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직장에서 은퇴할 때 은퇴교육을 받는다.
은퇴 교육자는 ‘일단 은퇴하면, 무조건 아내 옆에 딱 붙어 있으라’고 가르친다.
대개 남자는 이게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하라는 대로 한다.
평소에 ‘지금-여기 감정’으로 남편을 변화시키지 못한 이유는 지금까지 남편에게 당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당한 것이 많아도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끽소리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회적 페르소나의 권위에 힘입어 여자를 갑질했다면, 아내는 은퇴한 남편에게까지 굽실거릴 필요는 없다.
이제 은퇴는 부부간에 급격한 관계 변화의 요인이 된다.
만일 남편이 돈의 권력과 가장으로서 권위로 아내에게 함부로 대해 왔다면, 은퇴 이후부터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갑질이 시작된다.
은퇴하기까지 남자가 변화된 것이 없다면, 은퇴 후 남자의 변화는 더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에는 여자의 잘못도 크게 한몫했다.
중년기가 되면 누구에게나 부부관계에 변곡점이 찾아온다.
특히 가장인 남자에게 사회적 페르소나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 사람은(남자나 여자나) 페르소나를 갖추기 위해 열심히 산다.
누구나 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취직을 해야 했다.
사회적 지위가 견고할수록 경제력도 동시에 갖춰질 수 있다.
어느 정도의 페르소나를 갖춰야 돈도 벌 수 있다.
대체로 사람은 중년기가 되기 전에 제대로 된 페르소나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소위 출세를 하기 위해 기본적인 페르소나가 필요하다.
그래야 돈도 잘 벌어 경제적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인격이다.
남자가 그런 외적 인격만 붙들고 살면서 거기에 너무 재미를 붙이면 어느 순간 자아와 페르소나가 착! 달라붙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남자는 페르소나와 동일시되어, 페르소나에 매몰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개인 삶은 없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게 되고, 가정의 문제나 부부관계 자녀는 뒷전이 된다.
TV 프로그램 <우리 이혼했어요>에서 나한일 유혜영 커플이 나왔다.
1989년 결혼 후 두 번 이혼했다.
당시 나한일은 건설회사, 영화사, 드라마 제작회사, 광물 산업, 연예기획사, 통신사, 투자회사, 웨딩 회사 등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를 맛봤다.
회사 빚이 개인적으로 갚아야 할 빚이 돼 감옥에 들어가야 했다.
유혜영 역시 이 일로 인해 우울증을 안게 되었다.
나한일의 사업 실패는 이혼으로 이어졌다.
특히 두 번째 이혼은 나한일이 감옥에 있을 때 이뤄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7년 만에 만났다.
나한일과 유혜영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나한일) “만나면 뭐 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어. 이혼할 만큼 특별하게 싫은 건 없었잖아”
(유혜영) “싫었는데, 자기가 모르는 게 많아. 자기가 결혼 26년을 밖에서 살았어. 옛날에는 이렇게 마주
보고 대화를 한 적이 없어. 우리는 그냥 생활만 하는 거야 각자. ‘함께’가 아니었어. 그래서 각
자가 됐어. 지금처럼만 대화했어도 우리 그렇게 안 했어. 결혼생활 동안 대화가 아예 없었어.”
(나한일) “진작에 이런 시간을 내고 돌아다녔으면, 상대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미운 생각.
만들어?”
(유혜영) “세월이 지나서 밉다 곱다 보다는 ‘남편이었다’ 그런 거지. 제대로 아기자기하게 살아 보지 못
해서 아쉽지.”
(나한일) “나 때문에 이혼했다고 알아.”
(유혜영)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만났다를 반복했어. 둘 다 책임이 있지. 똑같아. 그건 우리의 잘못이야.
누구 때문이 아니야.”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업을 또 할 거야?”
(나한일) “절대 안 해. 사업 생각이 없어졌어”
(유혜영) “오래 걸렸다”
나한일의 세 번째 결혼 제안에 유혜영은 답변하지 않았다.
유혜영은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의 첫 번째 이혼 때는 유혜영이 나한일에게 “해동검도야 나야 선택해” 했을 때 나한일은 아내보다 해동검도를 선택했다고 한다.
첫 번째 이혼이나 두 번째 이혼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단다.
그것은 나한일이 아내보다 사회적 페르소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서 나한일이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혜영은 나한일의 세 번째 결혼 제안을 거절했다.(나중에는 세 번째 결혼에 합의했다)
남자가 중년기가 되면 누구에게나 여성성이 찾아온다.
한 번도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남자가 갑자기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해내지를 않나, 요란스럽게 청소기를 돌리지를 않나, 세탁기도 돌리려고 하질 않나...
남편이 이전에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확 바뀌어 다정한 형태로 다가오기도 한다.
중년기를 맞으면서 남자가 외적인 인격만 가지고 살다가 이제 내적인 인격을 찾고자 삶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동안 외부에서의 사회적 페르소나(외적 인격)는 집안에서 가장으로서 권위주의적 가면을 쓰는 형태로 연장되었다.
이제 내면 인격이 나오면서 권위주의적 가장의 모습에서 탈피, 사회적 페르소나를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한다.
내면 인격이란 바로 남자 안에 있는 여성성이다.
여성성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남자의 견고한 페르소나를 끌어내릴 재간이 없다.
사회적 페르소나는 완전히 벗어나 여성성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칼 융은 분석심리학에서 외적 인격을 끌어내리는 기능으로 내면 인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러나 남자는 이것만 가지고 두 인격의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남자의 내적 인격인 여성성은 현실적인 대상인 아내에게 투사된다.
중년기 아내의 여성성이 남편의 여성성과 연합하여 현실 남편의 권위주의와 사회적 페르소나의 경직성을 일으키는 남성성을 끌어내리려고 읍소하고, 울부짖고, 끝까지 항변하게 된다.
이때 아내는 ‘지금-여기의 감정’을 사용한다.
나한일은 한동안 사회적 페르소나가 자신의 인격인 줄 알고 사회적 활동을 통해 자아실현하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여기며 아내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너무 타이트한 사회생활을 하느라 자아와 페르소나가 동일시되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니 중년기가 되어도 나한일의 내면에서는 여성성이 올라올 기회가 없었다.
유혜영이 부부의 이혼에 ‘나도 한몫했다’고 하는 말은 바로 자신의 여성성으로 남편의 페르소나를 끌어내리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아내는 '지금-여기의 감정'으로 남편을 페르소나와 동일시되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여자라고 부부관계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는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자는 최소한 남자보다 9배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믿어야 한다.
그 9배 사랑은 지금까지 다른 방면으로 발휘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오해를 낳게 되고, 오랫동안 여성성 대신에 모성성과 남성성 발휘하는 등 엉뚱한 선택을 하며 살았다.
여자의 '9배 사랑'이 남편의 사회적 페르소나를 깨뜨리면서 동시에 여자 자신도 히스테리에서 차츰 벗어나 여성성 중심의 현명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