍을 메워 주려고 노력했다.
결혼한 후에도 남편이 크게 실망을 줘도 모성성을 발휘하여 인내해 냈다.
자녀세대의 여성들은 모성성을 굳이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여성들은 남편감을 고르면서도 자기 마음에 딱 드는 남자를 찾고자 한다.
조금만 못 미쳐도, 또는 연애 중 조그마한 실망에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들은 6년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했음에도 아내를 다 잡은 물고기로 알고 더 이상의 존중을 보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여성들이다.
젊은 여성들은 자녀 양육에서도 과도한 모성성을 사용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에 자녀를 아예 낳지 않거나 낳아도 하나 이상 낳을 생각이 없다.
젊은 여성은 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사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매우 충실하게 살고자 한다.
심지어 친정 부모뿐 아니라, 시댁 부모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런 여성은 모성성 과잉을 경험하면서 자란 남편과 사는 데에는 많은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개별적 사고를 하는 것이 익숙한 여성이 온 집안을 아우르는 집단적 사고를 하는 남편과 사는 것은 이만저만한 갈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여성들은 시대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시대정신을 잘 흡수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의식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여성은 시대 변화, 환경 변화에 따른 역가가 높은 반면, 남성은 역가가 매우 낮다.
우리 사회의 여성은 1960년대 여성, 1980년대 여성, 2000년 직전의 여성, 2000년 이후 2020년의 여성 등 시대마다 여성의 정체성이 다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남성은, 조선시대의 남성이나 20세기 남성이나 2020년대의 남성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남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술적으로는 빠르게 좇아갈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거의 시대를 초월하고 있다.
현대 여성들은 모성성 과잉의 시대에서 여성성을 주로 사용하는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였지만, 현대 남성은 이런 여성들의 의식 변화에 대해 '여성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족'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자기 또래의 여성들이 남자 자신의 어머니와 너무 다르다는 점에 대해 당혹스러울 뿐이다.
남자는 여전히 '엄마 같은 여자'를 찾는데, 자기 주변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엄마 같은 여자''는 없다.
어릴 때부터 '엄마 같지 않은 여자'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경험해 오면서, '여자는 도무지 상종할 수 없는 존재'로 경멸한다.
과거에는 남성이 여성을 경멸할 때는 남자보다 밑에 있는 존재로 경멸하였지만, 오늘날의 여성 경멸은 이런 의미에서 좀 다르다.
자기 또래 여성에게서 남성이 아는 '엄마 같은 여자'를 도무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여자를 경멸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여성은 더 이상 남자의 발아래 있는 존재가 아닌, 남자 위에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경멸한다.
그 경멸은 마치 이솝 우화에서, 여우가 먹을 수 없는 포도를, '저 포도는 시어서 먹을 수 없는 포다야'라고 비아냥 거리며 경멸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모성성을 발휘하는 여성은 품이 넓어서 남편이 무슨 짓을 해도 내 옆에 있는 '여편네'이지만, 모성성 대신 여성성을 사용하는 아내 앞에 있을 수 있는 조건이 매우 한정적이다.
여성성은 곧 '지금-여기의 감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성성 중독이 심한 남편일수록 아내의 여성성에서 나오는 감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