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끊어진 전화'와 '내 메뉴판'을 찾는 법
우리는 늘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받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대화의 틈이 생기면 무언가 채워 넣어야 할 것 같고, 내담자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해석'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히죠.
최근 슈퍼비전에서 저는 이 '즉각적인 충동'과 '멈춤의 힘'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숙련된 상담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의 상담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함으로써 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라면 즉시 해야 하겠지만, 그게 목적이 아닌 것 같아요.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나, 그걸 잘 숙고해야 될 과제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내담자의 꿈과 제 삶의 고민이 교차하며, 전문가로서의 성장은 결국 '나' 자신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는가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상담에서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도 적용되는 원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의 실수에 대해 바로 지적하고 싶지만, 자신이 스스로 왜 그런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인식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침묵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의 꿈에서 나는 관계 개선을 바라는 선생님과 통화를 시도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던 순간, 전화가 끊어집니다. 다시 전화가 이어지긴 했지만, 그 '끊어짐'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죠.
나의 분석가는 이 끊어짐이 바로 '경고'라고 해석하셨습니다.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 끊어졌다는 것은, 그 사안에 대해 당장 말하기보다는 깊이 '숙고(熟考, deliberation)'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신호라는 겁니다.
나는 상담할 때 내담자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전달하려는 '충동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건 내담자의 불안을 담아내지 못하고 내가 먼저 해소하려는 초보적인 방어일지도 모릅니다.
분석가를 통해 저는 '고수(高手)의 방법'을 배웁니다.
"상담에서 최고수는 해석을 아예 안 해주는 거죠. 분석가 안에서는 분석이 일어나지만 그것을 주지 않는 거죠. 내담자가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겪어야 합니다. "
그 방법은 바로 투사적 동일시였습니다. 내담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통찰을 소화하고 변화할 때까지, 상담자는 그 분석과 감정을 안전하게 '담아주는(Containing)'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통찰이었습니다. 나의 조급함을 멈추고, 내담자의 무의식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성숙한 전문가의 자세인 거죠. 그것은 꿈에서 본 장면, 통화를 하는 중 갑자기 통화가 끊어져 대화의 단락을 가져오는 것과 연결되었습니다.
다른 꿈에서 나는 남의 아기를 안고 푸드코트에 갔는데, 메뉴판의 글자가 동남아 글자처럼 알아볼 수 없는 언어였습니다. 결국 저는 음식을 주문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주문하고 자리를 뜹니다.
나는 여기서 깊은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남들은 다 아는 것 같은데, 나만 지금 '나의 욕구(Libido, 삶의 에너지)'를 충족시킬 '언어'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분석가는 이 꿈을 제 삶의 '경계(Boundary)' 문제와 연결하셨습니다.
저는 제 아이가 아님에도 '남의 짐(아기)'을 대신 지고 있었고, 남에게 좋은 사람 역할을 하느라 나의 고유한 욕구를 채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알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표기된 메뉴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지켜야 한다'라고 생각해 왔는데, 분석가는 꿈속의 메뉴판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제시했습니다.
"내 메뉴판을 찾는 게 중요하죠."
분석가의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 조직의 룰, 익숙한 방식에 휩쓸려 정작 '나만의 가치관'과 '나만의 언어'로 나의 삶의 에너지를 충족시키고 있는지 모릅니다. 외부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취약한 내면(꿈속의 아기)'을 돌보면서도, 당당하게 '나의 메뉴'를 주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경계가 취약한 내담자에게서 올라오는 나의 감정이었습니다. 내가 상담자로서 진행하는 상담의 어떤 내담자는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면서도, 나중에야 그 상황을 억울해하며 웁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무성애자로 자처하면서, 남자가 내미는 손을 마다하지 않고 악수를 하고, 그와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서면서 순순히 손을 내 준 것에 대해 후회를 합니다. 이것 또한 투사적 동일시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의도에 휘말렸다가 상황이 끝난 후에야 그 휘둘림을 인식하게 되면서 후회하는 것이지요. 그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남자와 손을 잡을 때 자신이 여자라는 느낌을 받은 것을 그와 돌아서는 순간, 자신이 스스로 규정한 무성애자로 돌아가려고 하니까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남자와 손을 잡는 순간, 성적 리비도가 분출되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그와의 헤어진 후에는 무성애자로 돌아서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상담자로서 내담자의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짜증'이 났습니다. 분석가는 내게 물었습니다.
"이 '짜증'의 출처가 어딘 것 같은가?"
분석가는 이 짜증이 치료적 실마리라고 했습니다. 이 짜증은 투사적 동일시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분석가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그 짜증이 그 내담자의 것이죠. 그 사람 건데 짜증을 못 내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대신 내주는 거죠."
내담자의 억압된 분노가 나에게 옮겨와 내가 대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역할은 이 짜증을 혼자서 삭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담아냈다가 내담자가 스스로의 분노를 인식하고, 경계를 세울 힘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대신 느끼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야말로, 내담자의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치료 재료'가 됩니다.
결국 나의 슈퍼비전은 '어떻게 잘 상담할까'를 넘어 '어떻게 더 온전한 나 자신이 될까'로 이어졌습니다.
전문가로서의 성장은 기법을 숙련하는 것을 넘어, '숙고'를 통해 '내 안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는 '경계'를 세우는 과정입니다.
내담자의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들으려 노력하듯, 우리는 우리 삶의 '끊어진 전화'와 '알 수 없는 메뉴판', 그리고 무성애 내담자에게서 끊어진 짜증, 이렇게 연결해 가는 분석가의 통합적 해석에 귀 기울여야 했습니다.
오늘, 당신의 인생에는 어떤 전화가 끊어졌나요? 당신의 메뉴판에는 당신만의 언어로 어떤 음식이 적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