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보다 9배 더 사랑한다]두 가지 사례

첫 번째 사례



P의 포기하지 않는 지금-여기 감정 사용법


아내를 엄마로 착각하는 남편


남편은 오로지 아내만 바라볼 뿐이었다.

결혼 18년 차가 되어도 남편은 아내를 여전히 애인으로 생각하고 징그러울 정도로 아내의 꽁무니만 따라다닌다.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있으면 아이들 눈치 보는 것 없이 아내에게 과감한 스킨십을 시도한다.

집안에서도 남편이 애인처럼 아내를 따라다니지만, 남편은 아내를 엄마로 생각한다.

그것도 뭐든지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엄마를 원하는 남편이다.

그러면서 아내가 자기를 버릴까 두려워한다.


남편을 바꿔버리고 싶다


P가 보기에 남편은 남편 역할도, 자녀에게 아버지 역할도 모두 역부족이었다.

딸이 4살 때 문짝에 손톱이 찍혀 소리 지르며 울 때, TV를 보던 남편은 고개를 돌리고는 TV 보는 데 방해가 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은 TV를 계속 봤다.

급기야 P가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야 된다고!!!’ 얼굴에 핏발을 세우며 소리를 지르고 나니까 그때야 남편은 아내에게 물었다.


“나도 가야 해?”


그때 P는 참을 수가 없어 이번에는 비명을 질렀다.


“그럼 아빠가 딸을 번쩍 들어 안고 먼저 ‘병원 가자’ 해야지, 아빠라는 사람이 ‘내가 지금 가야 되냐’고 묻고 앉았어?” 그때 문득 남편을 바꿔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할이 바뀐 P의 남편과 아들


P가 볼 때, 남편보다 아들이 더 어른스럽다.

남편은 늘 보채고 구시렁댄다.

초등학생 5학년 아들은 엄마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40대 남편은 늘 성가시게 군다. 마치 남편이 못 해주는 것을 아들이 대신해 주는 느낌이다.

남편은 조금 귀찮으면 듬직하게 버텨주지 못하고, 늘 보챈다.

오히려 아들이 아빠의 이런 보채기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마치 아빠에게서 엄마를 보호해 주듯 행동한다.

아들이 볼 때 아빠가 아빠답지 못하고 엄마에게는 남편답지 못하게 여겨지나 보다.

때로 아들이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에게 남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아들은 아들로 살지 못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아들은 자신의 고유한 삶, 자기 나이에 맞는 삶, 자신의 위치에 어울리는 삶을 살지 못하고 만다.

이것이 P의 엄마로서의 고민이다.


아내의 내면으로 성큼 들어온 남편


하루는 친구들과 골프 치러 필드에 나갔다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었다.

다리를 좀 절뚝거리게 되었지만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것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차 후,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P는 그렇게 다친 다리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P는 즉시 아들에게 전화해서 잠시 내려오라고 했다.

P는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운 병원까지 갈 수 있었다.

치료가 끝난 후, 다시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그때야 비로소 P는 남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P는 즉시 남편에게 전화하여 ‘날 데리러 오라’고 요청했다.

남편은 아내의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달려왔다.

예전의 P는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을 부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편이 P를 향해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을 보자, 그동안 얼어있던 마음이 확 열렸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아들이 아닌, 남편의 부축을 받았다.

아들은 뻘쭘한지 쭈뼛거리며 멋쩍어했다.

남편의 부축을 받아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빠 대신 아들이 들어온 자리에 남편이 훅~ 들어왔다.

이제 아들은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 아들은 초5 아이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P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꿈을 기억해냈다.

남편과 진하게 딥-키스를 하는 꿈이었다.


엄마로부터 독립, 히스테리에서 벗어나기 첫걸음


P에게 있어 부부관계 회복은 엄마로부터 분리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P가 그동안 받아 온 예전의 상담에서 전혀 다루지 못했던 이슈였다.

엄마와의 분리는 P에게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찾아왔다.

엄마와 분리 이전에 P는 억울함이 분노로 올라와 누군가를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어 했다.

P가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면 그들은 대개 자신과 같이 맞장구쳐 주고 함께 흥분해 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P가 원할 때 같이 흥분해주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 P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혹독했다.

그들은 대부분 P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그들과의 관계에서도 P는 자신의 경계를 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엄마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숨을 쉴 만 해지자, 더 이상 함께 흥분해주는 대상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엄마와의 경계가 견고해지자, P는 이제 누구 앞에서든 경계를 잘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여기 감정’으로 인한 남편과 P의 변화


P의 남편은 여전히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고 자기밖에 모른다.

자녀가 둘이 있어도 그는 자녀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한 번은 P가 이케아에서 딸을 위해 책상을 주문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그것은 조립식이었다.

P가 조립 도면을 보며 힘겹게 맞춰가는 동안 남편은 불구경하듯 구경만 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일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할 일인데, P의 남편은 스스로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P는 혼자 다 할 수 있지만, 남편에게 이것저것 시켜 봤다.

어느 날 남편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당신 말이 맞더라’고 말한다.

P의 남편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메타 사고’가 생겼다는 점이다.

‘메타 사고’란 사고에 대한 사고를 말한다.

즉 반성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그냥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서 ‘숙고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P가 남편의 언행에 대해 ‘지금-여기의 감정’을 잘 표현해 온 결과다.


두 번째 사례

S의 노부모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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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나는 짧은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 사례는 부부가 왜 ‘지금-여기 감정’으로 칼로 물 베기(부부싸움)을 계속해야만 하는가를 보여준다.

나의 내담자 중 50대 초반의 S라는 여성이 있다.

S는 10년 전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래서 S의 관계 작업은 원가족 관계에서 해냈다.

S의 부모는 30년 각방 역사와 함께 관계도 냉랭했다.

40년 이상을 아무런 대화 없이도 서로 척척 알아서 기는 형태의 의사소통을 해 왔다.

노부부는 더 이상 어떤 갈등도, 지지고 볶을 일 없이 평화 유지해 왔다.

오랜 세월 서로 나이스 하게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해 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전부터 싸울 일이 없었다.

이러한 평화지대에 딸인 S가 개입하였다.

딸은 부모님의 평화지대를 전쟁 지대로 바꾼 것이다.

S도 나의 제안에 대해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부모님 부부 간에 갈등의 지옥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S에게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연세에 부모님이 부부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하나?’


S는 2년 동안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면서 갈등의 문을 열자, 온갖 문제들이 가시화되면서 관계 역동을 일으켰다.

노부부는 각자 마음속에 오랫동안 숨겨둔 서로를 향한 욕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딸을 통해 어머니의 의사를 타진했다.

“네 엄마한테 내가 안방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봐 줄래?”

엄마기 말하기를, “물어볼 거 뭐 있어? 그냥 베개 들고 들어오면 되지.”

30년 이상 각자 자존심을 걸었던 각방 쓰기는 깨졌고, 아버지가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80대 중반에 합방하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오기를 30년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그때부터 40년 동안 끊어졌던 대화가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부 간에 알콩달콩 싸우는 싸움도 시작되었다.

그 결과, 그동안 잠자던 세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살맛이 나면서 밥맛도 새로워졌다.

밥상 위에 반찬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화법을 몰라 이제 티격태격 싸우는 것이 그들의 대화법이 되었다.

이제 노부부는 100세 이상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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