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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여성성을 억압하는 것, 히스테리

나답게 살고 싶다




보통 사람들은 ‘히스테리’라 함은 ‘노처녀 히스테리’,


‘날카롭게 신경질적인 상태’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히스테리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처녀 히스테리라는 것은, 미혼의 상태가 오래 지속됨으로써


성적 에너지가 자궁에 모여 울혈이 된 결과로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테리의 범주는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히스테리는 굉장히 광범위한 증상으로 표상되고 있는 병입니다.


어딘가가 아픈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면 딱히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을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은 ‘신경성입니다’라고 말하죠.


바로 그 ‘신경성’이라는 것이 히스테리가 낳은 결과입니다.


히스테리를 전문적인 용어를 가급적 빼고 독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해 보죠.


히스테리는 여성적인 증상입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도 처음에는 착각을 했습니다.


히스테리는 여성의 증상, 강박증은 남성의 증상이라고... 이렇게 두 가지 증상으로 이원화하였습니다.


그런데 프로이트도 나중에 그 견해를 바꾸게 되죠.


제 1 차 세계 대전 중 전쟁터에 나갔다가 돌아온 병사들 중에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결과,


‘실어증’에 걸려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프로이트가 이들을 치료하면서 그 증상이 바로 히스테리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남자도 히스테리에 걸릴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든 여자든 히스테리는 여성성의 문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남성 안에도 이면의 인격으로 여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에게도 히스테리가 가능한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이든 강박증이든 성적 수동성의 경험이 그 원인임을 밝혔습니다.


그것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날 때는 히스테리이지만,


사고(thinking)으로 나타날 때는 강박증이 되는 것입니다.


성적 수동성의 상태에 처한 엄마를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지켜 본 딸 역시 동일한 처지에 처하게 되죠.


그 결과 딸은 자신의 여성성을 억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바로 그런 상태가 히스테리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자기모멸로 인해 공감과 긍정적인 마인드,


그리고 따뜻한 공감을 받지 못한 딸은 엄마로부터 자기애를 채우지 못한 결과 히스테리화된다고 합니다.


성과 관련된 프로이트의 전제는, 아이는 혼자서 성을 발견하지 않고 반드시 어른을 통해 전달받는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의 병인론」(1898)이라는 논문에서,


히스테리자의 억압된 기억을 이해하는 관건으로 ‘혐오’를 꼽습니다.


프로이트는 이 혐오를 ‘시체와의 만남’이라는 용어와 결합시킵니다.


‘시체와의 만남’이란 딸이 엄마에게서 보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항상 은폐된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딸은 엄마가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항상 여성성을 은폐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시체를 보는 것과 같고,


그런 엄마와 동일시해야 하는 딸은 삶을 ‘혐오’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여성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은폐하고 죽어지내야 하는 법을


터득해 가야 가부장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강간을 당하거나 성추행을 당해도


가해자를 벌하기 전에 여자가 평소에 조신하지 못하고 행실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질책부터 먼저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히스테리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에서입니다.


[국가]에서 hysteria를 ‘자궁’이라고 명하고 있지요.


히스테리는 여성성이 마비되는 병으로서 온 몸이 자궁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궁이 온 몸에 가득 차게 되면, 온 몸이 여성성으로 가득차서 화려해지는 것입니다.


여성이 히스테리화되면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형태를 이야기하겠습니다.


한 가지 유형은 남성화되어서 남자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한 가지 유형은 화려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을 하면서 외모적으로 화려해 지는 경우의 여자가 됩니다.












1. 몸의 본능을 거부하는 여성 히스테리



사춘기가 되면, 그 여성의 개인적인 성적 취향으로 차이를 드러내면서 두 가지 다른 현상으로 표상화됩니다.


전자는 자신의 성적인 느낌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몸을 꽁꽁 싸매는 형태가 되면서 여성성을 거부하는 형태입니다.


남자가 이런 경우의 여자를 볼 때, 별로 성적 매력이 안 느껴지기 때문에


별로 접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이런 여자는 ‘섬머슴 같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이 경우의 여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방어기제를 나름대로 잘 세운 셈입니다.


그러다가 결혼 적령기가 되면 그 나마 여성다움이 나와서 결혼까지는 가게 됩니다.


이 경우의 여자는 성격이 매우 보수적이고 여성성보다는 모성성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남편으로서는 자신이 바깥일에 열중해도 한 눈 팔 여자는 아니라는, 안심을 주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바깥일에, 아내는 집안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죠.


원래 여성의 남성성과 모성성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성을 사용하는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 대신 모성성을 사용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 크게 어려움을 못 느낍니다.


그 모성성이 여성성인 줄 아는 겁니다. 남편은 이런 아내에게 집안일을 맡김으로써 짐을 더는 면은 있지만,


이런 아내에게서 여성으로서 성적인 매력을 별로 못 느끼기 때문에


나중에는 밖에서 곁눈질을 한다거나 외도할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sexless 부부인 경우의 아내는 이런 경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아내는 성관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귀찮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유혹받지 않기 위해서 성에 무감각해 지기로 작정하면서


어릴 때부터 자신의 여성적인 몸을 거부해 온 것입니다.


그런 세월이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의 분리는 고통과 질병을 불러오게 됩니다.











2. 화려한 매력을 가진 여성 히스테리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여성은 매우 적극적이고 관중을 휘어잡기도 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 모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옷차림도 화려하고, 화장도 진하게 해서 섹시한 몸매로


주변 사람들을(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좌지우지합니다.


남자들이 이런 여성을 볼 때 그녀의 성적 매력을 반해서 쉽게 유혹을 느끼기도 합니다.


남자가 보기에 잘 빠진 몸매에 짧은 치마 그리고 진한 화장을 한 여성! 얼마나 매혹적인가?


남자들은 이런 여자를 보면 섹시하다고 느끼면서 혼을 빼놓은 정도로 유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들의 착각입니다. 여자는 이런 차림으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할 뿐입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여자는 자기 존재감을 얻기 위해 몸으로 표현한 것인데, 남자는 그녀를 섹시하다고 느끼는 것,


엄청난 차이죠. 이 차이가 두 남녀 사이에 동상이몽의 엉뚱한 사건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어떻게 히스테리일 수 있을까요?


플라톤은 히스테리를 ‘온 몸이 자궁으로 가득 차게 된 상태’라고 정의했던 것에 그 답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성적 능력이 한 군데로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좀 다르죠. 온 몸으로 성감대가 흩어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히스테리화되었다면, 성기적 능력은 상실하였고,


온 몸이 자궁(성기)가 되어 몸을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이런 형태로 히스테리화된 여자에 반해서 결혼을 했다면,


결혼을 하고서야 그 여자가 외모만 화려할 뿐, 성적인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히스테리 여성은 온 몸이 자궁이기 때문에 몸이 매우 예민합니다.


그래서 이런 여성은 지하철, 버스 또는 지나가는 중에


남자가 히스테리화된 몸을 살짝만 건드려도 아주 짜증스런 반응을 합니다.


심한 경우는 성추행 신고까지 하는 여성이죠.


직장 내에서 성추행, 성희롱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작은 실수를 큰 사건으로


비화시켜 나가는 여성일수록 성기적 능력이 부족한, 그야 말로 히스테리 환자일 가능성이 높죠


(그렇다고 이런 경우의 모든 여성이 다 히스테리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여성은 어릴 때부터 수동적 위치에 있는 엄마를 통해 나르시시즘(자기애)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남자들 특히 아버지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상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춘기를 지내는 여학생들은 학교 교복을 어떻게든 몸에 착 달라붙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만들어서 자기 몸을 보다 많이 드러냄으로써


남자들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채워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경우의 히스테리 여자는 이렇게 함으로써 더 이상 수동적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능동적 위치에서 남자들의 시선을 자신의 몸에 집중시킴으로써 꼼짝 못하게 만들면서


남자들을 통제하는 효과를 보는 기쁨을 무의식적으로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히스테리화된 여자는 자신의 여성성을 억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성성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억압해도 여자라면 언젠가는 히스테리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히스테리의 유형, 히스테리화된 정도, 억압된 정도,


억압된 기간에 따라서 드러나는 방식은 다를 것입니다.


그런 일은 바로 중년기 중반 이후에 일어나게 된답니다.


히스테리를 여성 자신이 드러내는 분석 작업을 하든지,


부부 간에 여성성 작업을 하든지 하지 않으면, 중년기 중반 이후에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하다 못해 홧병이나 암, 중풍, 또는 각종 외부적 사고를 통해서


억압하고 있는 몸을 어떤 형태로든 깨뜨리고 억압된 여성성은 드러나고자 합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갈수록 호미로 막아야 하고, 부르도자로 막아야 할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인생의 최종적인 작업은 여성성을 회복하는 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앞으로 필자가 쓰는 글을 계속해서 잘 읽으면


언젠가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도를 닦고자 하는 자가 도를 깨칠 때 자신도 모르게 탁! 하고 치는 무릎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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