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며느리는 20년 동안 시댁의 규율을 지키며 살아왔다. 아침이면 세수하고 화장까지 마친 얼굴로 인사를 드려야 했고, 시아버지 생신 당일에는 꼭 아침에 전화해야 했다. 그런 의무를 어기면 야단을 맞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자 안에는 두 여성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하와이고 다른 하나는 릴리스이다. 성경을 전설로 보는 일부 유대인들이 지어낸 신화이다. 아담의 두 아내, 자유분방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첫 번째 아내인 릴리스와 아담의 갈빗대 중 하나를 뽑아 만들어 남자에게 가부장적으로 종속적 지위를 감수하는 하와, 그 두 여인이다. 모든 여성은 이 두 여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맏며느리는 가부장적 질서 아래 시어머니의 엄격한 규율 아래 ‘하와’처럼 살아왔다. 착함으로 무장하여 남편에게 순종하고, 감내하고, 시댁의 규율을 지키는 존재. 하지만 둘째 동서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둘째 며느리는 ‘릴리스’처럼 자유로웠다. 아침에 머리 산발로 나타나고, 시아버지 생신날에 맞춰 미뤄뒀던 신혼여행을 떠나며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그러게 말이야” "그럴 수도 있지 뭐"라며 관용적으로 반응했다.
어느 순간, 맏며느리는 깨달았다.
“20년의 순종은 무의미했고, 엄격한 잣대는 오직 나에게만 적용되었구나.”
상담자는 맏며느리는 하와이고, 새 며느리는 릴리스라고 단언했다.
시어머니는 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가에 대해서는, 시어머니가 맏며느리를 보면 자신 안에 하와를 투사하게 되고, 자유분방한 새 며느리를 보면 릴리스를 투사하기 때문이라고 상담자는 설명했다. 시어머니 안에 두 인격이 대등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시어머니로서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중인격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가 있다. 명절 며칠 동안 시어머니가 이중 잣대를 가지고 두 며느리를 바라보고 있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첫아들이 아무런 자각 없이 아내의 일그러진 감정을 일체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명절 며칠 동안 시어머니에게 그리고 아랫동서에게 이리저리 당한 것이 20년 세월 동안의 가스라이팅과 그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감정을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는 비통함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어머니의 며느리들에 대한 이중 잣대를 두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MZ 세대의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둘째 며느리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는 점이 맏며느리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지점으로 남겨 두었다.
상담자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이혼이냐 시댁과 관계단절이냐. 상담자는 후자를 선호했다. 그 조건은 남편이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아내의 억울함을 해소해 주기 위해 시댁을 뒤엎는 것이었다. 더 이상 명절이나 시어른 생신이라고 찾아뵙지 않으면, 둘째 며느리가 있으니 그 며느리 예뻐하느라 열어 놓은 마음은 언젠가는 발기발기 찢어지게 되면서, 둘째 며느리가 맏며느리 복수를 해 줄 것이라고 상담자는 조언하였다.
시어머니는 맏며느리를 아무리 건드려도 도망갈 여자가 아니며, 무슨 말을 하든지 다 참고 꾸역꾸역 삼킬 며느리라고 생각한다. 맏며느리가 착하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어떤 행동을 해도 된다고 여긴다. 맏며느리는 수치심을 주고, 자존심을 '마음껏 건드려도 되는 애'로 인식되고 있다. 맏며느리는 '하와'에 속하는 여자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남편 곁에서 못 벗어날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둘째 며느리는 결이 달랐다. 그녀는 마치 릴리스의 속성을 지닌 인물처럼, 조금만 건드려도 집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신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를 내세우면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아담과 릴리스라는 것이다. 릴리스는 결국 남녀평등과 여성 해방을 주장하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존재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자신 안에 있는 릴리스 인격을 새 며느리에게 투사하며, 그녀가 떠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고 애지중지했다. 릴리스의 속성 중,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도망가 버린다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아는 시어머니는 새 며느리를 애지중지하며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시어머니가 평소 그토록 강조해 오던 서열과 질서를 두 며느리 사이에서는 철저히 무시했다는 점이다. 맏며느리가 동서 간의 위치를 바로잡으려 하자, 시어머니는 오히려 “네가 뭔데?”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그 순간, 맏며느리 안에 20년 가까이 강요당하며 쌓아 놓은 도덕과 질서, 규율, 가부장적 권위와 위계 등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부모가 형제간, 동서 간의 서열을 정리하지 못하고 각자의 위치에 걸맞은 대우를 하지 않는다면, 가정의 평화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스스로 질서를 무너뜨려 놓고, 형제간의 우애와 화합을 요구한다. 그 요구는 명백한 모순이며, 더 이상 지켜야 할 명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선언과도 같다.
그 요구에 응하는 순간, 맏며느리는 자신의 몫을 넘어 아래 동서의 천방지축까지 책임으로 떠안게 된다.
만약 그녀가 ‘착함’이라는 이름의 패러다임 속에서 그 모순을 계속 감내한다면, 그녀는 시어머니의 가스라이팅과 아래 동서의 무례함까지 모두 받아들이는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때 맏며느리는 자신의 집, 시댁, 시동생의 집에서 쏟아지는 감정의 쓰레기까지 모두 떠안는 거대한 ‘분리수거장’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 구조는 맏며느리에게만 짐을 지우는 불공정한 체계이며, 그 체계는 집안 전체를 흔드는 다이너마이트가 되어 언젠가 반드시 폭발하게 될 것이다. 시어머니가 이미 집안에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말았다.
이제 맏며느리는 선택할 것이다. 명절도, 김장도, 어른 생신도, 택배로 김치를 받는 일조차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 언제까지? 시어머니가 맏며느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모든 가족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하나의 원칙과 동서 간의 위계질서를 명확히 세울 때까지. 시어머니 안에 있는 두 여성, 하와와 릴리스가 통합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