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이고, 입을 씰룩이는 틱 증상을 갖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약을 처방했다. 처음엔 증상이 줄어드는 듯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심해졌다. 약이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듣지 않는 것이다.
틱이란 녀석은, 약의 힘으로 잠시 억눌려도, 다시 틈을 비집고 올라왔다. 나는 이 아이를 상담하게 되었다. 내가 치료를 시작하며 그녀에게서 느낀 인상은, "참 착한 아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문제 하나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싫어요"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러나 그녀의 몸은 말하고 있었다. 눈을 깜박이고, 입을 씰룩이며, '나는 괜찮지 않아요'라고, '이대로는 힘들어요'라고, 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유일하게 엄마에게 저항할 수 있었던 통로는, 바로 이 틱 증상이었다.
정신 역동적 관점에서, 우리는 증상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진리를 담고 있는 중요한 통로로 본다. 그 아이의 틱은 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호였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이대로는 안 돼요"라고 외치는 목소리였다. 치료는, 그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정신분석적 치료는 외부에서 주입된 해결책이 아니라, 환자의 증상 안에 내재한 진리를 끌어내는 과정이다. 약물은 일시적으로 증상을 억제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진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고 이해하며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진리는 환자의 증상 안에 있다. 그 진리는 바로, '지금 내가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 '내 안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열쇠이다. 치료자는 그 열쇠를 해석하여 환자가 자신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 증상 속 진리는, 에고 안에 갇혀 있는 진리를 셀프와 연결하는 관문이다.
증상은 압축된 시간이고, 압축된 이야기이다. 아이의 틱 안에는 유아기부터 쌓여온 '엄마의 말만 듣는 착한 아이'라는 이야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억눌린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질 때 치유의 힘을 가진다.
치료란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곧 치료이다. 억압된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안전한 공간에서 표현할 때, 증상은 비로소 '말'로 대체된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시간을 분화시켜야 한다. 유아기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가 혼재된 상태를 구분하고,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할 때, 환자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치료란, 단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 담긴 진리를 파헤치는 작업이다. 그 진리는 과거의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환자가 어떻게 경험했는가, 그 경험을 지금 어떻게 의미화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치료자는 환자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 기억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정신 분석에서는 이 과정을 전이 안에서 탐색한다. 치료자에게 향하는 감정, 반응, 저항들은 과거의 중요한 인물들과의 관계가 현재 치료자와의 관계로 반복되는 것이다. 치료자는 이 전이를 해석하며, 환자가 그 반복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증상은 단절된 시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응축되어 나타난 것이다. 치료는 이 시간을 풀어내고, 이야기를 다시 구성하여, 환자가 자기 삶의 저자(author)가 되도록 돕는다. 약물은 그저 '편집자'일뿐이다. 진짜 이야기는 환자가 써야 한다.
이러한 치료는, 외부에서 주입된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환자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에너지다. 아이는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느꼈던 분노와 슬픔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증상으로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치료한다고 말할 때, 진정한 치료는 그 사람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진리를 깨우는 일이다. 증상은 그 진리의 문지방에 놓인 신호이다. 우리는 그 신호를 단순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함으로써, 환자가 자기 삶을 다시 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 아이는 틱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이제 엄마에게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녀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진리는, 내 안에 있고, 당신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진리는, 말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털어놓는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상담자의 귀를 통과하고, 상담자의 정신과 인격을 통과하면서, 다시 아이에게 되돌아갈 때 새롭게 재구성된 이야기, 즉 하나의 내러티브가 되어 있었다.
이때 내러티브는 상담자의 해석이자 반응이며, 아이의 내면이 외부로 드러난 스토리와 다시 연결되도록 돕는 다리 역할을 한다. 스토리텔링이 자아의 이야기라면, 그렇게 상담자를 통해 정제되어 아이에게 돌아간 내러티브는 아이의 셀프(self) 안에 간직되었다.
이 내러티브는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치며, 이후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다시 말해, 아이는 자신의 삶을 단순히 ‘살아가는 존재’에서 ‘이야기하는 존재’로 나아가며,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을 통합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