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가장 원하는 것

자기 결정권

아서왕은 많은 전설을 낳은 사람이다. 이 이야기도 그런 전설 중 하나이다.

[어른이라는 진지한 농담](추수밭, 6~12)이라는 책 감명 깊게 읽은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보겠다.


아서 왕은 기사들과 함께 잉글우드 숲 속에서 사냥을 하던 중 문득 자신이 기사 무리와 떨어져 혼자 남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 숲에서 불행하게도 악의 원형 격인 마법사 그로머 경(Sir Gromer)과 맞닥뜨린다. 아서 왕은 독 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었다. 그로머 경이 자신에게서 아서왕이 살아날 방법을 알려준다. 그 방법은 그로머 경이 수수께끼를 내면 정확히 1년 뒤 아서 왕이 이곳을 다시 찾아와 답을 맞히면 살고, 틀리면 죽는다는 것이다.

그 수수께끼는 다름 아닌,


‘여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다.

아서 왕은 무거운 마음으로 칼라일 성으로 돌아온다. 아서 왕은 가장 친한 사이였던 조카이자 원탁 기사 가웨인 경(Sir Gawain)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가웨인은 “밖으로 나가 해답을 찾아봅시다”라고 말한다.

아서 왕이 다시 잉글우드 숲으로 접어들 때, 한 마녀와 마주친다. 바로 레이디 라그넬(Loathly Lady)이다. 레이디 라그넬은 흉측한 몰골을 한 마녀였다. 어떤 판본에서 그녀의 얼굴은 습진으로 얼룩진 얼굴, 썩은 이빨, 곱사등, 고름 투성이인 발, 기름기로 떡 진 머리를 가진 마녀로 그려졌다.

그 늙은 마녀는 아서 왕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그 조건은 원탁의 기사 가웨인 경을 남편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가웨인 경은 궁중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아서 왕은 가웨인에게 그런 사정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포도주가 오가며 취기가 오르자 아서왕은 취중 발언을 하고, 가웨인 역시 취중 약속을 한다. 취중 약속은 큰 의미가 없지만, 가웨인은 다음날 자신이 흉측한 노파와 결혼해 왕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이라고 고백한다. 아서왕은 노파에게 희소식을 전하려 숲으로 말을 몰았다.

마녀는 기사의 언약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즉석에서 답한다.


“우리가 무엇보다 가장 원하는 것은 자기 결정권이에요”


‘자기 결정권’이란,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아서왕은 그 즉시 그로머 경을 찾아가 수수께끼의 답을 전했다. 그로머 경은 분노를 삼키고, 아서 왕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서 왕은 돌아가는 길에 레이디 라그넬을 찾아 함께 궁정으로 향했다.

결혼식은 예법에 따라 성대하게 치러졌다. 피로연이 끝나고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첫날밤이 찾아온 것이다. 이윽고 레이디 라그넬이 입을 열었다. “가웨인 경, 이제 둘만 남았으니 키스를 해주세요.” 가웨인 경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신부가 있는 침대로 올라가 키스를 했다. 그러자 흉측한 신부는 그가 이제껏 본 적이 없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탈바꿈했다. 가웨인은 그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었다. 두 사람은 황홀한 첫날밤을 보냈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라그넬; 당신이 보고 있는 내 아름다움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요. 내가 낮과 밤 중 언제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을지를 당신은 결정해야 합니다. 마법은 그중 하나만을 허락한답니다.


가웨인 ; 정 그렇다면 밤에만 내 앞에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세요.

라그넬 ; 그럼, 낮에는 사람들이 저를 두고 쑥덕일 텐데요.

가웨인 ; 그건 안 돼요! 그럼 낮에만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줘요!

라그넬 ; 우리 둘이 오붓하게 있을 때 진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제 가슴이 찢어질 거예요.


그러나 가웨인이 이렇게 말한다.


“낮과 밤 중 언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지는 당신의 판단에 맡기겠어요. 어떤 결정이든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라그넬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고마워요. 더없이 고귀하신 기사님. 축복받으소서, 이제 드디어 사악한 마법에서 풀려나 구원받았어요. 이제부터는 낮이고 밤이고 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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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가웨인 경이 레이디 라그넬에게 ‘자기 결정권’을 주자, 라그넬은 마법에서 완전히 풀려났다.

오늘날 결혼은 남자가 쥐고 있던 ‘자기 결정권’을 여자에게 돌려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젊은 부부일수록 '자기 결정권'은 남자에게 있고 여자에게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는 대개 여자가 남편의 근력에 근거한 힘과 권위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철없는 젊은 시절, 그런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억압하고 남성적 권위로 누르고 무조건 자기 말에 따를 것을 강요한다.

남자는 그렇게 무조건 순종하는 여자를 사랑한다.

그러다가 중년기를 넘어가면서, 그런 남편이 스스로 ‘애처가’를 자처한다.

공처가로 살아가는 남자도 생겨난다.

‘공처가’로 살아가는 친구를 “남자가 남자답지 못해 병신처럼 산다. 남자가 여자 하나 못 잡아서 아내한테 그렇게 빌빌 기냐?”라고 비웃는다.

그러면 친구는 “너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게 되어 있어. 네가 아직 신혼이니까 철없이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야! 벌써 결혼 5년 차인데, 내가 무슨 신혼이야, 신혼이... 어쨌든 나는 이혼했으면 했지 절대 공처가로 되지 않을 거야. 애처가라면 몰라도...”라는 확신으로 어깨에 힘주며 살아간다.

공처가와 애처가는 다르다.

공처가는 아내가 무서워서 잘 보이기는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남편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

이런 남편은 부인 앞에서 꼼짝 못 하고 아내에게 당한 억울함을 자녀들에게 보복한다.

그런 가정의 자녀들은 “아빠는 엄마가 옆에 있을 때와 없을 때 나한테 하는 말투와 행동이 달라”라고 불평한다.

이에 비해 애처가는 아내와 권력 구조가 바뀌는 것을 보면서 ‘내가 아내를 위해 뭘 하면 될까?’ 고민하고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이다.

위의 결혼 5년 차 남편처럼 일방적으로 아내를 사랑한다고 애처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애처가는 아내에게 ‘자기 결정권’을 부여한다.

아서 왕이 목숨을 건 수수께끼를 풀었고, 가웨인 경도 결국 자기 수수께끼를 풀었다.

남자는 자기 여자를 위해 일생을 다해 자기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남편이 자기 결정권을 아내에게 부여할 때, 부부관계는 성숙을 위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아내에게 자기 결정권 넘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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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내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나와 아내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아내가 나하고 끝까지 싸워줬다는 점이다.

나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를 벌려 놓을 때가 많았다.

그때는 나의 사고가 감정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는 너무 합리적이거나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이다.

나중에 보면 합리적 판단이라는 것은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었고, 이성적이라는 것은 감성 없이 혼자만의 이분법적인 자기애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혼자 끙끙 앓으며 오랫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인데, 아내에게 노출될 때 아내의 직관 앞에서 합리적인 것은 순식간에 모순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나는 혼자 오랫동안 고민한 것이 아내 앞에서 단칼에 잘려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에게 물어봤으면 진즉 나왔을 답을 나 혼자 끌어안고 시름이 깊어진 것이었다.

내 생각이나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은 외부 세계에서 만인의 마음을 얻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심지어 아내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도 내가 만족할 만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아내의 마음을 흡족하게 얻기란 40년 노력에도 아직도 역부족이다.

아내가 내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일상적이고 소시민적인 삶에서 바라보는 아내의 시각조차 맞추기에 실패하는 나를 너무나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세상에 널리 펼쳐져 있는 거대담론의 흐름을 타기에는 유능하지만, 아내의 미시 담론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나의 아내야말로 나를 절대 이해해 주지 않는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행동과 판단을 아내가 이해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아내가 이해할만한 행동과 판단을 하면 된다는 것을.

그렇다고 즉흥적이거나 감정적 판단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긴 사고 끝에 내려진 합리성이 아내의 ‘지금-여기’의 순간적인 판단의 합리성에도 미치지 못하고 만다. 이런 일은 하루 이틀 겪은 것이거나, 어쩌다 한번 겪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거의 일상적 경험이다.

나와 아내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해 보았다.

내가 지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나의 사고와 판단 그리고 합리성은 그 중심이 외부 세계에 닿아있지만, 아내의 여성성은 우주의 중심에 닿아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자가 외부 세계를 버리고 여성성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숨 쉬고 살아가는 한 경제생활을 위해 사회성을 능력껏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범하는 오류는 비단 나만의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내담자는 대부분 여자이지만, 그 여자들이 힘들어하는 문제가 바로 나 같은 남자들로 인해 발생하는 비리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런 내가 상담자가 되어 다른 가정을 어떻게 치유해 줄 수 있는가?

40년간 축적된 나의 비리와 그 비리에 대한 반성과 숙고, 날마다 수정해가는 부부관계와 가치관의 누적이 내담자들의 부부관계를 건강하게 세울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상담으로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힘은 내 실력이 아니라, 아내의 실력을 빌려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 앞에서의 나의 보잘것없는 존재 실력은 옛날이니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지금까지 23년 동안 많은 내담자를 만났지만, 내담자는 대부분 여자다. 남자가 자기 문제를 고민하면서 제 발로 상담실을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자 내담자가 부부 관계 문제를 의뢰하여 부부상담을 할 때, “남편도 상담을 받게 할까요?” 하는 질문에 나는 웬만하면 거절한다.


“어떤 남편이든 남이 고치는 것보다 아내가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낫습니다.”


남자는 아내와 무관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별도의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관계의 문제라면 아내의 ‘지금-여기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 주면 능히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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