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동일성 획보
프랑스의 아동 정신분석학자인 미리암 슈제이(Myriam Szejer)는 저서 [아기에게 말 걸기]에 등장하는 프랑스의 벨 클레어 산부인과 병원의 풍경은 매우 이색적이다.
"새로 어머니가 된 산모가 갓 태어난 아기 침대를 들여다보고 있거나, 그 보다 더 빈번하게는 무릎에 아기를 안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집중해서 아기를 바라보면서, 어머니들이 아기들에게 말을 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의 혼합, 그녀의 목소리의 음색과 음조, 그녀의 깊은 시선이다."
미리암 슈제이는 프랑스를 포함해 전 세계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산모와 신생아가 분리 입원하는 제도적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신생아의 안정성과 건강을 위한 관행으로 시작되었지만, 산모와 아기가 함께 있는 것이 심리적 발달에 더 이롭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점차 재고되고 있다.
산모가 아기와의 물리적, 정서적 접촉이 제한될 경우 초기 애착 형성에 지장이 생길 수 있으며, 산모는 아기와의 유대를 충분히 형성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 병원에서는 산모들은 슈제이의 권유에 따라 아기가 있는 방으로 가서 아기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세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면서 겪는 분리불안을 달랠 수 있고, 출생 외상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열 달 동안 한 몸으로 있던 아기가 산모의 몸에서 빠져나가게 되면서 산모의 산후 우울감을 극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행위가 된다.
셋째,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의 어머니와 출생 후 만나게 되는 어머니가 동일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함으로써 아기로 하여금 존재 연속성을 보장해 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기의 상태는 아무것도 모르거나 신체적 흐름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중이다. 첫 4일 동안이 가장 중요한데, 그 4일은 태내의 상태와 외부의 상태를 연결하는 기간이다. 이때 엄마의 존재가 아기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중심적 대상이 되어야 한다.
4일 동안, 만일 엄마가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아기는 외부 세계의 영향력에 압도되어 버린다. 아기의 몸은 저 별에서 왔기 때문에 우주의 영향,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압도되지 않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가장 약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분쇄하는 데는 전 우주를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조차도 넉넉히 그를 죽일 수 있다."(팡세)
그러나 우주가 그를 분쇄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한층 더 고귀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우주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엄마는 아기에게 첫 4일간 우주와 세계, 신과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유일한 대상, 유일한 존재, 배타적 존재가 된다.
이 첫 4일 동안 아기의 존재는 이제 외부의 엄마와 연결되어야만 한다.
엄마만 옆에 있으면 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대개 편집증 환자,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이 4일 중에 엄마를 배타적 존재로 만들지 못한 것 때문에 발생하는 증상을 안고 살아온 결과이다.
대표적으로 편집증 환자는 성인이 되어도 세계에 의해 압도되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예를 들어 러우전쟁이 발발할 때, 그의 상상 속에서는 우리나라와 북한 간의 전쟁까지 이미 확전 되었다.
마음속에는 벌써부터 북한의 핵 미사일이 서울에 떨어졌다.
핵 미사일 후유증으로 피부가 상하고 머리키락이 뭉터기로 탈모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편집증 아버지가 어느 날 뉴스에서, 서울 시내에 연쇄 살인범이 돌아다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면 그때부터 딸 단속을 시작한다.
계속 카톡 보내고, 지금 어디 있니? 밤 9시까지 들어와야 한다.
어느 내담자가 꿈을 가지고 왔다.
광주리 안에 갓 태어난 아기가 있는데, 좁은 공간에 갇혀서 숨쉬기가 힘들고,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린다. 어떤 무섭게 생긴 남자가 아기 광주리를 덮고 있는 헝겊을 확 벗겨내자 그때가 아기가 제대로 숨을 쉬기 시작하더라는 꿈이다.
이 꿈은 그 내담자의 유아기 경험을 보여주는 꿈이다.
이 여자 내담자는 아들을 기다리는 5명의 언니를 둔 막내딸로 태어난 것이었다.
엄마는 이 딸을 집에서 낳았는데, 낳자 딸이라는 것을 알고 아기를 이불로 덮어서 죽든 살든 네 운명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머리맡에 두고 3일을 지낸 것이었다.
가끔 집에 들어오는 남편이 아기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집에 와 보니, 머리맡에 안 보이던 어떤 헝겊덩어리가 있으니 그것을 열어보니 아기였던 것이다.
그때 남편이 아내에게 “애를 지금 죽일 생각이냐?” 고 해서 아기는 살아났다.
이 여자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경계선 성격장애가 나타났다.
먼저 버림받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삶의 가치나 목표 없이 정체성 혼란을 가지고 산다.
시도 때도 없이 충동적인 행동을 자행하며, 인터넷 쇼핑 중독과 폭식을 그 증상으로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불같이 화내고, 변덕스럽고, 성적으로 문란하다,
이러한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출생 후 4~7일 사이에 어머니의 품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결과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증상들을 즐긴다.
첫 4일 동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 동일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존재 동일성?
이게 뭐지 싶겠지만, 동일한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것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의 '나'와 출생 후의 '나'가 동일한 '나'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것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를 통해 확인가능한 일이다.
아기는 뱃속에 있는 동안 청각, 후각, 미각을 미리 확보한다.
아기는 자신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머니의 동일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은 먼저 청각을 통해 일어난다.
그 작업은 뱃속에 있을 때 들었던 어머니의 목소리와 출생 후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감지하면서 결국 같은 목소리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다음은 미각을 통해서 일어난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태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았지만, 출생 후에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두 가지의 맛이 동일하다는 것을 미각을 통해 확인한다.
그다음에는 후각이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의 냄새와 출생 후의 어머니 냄새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와 같이 아기는 3가지 감각을 통해 뱃속에 있을 때의 어머니와 출생 후 바깥 세계에서 발견한 어머니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아기는 자기 존재 동일성을 확보하게 된다.
프랑수와즈 돌토에 의하면, 이 확인 작업은 4일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이 동일성 확보가 4일 이내에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냥 흐지부지하게 되면, 아기는 자신의 존재동일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흔히 '경계선에 있는 아이들"이 모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첫 4일 동안에 어머니 동일성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아이큐도 70 정도밖에 안 되고, 감각도 둔하고, 현실에서의 매번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어떻게 상황 파악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며 살아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로 알지 못한다.
이들은 원래 아이큐가 나쁜 것도 아니고, 감각이 떨어지거나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첫 4일 동안 존재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 모든 면에서 모호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음악(특히 악기연주), 미술, 체육 등의 교육을 통해 몸의 감각을 일깨워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벨 클레어 병원에서 아기에게 어머니의 말걸기도 아기의 존재 동일성 확보를 위한 중요한 노력이라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