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모호함으로 시작하는 인생
태내와 태밖의 연속성이 끊어질 때, 존재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머니 안의 어머니’와 ‘어머니 밖의 어머니’,
즉 존재함의 기준이 되어 왔던 내면의 심리적 어머니와 외부 세계의 현실적 어머니가
서로의 정체를 지탱하지 못하면, 자기 존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일이 된다.
아이는 어머니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비추지 못하고, 아직 ‘나’가 되지 못한 내면과 아직 ‘집’이 되지 못한 외부 세계 사이의 틈으로 떨어진다. 그 틈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존재의 모호함이다.
그 모호함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중개자를 잃어버린 존재가 품은 근원적 질감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상처에서 출발한다.
태중과 태밖 어머니의 연속성이 무너질 때 존재의 모호함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 원초적 균열이 우리가 평생 사랑하고 인식하며 ‘나 자신이 되어가는’ 여정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탐구하려 한다.
감각적 단절이 남긴 심리적 흔적들, 태어남은 감각의 폭풍 속으로 던져지는 일이다.
아이는 어둡고 따뜻했던 태내의 연속성에서 밀려나, 낯선 공기와 빛, 냄새 속으로 떨어진다. 그 순간부터 그는 세계와 대화를 시작한다. 그 대화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감각이다.
프랑수아즈 돌토는 신생아의 '첫 4일'을 인생 전체의 서문이라 보았다.
그 시기에 아이는 어머니의 존재동일성을 감각의 연결을 통해 확인하면서,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는다. 만약 이 감각적 동일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이 세계 속에 속하지 못한 채 — 존재의 모호함 속에서 생을 출발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호함은 단순한 혼돈이 아니라, 자폐, 아스퍼거, ADHD, 경계선지능장애, 경계선 성격장애 같은 신경발달적 어려움의 심리적 토양이 될 수 있다.
자폐는 태어날 때의 신성성을 세속화하지 못한 상태다. 인간은 태어날 때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하지만, 성장하면서 그 덩어리는 분화되고 기능화되어야 한다. 감각, 인지, 언어, 정서, 사회성 등 다양한 영역이 서로를 구분하고 연결하며,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라는 존재는 점차 사회적 주체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자폐는 이 분화의 과정에서 기능적 연결을 이루지 못한 채, 여전히 덩어리로 남아 있는 존재다. 그는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자신을 분화하며 존재를 구성하는 대신, 세계를 차단함으로써 자신을 보존한다. 그 결과, 자폐인은 분화되지 않은 감각과 정서, 그리고 고립된 자아의 상태로 ‘덩어리 인생’을 살아간다.
자폐 아동은 종종 “너무 많은 세계”를 경험한다. 감각의 홍수 속에서 압도당하고, 세계는 위협이 된다. 감각의 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의 문이 무방비로 열려 있어 모든 자극이 필터 없이 밀려들어온다. 소리, 빛, 촉감, 냄새 — 일상의 자극들이 그에게는 위협이 된다. 감각의 홍수 속에서 그는 압도당하고, 세계는 침입자처럼 느껴진다. 어머니를 통해 세계를 상징화시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세계 사이를 연결해 줄 매개체가 없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물러선다.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반복적인 행동과 의례적 움직임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어다.
자폐인은 어머니의 존재를 매개로 각각의 감각을 발달시킴으로써 외부 세계를 상징화하는 대신, 외부세계를 차단하여 자신의 몸을 상징화시킨다. 몸을 상징화시킨다는 것은 외부세계를 차단하기 위해 마치 철갑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신분석적으로 자폐는 ‘퇴행적 방어’로 읽힌다. 감각의 흐름이 초기부터 단절되었을 때, 아이는 관계 대신 자기 안의 안전한 공간으로 후퇴한다. 그의 내면에는 아직 “전체 대상”으로서의 타인이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타인은 부분적 자극으로만 인식되며, 전체적 존재로 통합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타인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자신만의 감각적 보호막 안에서 존재를 유지하려 한다.
자폐는 종종 어느 한 분야에서 놀라운 직관을 보인다. 숫자, 음악, 공간지각 등 특정 영역에서의 천재성은 자폐의 신성성이 세속화되지 않은 흔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직관은 몸의 감각과 연결되지 않는다. 자폐인은 마치 철갑옷을 입고 다니는 듯한 상태 — 외부 세계의 촉감과 온도, 리듬을 느끼지 못하는 갑각류의 피부를 가진 존재다. 그의 몸은 세계와의 접촉을 거부하며, 감각은 내부로만 흐른다. 이 철갑은 그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고립시킨다.
결국 자폐는 감각의 문이 닫힌 세계에 산다. 그 세계는 너무 많아서, 너무 적다. 너무 많은 자극이 필터 없이 들어오고, 너무 적은 관계가 그를 외롭게 만든다. 자폐는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나’를 구성하는 대신, 세계를 차단함으로써 ‘나’를 보존한다. 그 안에서 그는 덩어리로 존재하며, 분화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 신성성과 세속 사이, 감각과 직관 사이, 고립과 천재성 사이의 경계에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자폐가 태내와 태밖의 존재 동일성을 획득하지 못한 결과다. 태내의 세계는 절대적 보호와 감각의 통합이 이루어진 공간이다. 그러나 출생 이후, 인간은 그 절대적 통합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존재를 분화시켜야 한다. 자폐는 이 분화의 과정을 거부하거나 실패한 존재다. 그는 여전히 태내의 감각적 덩어리 속에 머물며, 태밖의 세계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못한다. 그 결과, 자폐는 존재의 모호함 속에 머문다 — ‘나’와 ‘세계’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내면’과 ‘외부’의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자폐는 존재의 분화에 실패한 자이며, 그 실패는 감각의 문이 닫힌 세계로 그를 가둔다.
자폐를 단순한 인지적 결함이 아니라, 존재의 구조적 실패로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자폐는 태내와 태밖의 동일성을 획득하지 못한 존재다. 그는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자아를 구성하지 못하고, 감각과 사고, 관계의 흐름 속에서 분화되지 못한 채 덩어리로 남는다. 자폐는 존재의 모호함이며, 그 모호함은 철학적·정신분석학적으로 깊은 사유의 대상이 된다.
세계와의 감각적 상호작용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분화되어야 하지만, 자폐는 여전히 태내적 덩어리로 남아 있다. 그는 세계를 향해 열리지 못하고, 몸은 철갑처럼 닫혀 있다. 이는 존재의 모호함이며,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형성되어야 할 자아가 미완으로 남은 상태다. 이는 존재의 분화 실패이며, 감각과 사고 사이의 연결이 끊긴 상태다. 자폐는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고로 만들지 못하는 존재의 상태다. 또한 자폐는 감각을 상징화하고 사고로 전환하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 그 결과, 자폐인은 감각을 경험하지만 그것을 의미화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