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타인에게서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짜증, 화, 섭섭함, 찝찝함, 수치심, 때로는 죄책감까지.
특별히 무례한 말을 들은 것도 아니고, 커다란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 한켠이 불편해진다.
내게 중요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의 작은 손짓에도, 약간 비뚤어진 입모양에서도, 지나가는 한 마디에도 내 마음은 소용돌이칠 수 있다.
이 감정의 출처를 따지는 데에는 둘 중의 하나다.
즉 ‘상대방 탓’ 혹은 ‘내가 너무 예민해서’로 쉽게 결론짓곤 한다.
하지만 저는 점점 이렇게 믿게 된다.
그 불편함은 내 안의 무언가가 ‘들썩’ 했다는 신호요, 내 안에 '나쁜 나'가 튀어나온 것으로...
그리고 그 신호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미처 몰랐던 내 욕망, 결핍, 역할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제 가까운 관계 안에 있는 사람, 그녀의 남친은 종종 그녀의 짜증을 유발한다.
그는 어떤 날엔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어떤 날엔 자기감정에만 몰두한다.
매우 자기애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속으로,
"쟤는 도대체 뭘 믿고 내 앞에서 마냥 어린아이처럼 굴 수가 있지?"
그는 마치 여친을 ‘엄마’처럼 대하면서도, 정작 나는 ‘여자’나 ‘독립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는 이런 짜증을 단순한 예민함이나 인내 부족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감정은 그가 아직도 자기애적인 '이상적 자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이상적 자아'란, 아기가 엄마에게만 예쁘게 보이면 되는 아이의 위치에 있는 자아상태를 말한다.
그로 인해 나는 “나도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존중받고 싶다”는 제 안의 '자아 이상'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아 이상'이란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가치를 지닌 자아를 말한다.
즉, 그의 미성숙함은 제 안의 고요했던 욕망과 자존을 깨우는 자극제인 셈이다.
그는 종종 이유 없이 군것질을 반복하거나 계속해서 커피나 차를 마시는 등 아기 같은 무기력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 그의 행동은 처음에는 절제 없음 또는 게으름으로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유아기 때 충족되지 못한 어떤 ‘허기’의 흔적일 수 있다.
TV 프로 중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하루 종일 커피를 20잔 이상을 마시고, 커피에 밥을 말아먹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먹기와 마시기를 반복하고, 그것도 특히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것은 분명 엄마에게서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일 것이다.
엄마의 충분한 돌봄, 자율성을 키워주는 인정, 성취에 대한 뿌듯함이 결핍된 채 자라난 사람은 이후의 삶에서 그 결핍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하게 된다.
그런 그의 반복은 자주 그녀에게 또 다른 감정을 유발한다.
“왜 나는 자꾸 그의 엄마 노릇을 하게 되지?”
“왜 그는 계속 아이이기만 하고, 나는 이 관계 안에서 혼자 어른이어야 하지?”
그가 여친에게 계속 엄마의 역할만 기대할 때, 여친은 나 자신의 존재, 즉 여자로서 존재, 연인으로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고 짜증 나게 된다.
그의 자기애적 행동은 '이상적 자아 및 유아기 엄마'와의 동일시와 연결된다.
유아기에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 그 사람, 젖을 먹을 때조차도 공감과 칭찬을 받지 못했던 그 남자는 지금 여친에게 젖이 부족함을 드러내고 끝없는 '목마름'이나 간식 중독 같은 유아기 결핍을 드러내면서, 그녀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결핍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그녀는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뭔가를 해줄 때 '짜릿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 '짜릿함'은 얼마나 채워져야 '뿌듯함'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에게서 수시로 얄미움이 전이 감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결국 '성장과 자기 이해를 위해 필요한 균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감정은 그저 피곤함이나 두 사람 사이의 성격 차이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녀 안에는 ‘엄마라는 역할의 고착’에 대한 저항이 있고, 그녀의 존재가 하나의 기능으로 축소되는 데 대한 불쾌함이 있다.
그녀는 상담자로서 나는 내담자들을 대하면서도 자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분명히 그녀는 상담자로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인데, 어느 순간 ‘얄미움’이나 ‘지겨움’ 같은 감정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기대한 무언가가 충족되지 않아서일까?”
“상대가 아닌, 내 안의 어떤 결핍이 반응한 것은 아닐까?”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사실 ‘나쁜 나’의 증거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균열이다.
이 균열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자기 성찰이라는 빛, 성숙으로 나아가는 기회라는 빛 말이다.
감정을 다룬다는 건 결코 억누르거나 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정직하게, 더 세밀하게 감정의 근원을 구분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한 ‘화’인지, 인정받지 못했다는 ‘섭섭함’인지,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인지.
감정의 뿌리를 파악하면 우리는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이나 어려운 상황을 단순히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찰과 발달(이상적 자아에서 자아 이상으로 나아감의 발달)을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는 네가 그런 태도를 보일 때, 마치 엄마 역할만 기대받는 느낌이 들어서 서운해.”
이런 식의 표현은 비난이 아니라, 자기 보호의 언어이다.
그리고 이런 대화를 통해 관계는 점점 더 건강한 균형을 찾아간다.
부정적 감정을 자신의 능력 부족이나, 자신 안의 '나쁜 나'의 출현, 못된 성격의 발현 등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관계의 역동 속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결과로 이해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타인과의 관계, 특히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는 부정적 감정은 자아 발달 단계, 관계 역동, 과거의 관계경험, 유아기 및 아동기의 결핍과 트라우마 등 다양한 요인과 얽혀 있음을 기억하자.
이러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억누르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을 정신 역동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구분하며, 필요하다면 솔직하게 표현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부정적 경험 자체를 자기 이해와 성장의 필수적인 '균열'로, 존재의 '빈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부정적 감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감정의 근원을 따지기에 가장 분명한 것은,
'이것이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온 것인가? (경우에 따라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아버지-어머니-나' 관계에서 온 것인가?'
를 더듬어 보는 것이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자기애적인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은 곧 '이상적 자아'의 측면이다.
그것은 기하학적으로 보면, 평면적 차원이거나 또는 직선이나 곡선의 관계일 것이다.
'아버지-어머니-나'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적 도덕과 규범, 복잡한 관계 범주에서 나오는 '자아이상'의 측면이다.
기하학적으로 보면, '자아이상'은 3차원적인 입체감을 가지고 있는 관계일 것이다.
감정은 순수한 여성성의 영역이다.
감정은 감동이나 감탄, 전율을 가져올 수 있으나, 대부분 내면의 감격적이고 잔잔한 동요와도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꽃을 보면 몸의 감각이 생생해지고 마음이 환해지면서 '예쁘다. 아름답다' 등으로 표현한다.
그렇지만 emotion은 몸을 동반한다.
즉 슬픔이 밀려오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끼게 되고, 목소리까지 꺽꺽~ 댄다.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나면, 몸이 떨린다.
emotion은 평소에 feeling을 경험하지 못한 결과이다.
또는 feeling으로 느끼고 싶은데, 그 감정이 분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 관계로 emotion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이다.
운전 중에 옆의 차량 운전자와 시비가 붙게 될 때, emotion을 많이 경험한다.
이렇게 보면, 부정적 감정은 주로 emotion에 해당된다.
자신의 emotion이 순수한 자신의 감정(화, 짜증)인지, 아니면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이차적인 감정(죄책감, 수치심)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을 유발하는 원인이 표면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실제 정신 역동적 이유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연인에게 "오늘은 나 혼자 있고 싶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심한 버려짐의 감정과 분노, 눈물까지 느꼈다.
연인의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이 부정적 감정의 유발 요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깊이 관찰해 보면, 연인의 거절은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우울증으로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고, 어머니로부터 거절당한 자신을 유아기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던 경험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거절당했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 연인의 행동은 단지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고, 실제 감정의 크기와 깊이는 유아기의 상처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꼭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이유 없이 싫은 사람도 있다.
타인의 그 감정을 억지로 없애기보다는, 왜 그런 감정이 나에게 일어나는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안에는 반드시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들어 있다.
심지어 그 안에 정답도 들어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정답에 도달할 수 있는 해법, 즉 풀이과정이 필요하다.
정확한 정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풀어가고, 나 자신을 이해해 가는 풀이와 해답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은 고장 난 감정이 아니라, 내면의 메시지이다.
그 감정을 따라가 보면, 잊고 지낸 나의 욕망, 억눌린 자아, 진짜 원하는 관계의 모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상적 자아는 외면하고 싶은 불폄함은 나 자신이 자아 이상으로 전환할 때, '내가 잘해야 한다'는 남성적 강박 속에서 '내가 못해도 된다'는 균열, 존재의 틈, 여성적 히스테리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