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전문 잡지인 Medical Times(2023.11.02, 이지현 기자)에 따르면, 한국인 1만 명당 1명이 경계선 성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는 유럽이나 미국의 2.7~5.9%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그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미국과 유럽 사회에서는 경계선 성격장애자가 병원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오해 때문에 치료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실제 발병률보다 낮게 나타나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경계선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게 된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어른들에게 시비를 거는 젊은이, 갑자기 감정을 폭발시키며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 SNS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극단적인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들. 그들은 단순히 예민하거나 성격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자기와 세상의 경계가 흐려진 채 살아가는 고통'을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관계 속에서 극단을 오간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다가, 아주 사소한 실망 하나로 그 사람을 철저히 밀어내기도 한다. “넌 내 전부야”라고 말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넌 날 망가뜨리는 존재야”라고 외친다. 그 사이에는 아무런 맥락도 없다. 감정이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의 따뜻함은 오늘의 분노 앞에서 사라지고, 관계는 단절되고, 존재는 흔들린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감정의 에너지가 너무 크고, 그것을 억누르지 못해 밖으로 쏟아내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충동적이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는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어요”라는 절박한 외침이 숨어 있다.
반대로, 감정을 안으로만 끌어안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조용히 무너지고, 아무도 모르게 상처를 키운다. 이들은 경계선 지능장애자일 가능성이 있다. 감정의 에너지가 낮고, 투사도 잘 되지 않아 모든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살아간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가 갑자기 울거나, 분노하거나, 관계를 끊으려 할 때, 그 사람을 이상하게만 보지 말자. 어쩌면 그는 '존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 지금도 그 단추를 다시 꿰매려 애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단추를 다시 끼우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치료나 조언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공감의 리듬'일지도 모른다.
경계선 성격장애의 탄생: 첫 4일의 상처와 대상의 붕괴
내가 만난 몇몇 경계선 성격장애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정서적 흔적이 있었다. 바로 탄생 직후, 어머니로부터 외면당한 경험이다. 어떤 이는 세상에 막 태어난 순간, 젖을 물리지 못한 채 머리맡에 놓여 있었고, 산후 우울증에 잠긴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따뜻한 눈길조차 건네지 못했다. 또 다른 이는, 태어나자마자 딸이라는 이유로 기대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고, 어머니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젖을 물리지 않고 외면했다.
이처럼 '삶의 첫 순간부터 사랑의 리듬이 끊긴 경험'은, 이후 그들의 존재 구조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세상과의 첫 접촉이 거절로 시작된 이들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나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존재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극단적인 애착으로, 때로는 깊은 공허로 되돌아온다.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BPD)는 단순한 성격의 문제나 성장 과정의 흔들림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존재의 가장 초기 구조가 잘못 짜인 결과'이며, 그 구조는 이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볼 때, 경계선 성격장애는 '생애 초기, 특히 탄생 직후 첫 4일 동안의 정서적 단절과 감각적 혼란'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유아가 생애 초기 ‘편집-분열적 자리(paranoid-schizoid position)’에 머물며, '자기와 대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 채 공격성과 불안을 경험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시기의 아기는 젖가슴을 빨면서 동시에 그것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 공격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젖가슴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고 느끼는 감각적 혼란'이다. 즉, '자기와 대상이 뒤섞인 상태에서 공격성과 피해의식이 동시에 발생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 공격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된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자기와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감정은 과잉되거나 무감각하게 흐르며, 관계는 집착과 단절 사이를 오간다. 그들의 삶은 '존재의 모호함 속에서 방향을 잃고', 때로는 극단적인 감정 폭발이나 공허함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관계에서 극단적인 반응으로 이어진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대상을 '왕처럼 대접하다가, 갑자기 거지처럼 취급하는 변덕을 보이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사이에는 '리비도 준위(libidinal investment)의 순차적 변동이 아니라, 아무런 맥락 없이 대상의 가치가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어머니라는 대상의 존재 연속성이 깨졌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 프랑수와즈 돌토(Francoise Dotto)는 '탄생 직후 첫 4일간의 정서적 접촉이 존재 구조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라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아기는 태내의 엄마와 태밖의 엄마를 동일한 존재로 인식해야 하며, 그 동일성이 확보될 때 세상을 낯설지 않은 연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질 경우, 아이는 '감각의 분열', '관계의 단절', '자아의 미분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돌토는 이를 '어머니 동일성의 부재'라고 표현하며, 이 부재가 아기의 존재의 연속성을 깨뜨리고, 대상과 자아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이 시기의 상처는 이후 삶에서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느냐”라는 억울함의 감정으로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존재의 구조가 잘못 짜였다는 깊은 정서적 고통'이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관계에서 '대상을 이상화하거나 철저히 이상화를 박탈하는 이분법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초기의 편집-분열적 자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상이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통합되지 못한 상태를 반영한다.
이러한 분열은 관계에서 극단적인 감정 반응과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대상이 조금이라도 실망을 주면, 그 대상은 완전히 부정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이는 '감정의 연속성이 결여된 상태', 즉 '감정과 기억이 통합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경계선 지능장애(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BIF)와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BPD)는 명칭은 유사하지만, 정신적 구조와 정서적 역동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특히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볼 때, 두 집단은 리비도 에너지의 크기와 흐름, 그리고 투사 방어기제의 활용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흐르는 감정의 에너지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그 에너지가 넘쳐흘러,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쉽게 밖으로 드러낸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마음속에 감정이 차오르면, 그것을 꾹 눌러두지 못하고 밖으로 쏟아내곤 한다. 때로는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 강하게.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놀라고, 본인도 스스로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충동을 조절하기 어렵고, 감정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들의 내면에는 강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으며, 그것이 외부로 빠르게 흘러나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경계선 지능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조금 다릅니다. 이들은 감정의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낮고, 그 에너지를 밖으로 표현하는 데 서툴다. 마음속에 무언가가 생겨도, 그것을 말로 풀어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그 감정을 혼자 끌어안고 조용히 아파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경계선 지능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말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능력, 사회 속에서 어울리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는 그들의 감정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고, 내면에 갇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마음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한 사람은 너무 많이 흘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너무 깊이 묻어둔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흔히 “정신장애”라는 말을 들으면 멀리 있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하지만 경계선 성격장애는 그리 멀지 않다. 그것은 우리 곁에 있는 사람, 혹은 바로 우리 자신 안에도 조용히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감정이 너무 커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 관계 속에서 자꾸만 흔들리는 사람, 사랑과 분노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사람. 그들은 단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존재의 구조가 처음부터 조금 어긋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 어긋남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감각과 정서의 리듬이 끊겼던 흔적이며, 그 흔적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어도, '다시 꿰매고 이어 붙일 수는 있다'. 그 실마리는 거창한 치료나 분석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공감의 리듬', 그리고 “나는 네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이어져 있는 존재라는 걸 믿는다”는 '존재에 대한 신뢰'일지도 모른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단절된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기억을 함께 이어 줄 수 있다면, 그들은 조금씩 자기 존재를 다시 짜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단지 누군가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서로를 껴안은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