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징그러운 도마뱀'을 안아줄 때: 원초적 자아의 귀환
집으로 들어가니 방에서 도마뱀이 두 마리가 놀고 있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니 도마뱀이 숨어 버린다. 징그럽다.
이 꿈은 어느 30대 초반 여성 내담자가 상담실에서 털어놓은 꿈은 그녀의 심리적 상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꿈속의 배경은 '집', 즉 그녀의 정신적 공간이자 참된 자아(Self)를 상징하는 곳이다. 그 집 안에는 징그럽게 느껴지는 도마뱀 또는 이구아나 같은 동물 두 마리가 숨어 있었다.
이 도마뱀은 지성이나 논리를 넘어선 '억압된 원초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그녀가 13세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단절되었던 삶의 연속성 속에 묻어두어야 했던, 그녀 본연의 충동, 감정, 그리고 여성성과 연결된 힘이다. 이 에너지는 번아웃과 무기력으로 고갈된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구원의 자원'이다.
그러나 내담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도마뱀들은 숨어버렸다. 이는 의식(Ego, 내가 아는 나)이 무의식(Self, 내 안의 주인)에 다가가고자 할 때, 무의식이 아직 '노출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담자가 평소에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했던 진정한 감정이나 분노가 아직은 의식의 영역 앞에 자신 있게 드러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꿈의 핵심은 이 원초적 에너지가 '징그럽다'는 내담자의 감각이었다. 왜 자신의 가장 원초적인 생명력에 징그러움, 또는 혐오감(Aversion)을 느낄까?
이 혐오는 외부의 가혹한 평가와 통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가 여성성 대신 남성성을 과사용해야 했던 삶,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 그리고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나약한 것'은 '징그럽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되었을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상사에게 할 말을 하고, 틱톡 생방송으로 남성적인 투쟁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해 왔다. 이는 "나는 징그럽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강한 기능인이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원초적 에너지를 필사적으로 억압해 온 결과이다.
도마뱀에 대한 혐오는 곧 '자신 본연의 여성성과 취약함을 혐오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녀가 이 징그러운 에너지를 의식화하지 못하면, 그녀의 삶은 계속해서 남성성(Animus)을 과사용하며 번아웃에 시달리거나,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멀어진 채 '징그러운' 무기력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담자의 위기는 '여성성(여성적 감수성과 본능)'이 억압되고 '남성성(성취, 투쟁, 과도한 근로)'이 폭주한 결과이다. 틱톡 방송에서 24시간 동안 '경계 없이 노출'을 감행하고 몸의 한계를 넘었던 행동은, 자신의 신체적, 감정적 경계를 무시하고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남성성'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꿈은 그녀에게 경고한다. 어머니가 남성성을 과사용하다 암이라는 형태로 신체적 위기를 겪었듯이, 내담자 역시 자신의 생명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무의식의 외침이다.
지금 그녀가 요리를 시작하고, 책을 읽고, '기능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바로 이 여성성 회복의 시작이다. 자신의 몸과 감정을 '돌보고, 챙기고, 쉬게 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식 깊이 숨은 징그러운 도마뱀에게"너는 안전해, 너는 혐오스럽지 않아"라고 말해주는 작업인 것이다.
이 꿈은 절망의 메시지가 아니다. 도마뱀이 숨었다는 것은 곧 '아직 그 에너지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내담자의 다음 과제는 이 '징그러움'에 대한 혐오를 멈추고 통합하는 것이다.
혐오의 근원 탐색: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나 사회적 위계질서 속에서 자신이 느꼈던 억울함, 분노, 그리고 취약함을 다시 꺼내어 '징그러움'이라는 감정 대신 '정당한 분노'나 '슬픔'으로 재명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원초적 에너지의 사용: 억압된 에너지를 '가난에 대한 공포(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나의 주체적인 사업(통제받지 않는 삶)'을 구축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공에 대한 막연한 욕구를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경영 능력(돈 관리, 회계)으로 치환하여 땅에 발을 닿게 해야 한다.
내담자가 '징그러움'을 벗고 자신의 원초적 에너지를 끌어안을 때,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13세에 끊어진 '자아의 연속성'이 비로소 이어질 것이다. 징그러운 도마뱀은 그녀의 상처가 아니라, 그녀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무궁무진한 생명력이다. 이 힘을 자신의 삶에 맞게 사용할 용기만이 지금 그녀에게 필요하다.
당신 안에 두 가지 감정 혹은 두 가지 욕구가 숨어 있고,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그것들이 최근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당신이 그 공간(내면)으로 들어가자 그 감정은 당신의 눈앞에서 바로 숨어버렸다.
이는 평소에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 즉 “보지 않음으로써 관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지금은 이 감정들을 조금 더 부드럽게 바라볼 수 있는 시기라는 뜻이다.
징그러웠다는 느낌은 오히려 무의식이 당신에게
“이제 이것을 너무 피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보라”
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