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쓰는 부부심리학
인격 발달이란 칼 융이 거창하게 말하는 ‘개성화’를 꼭 이루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부부가 한마음으로, 한 영혼으로, 한집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행복은 좋은 관계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부부간의 이런 갈등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깊은 학문 탐구로, 높은 지식으로 인격을 도야할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더 이상 하지 말자.
100세 시대를 맞으면서 예전의 부부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은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다.
한 지붕 아래 서로 남으로 살아가는 것은 옆집보다 더 먼 거리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앞으로 그러한 현상은 보편화될 것이다.
명심할 것은 일단 남편과 거리감을 두고 살아도 절대 다른 남자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에게 새로운 환상을 주는 남자가 나타나도 ‘고놈이 고놈이다.’
다른 여자가 분리수거하여 버린 남자를 내가 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시대에는 아내에 의해 황혼이혼 또는 졸혼을 당하는 남편이 많을 것이다.
이런 이혼은 남자에게 더 이상의 미래도 환상도 꿈도 남기지 않는다.
남자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나는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지혜자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허당이 되어가고 언제 버려도 아깝지 않은 쓰레기처럼 되어가는가?
기술사회가 첨단화될수록 남자들이 사회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많아질 것이다.
사회에서 유능한 남자일수록 자신의 에너지를 자신이 속한 사회적 조직을 향해 아낌없이 사용할 것이다.
사회적 요구가 고도화될수록 남자는 예전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될 것이다.
남자의 내면에 있는 여성성만으로는 첨단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를 끌어내리기는 어렵게 된다.
남편이 이렇게 되기 전에 아내는 자신의 여성성을 사용하여 남편의 여성성을 끄집어내야 한다.
만일 아내가 남편과 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100세를 사는 것은 지옥이 된다.
아내가 '지금-여기의 감정'으로 남편을 끌어내리지 못하면 차츰 남이 될 수밖에 없다.
한동안 간직해 온 배우자 뇌도 차츰 배우자 이미지를 잃어가면서 사라질 것이다.
어떤 여자는 나이 50세가 되면서, 스스로 행복하다 생각했다.
자녀도 좋은 대학 들어갔고, 남편도 직장 다니면서 돈도 잘 벌어온단다.
지금까지 안 되는 일도 없었고, 불행이라 할만한 일이 닥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남편과 얼마나 잘 지내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서로 크게 간섭하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서로 허용해주고, 서로 양보도 잘하고 있으니 크게 부딪힐 일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앞으로 50년을 남편과 싸워가면서 지내야 되겠다고 충고했다.
그녀는 의아해했다.
굳이 그리하지 않아도 나는 행복한데, 이제 와서 무슨 싸움을 감당해야 하나?
나는 그녀에게 '남편과 공유하는 삶이 없이 앞으로 50년을 남처럼 사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하고 반문을 했다.
그것은 마치 100편의 드라마 중 지금까지 50편을 보면서 나름 드라마틱한 역동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드러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앞으로 더 이상 진행될 사건이 없이 그냥 달달한 드라마 나머지, 50편을 지겹도록 봐야 하는 시청자와도 같다고 충고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중년 부부야말로 각자 새로운 심리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부부관계의 비밀은 예전 시대에는 감춰져 있었다.
이제 100세 시대를 맞이하면서 부부관계에서 서로 직면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 정도 말하면, 여자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남자가 철드는 일에 왜 여자만 평생 동안 감당을 해야 하는가?'
남자는 아내가 아니면 ‘내가 누구인가?’을 알 수 없고, 여자는 남편 없이 ‘내가 여자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다.
이런 과정에서 여자는 히스테리를 내려놓게 되고, 자신의 고유한 여성성을 찾아간다.
오늘날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부부는 예전에 아무도 몰랐던 비밀을 알게 되는 가장 행복한 세대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모른 채 100세를 살면, 그 부부는 최악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