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산다는 것

엄마의 품, 유아의 정신과 몸을 결합하다

건강한 삶을 위한 세 가지 조건


탐구자 : 사람이 ‘건강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분석가 : 건강한 삶이나 좋은 인격으로 잘 발달시켜 나갈 수 있는 조건을 세 가지로 보고 싶습니다.

첫째, 일단 ‘잘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주장은 아니고 생물학적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게 되는 탁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중에 있을 때의 태내외 환경으로 좋은 기질을 가

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나면 그 이후의 양육환경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나쁘다 할지라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심리적 근육을 타고난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매우 드물고, 후생 유전학에 의하면 좋은 유전자라고 해서 그렇게 결정적

이지도 못합니다.

둘째, 좋은 부모로부터 좋은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이 글의 매거진 제목처럼, '생애 첫 1년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대상관계 이론이 바로 이 지점에 초점

을 맞추고 있습니다.

셋째는 타고난 유전자와 기질, 그리고 부모의 양육 상황에서의 한계나 결핍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

지와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의 양육환경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성장해 가는 과정에 부모보다 더 좋은 대상을 만남으로써

양육의 결핍을 극복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상관계 이론은 둘째와 셋째의 경우에 필요합니다.


탐구자 : 심리적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분석가 :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따지는 것이야 말로 결정론이라고 봅니다.

대개 수저 타령하는 기준은 집안의 경제적 여건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평가는 경제적 여건에서 제한되지 않습니다.

신문에서 아주 슬픈 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 재학 중이던 어떤 학생이 자신의 <흙수저> 타령을 하면서 자살을 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대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고등학교 교사였습니다.

그 학생은 얼마든지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췄지만 경제적 여건이 자

신보다 월등한 누군가와 비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경제적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전개해 갈 수 있는 수많은 원형들을 가지고 태어

납니다.

그래서 누구나 지금보다 나은 미래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항상 꿈을 가져야 합니다


철학자 :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나무의 씨앗이 장차 참나무가 되는 것에 대해, 씨앗의 상태를 잠재태

(dynamis)로, 참나무를 현실태(energeia)로 봅니다.

그런데 dynamis에서 energeia 로의 존재 가능성은 개연성과 우연성의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합니

다.

개연성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고 우연성은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입니다.

잠재태에서 현실태 사이에 개연성, 우연성이 아닌, 필연성을 전제로 한다면 그야말로 결정론이 됩니

다.

사람은 일평생 살아가면서 개연성과 우연성,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새로운 변수 등으로 인한 존재 가능성

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타자들, 특별한 대상들, 소설이나 영화 및 드라마 속의 인물들, 심지어 동

식물, 사물들까지도 내게 새로운 존재 가능성들을 제시하는 대상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신분석학 vs 심리학


탐구자 :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에는 수많은 심리학이 있는데, 분석가께서는 왜 정신분석학을 선택

하셨는지요?

분석가 : 나의 최종적인 관심은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이라 함은 동물 실험을 통해 사람과의 유비 관계를 전제하면서 ‘인간은 이런 상황

에서 이렇게 행동한다’는 방식으로 인간 행동에 대한 판단을 내립니다.

물론 사람들을 모아놓고 실험하는 경우도 많죠. 이것은 일종의 또 다른 형태의 ‘결정론’이라 할 수 있죠.

심리학에서는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합니다.

일종의 보편적인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당위성을 부여하게 되니까 내 의

사와 관계없이 내 행동이 미리 결정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정신분석학은 일반 학문에서 규정한 보편적 인간으로서 ‘나’를 수용하면서 고유한 ‘나’를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철학자 : 보편적 인간은 철학에서 ‘공적 실재’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공적 실재로서의 ‘나’는 언제든지 타자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죠.

이 말의 내용을 잘 보면, 공적 실재라는 개념은 굉장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 칸트가 말한 ‘나’, 현대의 분석철학자 스트로슨이 말하는 ‘나’는 바로 이런

'나'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고유한 나’가 없는 겁니다. 타자들과 구별되는 ‘나’가 없는 거죠.

철학은 오랫동안 공적 실재로서의 ‘나’를 찾아 헤맸습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이러한 공적 실재로서의 ‘나’의 위험성은 현대 첨단기술과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

죠.


탐구자 : 공적 실재, 첨단 과학이 위니캇과는 어떤 관계에서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분석가 : 위니캇뿐 아니라 대상관계 이론을 알아 갈수록 강조되는 것은 바로 ‘몸’의 고유성입니다.

누구나 몸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몸이 정신과 얼마나 잘 결합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

니다.

위니캇은 유아가 경험하는 엄마가 제공하는 품이 아이의 몸과 정신의 결합을 얼마나 견고하게 하는

냐 아니면 느슨하게 연결되느냐를 결정합니다.

몸과 정신의 결합 상태는 그 사람이 얼마나 현실을 생생하게 살아가느냐 마느냐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성 리비도(에너지)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