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극단적인 행동을 보고 “성격이 이상하다”거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깊은 상처와 흔들리는 존재의 구조가 숨어 있다.
특히 경계선 성격장애자와 사이코패스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존재의 첫 단추가 잘못 꿰매진 사람들이다. 돌토에 의하면, 그 단추는 바로 탄생 직후 첫 4일, 세상과 처음 연결되는 순간에 생긴다.
이 시기에 아기는 태내의 어머니와 태밖의 어머니를 동일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어머니 동일성이 확보될 때, 어머니가 살아 온 세상은 아기에게 낯설지 않은 연속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연결이 실패하면, 아기는 세상을 낯설고 위험한 공간으로 경험한다.
내가 상담에서 만난 한 여성은 태어나자마자 젖을 물리지 못한 채 병실 한편에 놓여 있었다. 산후 우울증에 잠긴 어머니는 눈길조차 주지 못했고, 아기의 울음은 공허한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내담자는, 부모가 아들을 기대했지만 자신이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엄마는 나를 안아주지 않았어요. 그냥, 나를 봐주지 않았어요.”
그 짧은 말속에는 평생 이어진 사랑의 결핍의 서사가 담겨 있었다.
이처럼 세상과의 첫 접촉이 거절로 시작된 이들은, 이후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 물음은 종종 분노로, 혹은 극단적인 애착으로, 때로는 깊은 공허로 되돌아온다.
그것은 생애 태초의 어머니가 건네지 못한 첫 응답의 메아리다.
그들의 내면에는 “나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근원적 불안이 흐르고 있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관계 속에서 극단을 오간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다가, 아주 사소한 실망 하나로 그 사람을 철저히 밀어낸다.
“넌 내 전부야”라던 입술이 하루아침에 “넌 날 망가뜨렸어”라고 뒤집힌다. 그 사이에는 맥락이 없다. 감정이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의 따뜻함은 오늘의 분노 앞에서 사라지고, 관계는 단절되며, 존재는 흔들린다.
그들의 감정은 늘 넘치거나 터진다. 감정의 파도를 통제할 수 없기에, 그들은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나는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어요.”
그 울음은 이성과 논리를 넘어, 사랑의 리듬이 끊긴 자리에서 흘러나온다.
돌토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로 발전한 사람의 생애 초기, 특히 첫 4일간의 정서적 관계는 ‘감정적 연결의 부재’와 ‘엄마의 반응성 부족’이 핵심이며, 이는 이후 공감 능력과 도덕적 감각의 결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엄마의 태도는 종종 무관심, 우울, 혹은 정서적 단절로 나타나며, 아이의 감정적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엄마와의 초기 접촉이 결핍되거나 왜곡될 경우', 아이는 타인과의 감정적 연결을 배우지 못하고, 이후 '공감 능력, 죄책감, 도덕적 판단'이 결여된 인격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
'Bonding'은 부모가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적 연결이고, 'Attachment'는 아이가 부모에게 느끼는 반응입니다. 첫 4일은 bonding의 민감기로, 엄마가 아이에게 따뜻한 눈빛, 피부 접촉, 젖 먹이기 등을 통해 감정적 연결을 형성해야 한다.
이때 아기는 생존을 위해 감정을 끊고, 기대를 접고, 세상과의 연결을 차단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이 전략은 이후 성격 구조의 핵심이 된다.
•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감정이 극단적으로 요동치며,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유지하지 못한다.
•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하며, 타인을 도구화하고 조종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두 유형 모두,
어머니와의 감정적 연결 실패가 세상 전체를 위협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세상을 향해, 또는 타자를 향해 격노라고 하는 요동치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세상에 대해, 타자에 대해 철저하게 감정이 차단되어 있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세상을 품어주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싶어 한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에 대한 강한 기대와 이상화가 있다. 어머니는 자신을 품어주고, 이해해 주고, 절대적으로 지지해 줄 존재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어머니는 그 기대를 완벽하게 채워주지 못한다. 99번 잘해줬지만 단 한 번의 실망이 생기면,
그동안 받았던 사랑만큼의 크기로 격렬한 분노와 공격성이 터져 나온다.
이 분노는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품지 않았다”는 존재적 배신감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며,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절박한 시도를 반복한다.
그들은 세상을 품어주는 공간으로 믿고 싶지만, 그 믿음이 깨질 때마다 감정의 폭발과 관계의 파괴가 뒤따른다. 어머니가 살아온 세상이 아기에게 연속적으로 전달되지 못했을 때, 아기는 세상을 단절된, 낯선, 위험한 공간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형성된 심성은 단순한 기질이나 성격이 아니라, 존재의 구조 자체를 결정짓는 심리적 기원이다.
• 감정을 느끼면 약점이 드러난다
• 기대하면 배신당한다
• 누군가와 연결하면 상처받는다
이러한 믿음은
감정 없는 생존 전략, 공감 없는 관계 방식, 통제와 조작을 통한 자기 보호로 이어진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세상을 감정적으로 연결할 수 없는 공간, 즉 공격과 생존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들은 어머니와의 감정적 연결 자체가 애초에 형성되지 않았거나, 그 연결이 극도로 위협적인 방식으로 각인된 사람들이다.
경계선 성격장애자가 '품어주지 못한 어머니'에 대해 분노한다면, 사이코패스는 그 어머니조차도 감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타인은 정서적으로 연결할 수 없는 대상이며, 세상은 공감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다.
* 감정 없는 생존 전략,
* 공감 없는 관계 방식,
* 통제와 조작을 통한 자기 보호로 이어진다.
사이코패스는 애착의 실패를 넘어, 감정 자체를 제거한 존재다. 그들은 타인을 조종하거나 이용할 수는 있지만, 연결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다. 그는 세상을 공격하는 공간으로 인식하지만, 동시에 세상이 자신을 공격하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엄마는 아이에게 정서적 반응을 거의 하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아이는 울거나 눈을 마주치며 반응을 유도하지만, 엄마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감정이 외부로 연결되지 못한 채 내면에 고립된다. 그렇다고 산모가 산후우울증 상태에 있다고 해서, 그녀의 아기가 모두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엄마는 성별, 외모, 건강 상태 등에서 기대와 다른 아이를 낳았을 때, 실망과 거부감을 행동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젖을 물리지 않거나 눈길을 주지 않는 행동은, 아이에게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라는 '존재적 불신을 심어준다'.
아이는 생후 첫 시간부터 엄마의 얼굴, 목소리, 냄새에 반응하며 감정적 조율(tuning)을 시도한다. 엄마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이는 '감정을 표현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학습을 하게 되고', 이후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거나 반응하는 능력이 약화된다.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 중 일부는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한 사람들이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정치인의 약 20%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들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한 판단과 강한 추진력으로 의사, 법조인, 기업가, 정치인이 되기도 한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기에 위기에서도 침착하고,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기에 효율적이다. 그래서 사회는 그들을 “유능하다”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유능함은 공명심과 권력욕, 그리고 정서적 단절의 대가 위에 세워져 있다. 사이코패스는 공감의 회로가 끊긴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계를 도구적 수단으로 인식한다. 사랑도, 우정도, 동료애도 그들에게는 전략일 뿐이다. 감정은 연결이 아니라 조종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특히 내면의 반성 능력이 결여된 ‘약한 사이코패스’는, 권력과 재물, 사회적 위치에 집착하며 타인을 이용한다. 그들은 자신이 끼친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기 우월감의 증거로 착각한다. 이들은 사회적 기능은 유지하지만,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고립된 존재로 살아간다.
존재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유년기의 상처가 아니라 '세상과의 첫 연결이 실패한 경험'이다. 그 실패는 이후 삶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 구조와 관계 방식'을 결정짓는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끊어진 사랑의 리듬을 되찾고자 감정의 파도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들의 고통은 '연결되고 싶은 갈망의 증거'이며, 치유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감정의 회로 자체가 제거된 존재다. 세상을 '공감 없는 생존의 공간'으로 인식하며, 타인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만 관계를 맺는다.
두 성향 모두, '어머니와의 감정적 연결 실패'가 세상 전체를 위협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경계선 성격장애자는 '감정이 살아 있는 존재'이며, 사이코패스는 '감정 자체가 제거된 구조'다.
이들을 이해하고 돕는 일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존재의 구조를 다시 짜는 깊은 분석적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세상은 품어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