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억울함: 내 안의 분노, 이제는 놓아줄 때


계속되는 분노


"나는 그 선생님이 더 나빠. 어른들이 더 짜증 나."


이 말에는 지난 시간 동안 쌓여온 아픔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학교 1 학년, 아직 여리고 순수했던 아이의 마음에 새겨진 불공정한 상처는,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깊은 멍울로 남아 그를 괴롭힌다. 영상에서 극단적인 장면을 보며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며 엄마에게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의 연락처를 묻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홀로 싸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반복적으로 '억울함'의 감정을 경험해 왔다. 5학년 때의 비열한 친구가 그를 CCTV가 없는 구석진 곳으로 데려가서 그를 손찌검을 하며 놀리고 괴롭혔다. 멀리서 지켜보던 담임선생님(남자)이 이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둘이서 장난치는 수준으로 이해했으며, 학교 폭력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둘 다에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 반성문에 쓴 내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똑같이 취급하고 같은 벌칙을 주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하셨다.

그는 이게 너무 억울한 것이다. 분명히 가해를 하는 아이가 있고, 자신은 그 가해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피해자였는데, 담임선생님은 잘잘못이나 사태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똑같은 취급을 당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고 1년이 지났음에도 그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해한 학생보다 자신을 억울하게 만든 선생님이 더 괘씸했다. 선생님의 불합리한 처신은 어린 마음에 선생님과 어른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을 깊이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멈춰버린 시계 : 왜 과거의 상처는 깊게 남을까?


아이가 5학년 때의 사건에 그토록 꽂혀 있고, 가해자보다 선생님에게 더 큰 원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 시절, 선생님은 아이에게 '정의'와 '보호'를 해 줄 '어른'의 상징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그 어른이 오히려 자신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불공정하게 대처했을 때, 아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듯한 극심한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억울함을 제대로 표현하고 해결할 힘이 없었을 때, 그 상처는 고스란히 내면의 '아이'에게 각인된다. 마치 멈춰버린 시계처럼, 그 사건 이후의 시간은 흐르지 않고 그 자리에 갇혀버린 듯 느껴질 수 있다. 당시 해결되지 못한 분노와 무력감은 오랜 시간 동안 아이의 마음을 갉아먹으며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 하는 생각에 갇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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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엉킨 실타래, 이제는 풀어야 할 때


상담 중에 욕을 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분명 일시적인 해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엉킨 실타래의 한 끝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다. 실타래를 완전히 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섬세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그래도 안 풀린다"라고 하거나, 과거 선생님의 연락처를 묻는 것은 그만큼 해소되지 못한 분노가 크다는 증거다.


이 억울함과 분노를 건강하게 해소하고, 더 이상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도록 돕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을 제안한다.


1. 감정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해."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그가 느끼는 분노와 억울함이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감정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지", "정말 억울했겠구나"와 같이 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공감해야 한다. "왜 아직도 그 일을 붙잡고 있니?", "그만 잊어버려" 같은 말은 오히려 그를 더 고립시키고 감정을 억압하게 만들 수 있다. 외롭지 않게, 자신의 감정을 혼자 삭이지 않도록 돕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다.


2. 과거 사건 '다시 쓰기': 상처를 새로운 이야기로 바꾸는 힘

실제로 선생님을 찾아가거나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신, 심리적으로 과거 사건을 '다시 쓰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역할극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상담사와 함께 선생님이나 가해자 역할을 정해 놓고, 그가 그 당시 하고 싶었던 말을 실컷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욕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그 당시 억압했던 감정들을 마음껏 쏟아내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베개나 인형 등을 때리며 신체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을 넘어, 과거의 무력감을 지금의 통제 가능한 상황으로 바꾸는 경험을 제공한다.


3. 감정을 떠나보내는 세리머니

선생님과 가해자를 생각만 해도 그때의 그 감정이 그대로 올라오는 내담자에게 빈 종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억울함, 분노, 욕설 등을 가감 없이 표현하게 한다. 상담자는 미리 유리그릇이나 사기그릇을 준비해 두고, 거기에 다가 내담자가 그 종이를 불로 태우는 세리머니를 행하는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그 종이를 태우는 동안, 다음과 같은 멘트를 해 준다.


"이제 그 종이 위에 너를 괴롭혔던 모든 감정, 억울함, 분노, 그리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다 쏟아냈구나. 이 종이는 더 이상 너를 옭아매는 과거가 아니야. 이제 이 종이를 태움으로써, 그 모든 감정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불꽃처럼 새로운 시작이 될 거야. 이 불꽃이 네 안의 아픔을 깨끗이 태우고, 너를 더 단단하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야. 이제 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너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너 자신을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이어서 종이가 완전히 타들어 갈 때까지 옆에서 함께 지켜보며 내담자의 감정을 섬세하게 살피고, 필요하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덧붙여도 좋다.


"지금 어떤 느낌이 드니?"

"이 불꽃이 꺼지고 나면, 네 마음속에 어떤 공간이 생길 것 같니?"


이 세리머니는 단순히 종이를 태우는 행위를 넘어,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며, 스스로 치유의 주체가 되는 강력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상담자는 이 과정을 통해 내담자가 과거의 상처와 진정으로 이별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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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힘을 키운다: 나를 지키는 주체적인 힘


과거의 상처에만 갇히지 않고 현재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과거에 쌓인 감정을 here-and-now(지금-여기)로 풀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담자의 억울함은 어쩌면 담임선생님이 반성문을 쓰라 할 때, 자신의 억울함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임이 틀림없다. 자신의 억울함을 말로 해서 통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억울하다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뒤집어지며, 울기라도 했다면 오랜 세월 마음속에 그렇게 역동적으로 남아 있지는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내담자는 2년 전의 사건을 가지고 마치 지금-여기에 일어나는 일처럼 그렇게 생생할 수 있는가? 그것은 상담자가 그 내담자가 그 사건 전후에 어떤 유사한 억울한 일을 겪어 왔는지 묻고 탐구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그 내담자가 하나의 사건을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겪어 온 억울함의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방책들을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일생을 통해 계속 있어 왔던 억울함을 대표적으로 상징화시킨 그 사건의 본질에 대해 상담자는 파악해야 한다. 그런 억울함의 사건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언제 또는 어디서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했는지 물어보고 그 많은 유사한 사건들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으로 감정이 첨예화된 것을, 그와 유사한 사건들과 연결해 줌으로써, 담임선생님께 집중된 분노를 분산시키면서, 그것이 자신에게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되면, 압력밥솥과 같은 분노는 압력을 빼주는 꼬다리가 생겨나면서, 조절할 수 있는 분노로 바뀌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그 억울함 감정의 기원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 억울함은 가정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엄마와의 관계인지, 아빠와의 관계인지, 또는 둘 다인지. 대개 자녀는 부모의 좋은 자녀로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 부모에 대한 분노를 다른 곳으로 투사의 대상을 바꾸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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