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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자아란? – 관계, 나르시시즘, 동일시 중심으로

이상적 자아란?


이상적 자아(Ideal Ego)는 인간의 심리 발달 초기 단계에서 형성되는 개념이다. 정신분석에서는 보통 생후 3세 이전, 특히 엄마와 밀착된 시기를 이상적 자아의 시기로 본다. 이 시기의 아이는 ‘엄마에게 사랑받는 나’, ‘엄마가 예뻐하는 나’가 곧 자기 존재의 근거라고 느낀다.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엄마의 시선과 감탄을 통해 자신을 살아 있는 존재로 경험한다. 아이에게 엄마는 거울이자 전능한 존재이며, 이상적 자아는 바로 이 엄마의 거울 속에서 이상화된 ‘이상적인 나’의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이상적 자아는 현실 속의 나와는 다르다. 현실의 나는 연약하고 좌절을 경험하는 존재지만, 이상적 자아는 엄마의 눈에 비친 완전무결하고 아름다운 자아다. 이 환상적 이미지가 처음 자리 잡는 곳이 바로 1:1의 밀착된 관계, 즉 2자 관계다.


2자 관계 속의 이상적 자아


이상적 자아는 철저히 2자 관계(two-person relationship) 속에서 형성된다. 이 관계는 주로 엄마와 아이, 또는 다른 주요 양육자와의 밀착된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시기의 아이는 엄마만을 바라보며, 엄마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이고, 엄마의 반응이 곧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지표가 된다.

이 관계 속에서 아이는 강한 전능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엄마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여주는 경험은 곧 ‘내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감각은 성장 과정에서 서서히 조정되어야 하지만, 만약 이 시기의 전능감이 적절히 해체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자기중심성과 타자에 대한 의존성이 지속될 수 있다.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늘 전능환상에 사로잡혀 있게 된다. 전능환상이 자신을 고양시켜 주기도 하지만, 일생 동안 일어나는 속임, 사기, 보이스 피싱, 다단계 환상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구약적 신앙과 이상적 자아


이상적 자아의 전능감은 종교적 믿음 속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특히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을 전능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로만 이해한다. 고난이나 상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며 의존한다. 이러한 신앙은 마치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기대하듯, 전능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욕구를 즉각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에 머무르게 된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신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 응답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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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믿음의 행태는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거기에 자신의 노력이나 인격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구약적 전능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이상적 자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가 된다. 흔히 ‘기복 신앙’ 또는 ‘유아적 신앙’이 바로 이런 형태의 것이다.

심지어 부부관계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갈등을 겪어내면서 해결해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교회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면, 매우 미성숙한 신앙인 것이다.

하나님을 온전한 타자이자 나를 넘어선 존재로 경험하기보다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이라는 유아기적 전능감의 연장선에서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이다.


나르시시즘과 동일시 대상


이상적 자아는 나르시시즘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자아가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기반이 바로 이상적 자아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은 흔히 부정적으로만 이해되지만, 초기 발달에서의 건강한 자기애는 자아의 핵심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문제는 이 나르시시즘이 현실의 자기와 이상적 자아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발생한다.

엄마가 거울 역할을 해주는 시기에, 아이는 엄마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비춘다. 엄마가 자신을 예쁘다고 말할 때, 아이는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감각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 동일시 과정을 통해 아이는 엄마의 긍정적인 시선, 감탄, 수용을 자기 안으로 흡수한다. 하지만 반대로 엄마가 불안하거나 냉담하다면, 아이는 자기 안에 ‘사랑받을 수 없는 나’를 내면화하게 되며, 이는 자존감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엄마의 공감적 시선과 따뜻한 안아주기를 통해 '자기애'를 충분히 채워야 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전능환상을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 그것이 그 시기에 충분할 때, 일생을 통해 더 이상 '자기애적'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되고, 전능감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자기애적'이 되고 전능환상을 자극하는 상황에 기꺼이 휘둘리게 된다.

어떤 은행 지점장이 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순간, 전능환상을 자극시키는 데에 휘둘려,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3000만원을 송금하는 순간, "보이스 피싱에 내가 당했구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제 3자가 들으면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즉각 알게 되지만, 당사자가 전능환상에 사로 잡히게 되면, 합리적 이성이 작동하지 못하다가, 송금하는 순간 이성적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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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캇의 '거울 반영'의 중요성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D. W. Winnicott)은 이 시기의 엄마가 아이에게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거울 역할’이라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의 표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한다. 엄마가 기뻐하면 아이는 자신이 기쁨의 대상이라고 느끼고, 엄마가 무표정하거나 거절의 표정을 짓는다면 아이는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이상적 자아는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진 자아의 이상화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아이는 세상 속에서 다양한 타자들과의 관계를 경험하면서 이 이상적 자아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좌절을 겪고 실망을 경험하며 ’자기 이상(Ego Ideal)’이라는 또 다른 구조, 보다 성숙한 심리적 구조를 발달시킨다. 자기 이상은 사회적 규범, 가치, 윤리 등을 반영하며 자기 성찰과 책임의 기반이 된다.


이상적 자아에 머무를 때 나타나는 문제


성인이 되어서도 이상적 자아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관계에서 심리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가족관계나 친밀한 관계에서 타인의 인정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죄책감이나 의무감으로 인해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중심을 외부에 두는 경향은, 자존감의 불안정성과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부족해진다. '현실 속의 나'는 결핍과 약함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이상적 자아’의 완벽한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과도한 노력이나 자기비하, 혹은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직장에서는 '일 중독'으로 나타난다.


마무리하며


이상적 자아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원초적 자아의 일부다. 이는 자아의 중심이 만들어지는 매우 중요한 토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의 성장 과정은 이 이상적 자아로부터 점차 현실의 자기로 이동하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숙한 자아를 형성해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엄마의 거울 속에 비춰진 아름다운 자아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수용하는 일은 더 이상 엄마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나에게 거울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하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세워가야 한다.


이상적 자아를 이해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의 성장과 치유를 위한 첫 걸음이다. 누구나 거쳐온 이 자아의 풍경을 돌아보며, 현재의 나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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