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감정(3) : 고결한 주인도덕의 성경 인물들

모세: 부귀영화를 버리고 고난의 자리에 선 사람


히브리서 11장 24–26절은 모세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11:24–26, 개역개정)


모세는 이집트 왕실의 고귀한 신분, 즉 세상의 주인도덕의 정점에 서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정치적 권력, 경제적 풍요, 지적 엘리트로서의 지위,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고결한 자’였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를 의식적으로 거절했다. 그는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핍박받는 히브리인의 무리에 합류했다. 이 선택은 단순한 민족 정체성의 선택이 아니라,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의 길을 미리 보여준 선취적인 선택이었다.

모세는 히브리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했다. 이는 당시 문화로 보았을 때 사회적 ‘자살’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왕궁에서 나와 고된 노동과 학대를 자처하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모세는 눈에 보이는 영광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 고난 받는 메시아의 길을 미리 걷고 있었던 것이다.

모세는 단순히 낮아진 것이 아니다. 그는 낮은 자리를 존귀하게 만들었다. 그는 고통받는 히브리인과 함께함으로써, 억압받는 자의 현실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증언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어 이 땅에 오신 사건과 닮아 있다. 하나님은 항상 낮은 자리에 계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려올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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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그 길을 택한 ‘왕자’였고, 예수는 그 길을 완성한 ‘왕’이셨다. 둘 다 고결했지만, 그 고결함을 움켜쥐지 않고 자기 비움의 길을 택했다. 바로 그 비움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다니엘 – 바뀌는 제국에서도 총리가 된 고결함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 청년이었다. 그는 낯선 땅의 궁정에서 선택받았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공급받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 “나는 나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 율법의 기준 이전에, 그는 내면의 경계선을 그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하나님 앞에서의 정결함 사이에서, 그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 고결함은 일시적 결심이 아니었다. 다니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태도였다. 기도의 습관, 정직한 언행, 타협하지 않는 신앙적 자세는 한 시대의 왕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왕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와 바사 제국이 들어서도 다니엘은 여전히 총리로 남았다. 제국이 무너져도, 그의 고결함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니엘은 권력에 아첨하지 않았다. 그의 권위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신뢰를 준 것은 그의 태도였다.


다리오 왕 때, 왕 외에 누구에게도 기도하지 말라는 법령이 내려졌을 때도, 다니엘은 문을 닫지 않았다. 변함없이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세 번 기도했다. 사자굴에 던져지는 위험 앞에서도 그의 무릎은 오직 하나님께만 꿇려 있었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 신앙인이었고, 동시에 세상의 지도자들에게도 신임을 받은 지혜자였다.


다니엘은 말한다. 고결함은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바뀌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것이 다니엘이다.


요셉 – 고난 속에서도 빛나는 품격의 인물


요셉은 열일곱에 형들에게 팔려 이방 땅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다. 가혹한 배신, 낯선 문화, 끝없는 오해 속에서도 그는 내면의 고결함을 지켜냈다. 포티바르 집에서 종으로 일하면서도 그는 게으름 없이 충성했고, 그의 성실함은 집안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로 그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조차 그는 유혹을 받는다. 상전의 아내가 끈질기게 유혹했을 때, 요셉은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 이 큰 악을 행하리이까”라고 말하고 도망쳤다. 자신의 미래가 걸린 선택 앞에서 그는 육체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택했다.


결과는 억울한 감옥살이였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상황이 아무리 추락해도, 그의 내면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감옥의 사람들을 도왔고,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며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품격을 보였다. 누가 봐도 불공평한 인생이지만, 그는 억울함에 빠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 안에서, 자신을 낮추되 품위를 잃지 않았다.


결국,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요셉은 자신을 높이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는 말에서 그의 태도가 드러난다. 권력을 쥐고도 그는 가족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형들을 용서하며 눈물로 껴안았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이다” — 이는 단순한 용서가 아니라 고난을 해석하는 고결한 영혼의 언어다.


요셉은 보여준다. 고결함이란 불공평한 대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태도이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마음이다. 높아졌을 때 타인을 품을 줄 아는 사람, 그가 바로 요셉이다.


진흙에서 영광으로 – 한나와 마리아, 고결한 심령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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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감동시키는 고결함은 높은 자리에 선 이들의 위엄보다, 낮은 자리를 감내하는 이들의 내면에서 빛난다. 성경 속 두 여인, 한나와 마리아의 기도는 이 고결한 영혼의 향기를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들의 기도는 시대를 가르고, 언약을 이어가며, 하나님 앞에 선 가장 순결한 심령의 노래다.


한나는 오랜 불임의 고통 속에서 성전 마당을 눈물로 적셨다. 그는 응답받기 전에 이미 서원을 했고, 응답받은 후에는 약속대로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의 기도는 고통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노래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 2:6-8)

이는 단순한 감사가 아니라, 인간의 인생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는 고결한 믿음이다. 고통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응답 속에서도 자신을 높이지 않는 이 겸손과 통찰은 한나를 진정한 믿음의 여인으로 만든다.


세월이 흐른 후, 갈릴리의 평범한 처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하며 한나의 기도를 한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도다.”


마리아는 메시아를 품은 여인이었으나, 자신의 위대한 운명에 도취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낮춘다. 마리아의 고결함은 그의 겸손에 있다. 신비한 체험을 자랑하거나 운명을 계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며 역사의 흐름 속에 자기를 비운다.


두 여인은 모두, “하나님이 높이시는 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질서를 뒤엎는 하나님의 정의를 믿었고, 현실의 고통을 넘어선 영적 시야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노래했다. 이 고결함은 외적인 순결이나 의무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 보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혼의 진실함이다.


한나와 마리아는 자기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긴 사람들이다. 고난도, 영광도 그분의 것이며, 자신은 그 부르심 앞에 자기를 비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는 곧 하나님 나라의 시이다.

이 고결한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묻는다.


“너는 네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네게 하신 일을 통해 너는 어떻게 노래할 것인가?”


오늘도 우리는 낮아지고 무시받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고결함은 낮아짐 속에 깃든 순전한 고백 속에 있다. 한나와 마리아처럼, 오늘 우리의 기도도 그 고결함으로 빚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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