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속일 수 없다
상담실에서 내담자가 ‘지금 여기’의 관계를 마주할 때, 그 순간은 상담의 가장 살아 있는 시간이다.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 자리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실제 관계 안에서 감정이 움직이고, 말이 만들어지고, 침묵이 흐르며, 몸이 반응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사람은 자신도 미처 자각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대했던 방식, 관계 속에서 반복해 온 패턴, 사랑과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을 실시간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상담자는 종종 이 ‘지금 여기’의 전이를 다루는 것에 저항하게 된다. 이유는 다양하다. 내담자의 감정에 휘말릴 것 같은 두려움, 불편한 정서를 견디는 어려움, 상담자 자신의 내면 문제와 마주하는 고통, 혹은 기술적으로 다룰 자신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대신 상담자는 이론적 해석이나 조언, 과거 이야기로 회기를 채우고 싶어진다. 상담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피하고 싶었던 정서와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이 분석은 내담자의 깊은 무의식과 만나는 통로이자, 그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대하고 사랑하고 실망하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이 진실한 만남을 가장 먼저 피하고 싶은 사람은 상담자 자신일 수 있다. 전이를 다룬다는 것은 단순히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그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반응하고, 말로 다루는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불안, 공격성, 유혹, 좌절, 기대를 견뎌야 한다. 특히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내담자의 고통이 상담자 안에 강렬하게 체험될 때, 상담자도 흔들리게 된다. 그 불안과 혼란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전이 해석을 회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상담자 자신의 삶, 배우자와의 관계, 부모자녀 관계,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문제들이 상담실 안에서 은밀하게 반응하게 된다. 내담자의 갈등이 상담자의 상처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이 무의식적 반응을 통찰하고 견디며, 자신의 도피 충동까지도 자각해야 한다.
전이는 치료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가장 치열하고 날것의 형태로 나타나는 전이는 가족 안에서 발생한다. 부모는 세상 사람 앞에서는 웃고, 괜찮은 사람처럼 살 수 있다. 배우자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거나 사회적 역할을 통해 자기를 방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은 속일 수 없다.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매일, 매 순간 바라보며 자란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표정과 몸짓, 목소리의 떨림, 눈빛에서 읽어낸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이는 특히 강렬하다. 아들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경쟁, 동경과 분노를 동시에 품고 살아가고, 딸은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그 안에서 억눌림과 질투를 경험하게 된다. 부모 역시 자식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재현하고,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반복한다. 자식은 때때로 부모의 미해결 감정을 대신 살아내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 관계에서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의 불안, 결핍, 위선, 억압을 가장 정확히 감지한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는 어떤 의미에서 가족의 축소판이다.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때론 미움받고 싶고, 실망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한다. 이 감정들은 모두 가장 처음 경험한 가족 안에서 배운 관계 감정들이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애착과 방어 기제가 상담자에게 투사되며, 상담자는 내담자가 경험했던 부모의 역할을 재현하게 된다.
이 때문에 상담자는 단지 해석을 제공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내담자의 과거 가족 관계를 살아내는 상대로 서게 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상담자의 내면도 흔들린다. 내담자의 슬픔에 자신의 과거 슬픔이 겹쳐지고, 내담자의 분노가 상담자의 억눌린 분노를 깨우기도 한다. 상담자가 이 모든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치료적인 만남이 일어난다.
진짜 관계는 불편하고, 어렵고, 때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서만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상담실에서 내담자는 상담자를 통해 자기 인생의 반복을 체험하며, 그 반복을 멈출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 기회는 상담자가 그 반복을 함께 살아내고, 직면하고, 언어화해 줄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것이 전이 분석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상담자 자신이 이 자리에 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담자는 자신 안의 회피, 불안, 방어를 진실하게 마주할 때, 내담자도 자신의 내면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다. 상담자는 거울이며, 동시에 살아 있는 타자다.
아이는 부모를 속일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진실은, 부모도 아이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담자 역시 내담자의 눈앞에선 그 어떤 이론과 기술로도 자신을 숨길 수 없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자녀의 눈을 가진 자의 자리로 초대받는다. 사회적 가면이나 방어기제가 무너지는 이 자리에서,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