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뭐라도 끈덕지게 해라. 이거하다 말고 저거하다말고. 평생 성공 못한다.’ 어릴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 평생 성공 못 한다는 악담 아닌 악담 탓일까.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공하지 못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가.
어릴 때부터 세상에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어른들이 ‘하지 마라, 들어가지 마라, 만지지 마라.’하는 말에는 귀신같이 달려들어서 해보고, 들어가고, 만지고 했다. 궁금하고 하고 싶은 것들은 다 해봐야 직성이 풀려서인지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탕수육 ‘찍먹’하듯이 참 많이도 해봤다. 매년 다이어리 가장 앞 페이지에는 버킷리스트들이 기본 30개에서 50개 가까이 줄지어있다.
초등학교 때는 여자아이라면 다 해본 십자수, 퀼팅을 했었고 어디서 봤는지 도예가가 되고 싶어 찰흙으로 그릇과 컵, 소품들을 만들어냈다. 어느 날은 시인이 되겠다며 저녁마다 시를 짓고 낭독했는데 아빠, 엄마는 나의 시를 들으며 그렇게나 박장대소를 했었다. 아무래도 시인으로서 자질은 없었나 보다. 피아노학원을 5년 정도 다녔고 (피아노를 꽤 오래 했었다) 테니스를 일 년 정도 배우다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왔다. ‘어머님, OO이가 테니스를 한 이후로 공부를 소홀히 합니다.’ 이후 난 두 번 다시 라켓을 잡을 수 없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야 하나라도 끈덕지게 할 것들이 뭐가 그렇게 많을까 싶다. 그래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한 게 하나 있는데 글짓기였다. 독후감 대회는 모두 참여했고 매번 나갈 때마다 상을 탔다. 과학자, 경찰관을 거쳐 최종 나의 꿈은 작가로 정착했었다. 그 시기엔 초등학교 친구 중 누구도 작가는 없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장래 희망이기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친구들 다 싸이월드 할 때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리뷰를 업로드 했었고, 이 활동은 꽤 열심히 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리뷰를 자주 썼었다. 친구들과 교환일기를 쓰고 소설을 지었다. 그러다 교무실에 불려가 선생님들 앞에서 내가 지은 소설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때의 충격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글쓰기는 그만두었다.
성인이 되고서는 사진에 빠져 친구에게 카메라를 중고로 구매해서 한동안 열심히 찍었고 그러다 시들해져 지금은 옷장 구석에 여전히 처박혀 있다. 하지만 사진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기에 최근 다시 하나둘 찍어보고 있다. 영어 공부에 빠져 유료 강의를 한두 달 듣다가 그만두고, 신입 때는 갑자기 일어를 배우고 싶어 강남 파고다 학원을 삼 개월간 다닌 적이 있다. 여전히 나의 일어 실력은 스미마세,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다. 노후에 대한 급격한 불안감으로 경제 공부한답시고 유료 강의 결제 후 한 두 번 듣고 접었으며 다시 영어를 배우려고 하루 한 장씩 하는 얇은 학습지를 큰 돈 주고 구매한 적도 있다. 근 5년째 손도 대지 않은 학습지가 10권 가까이 남아있다.
최근에는 책 리뷰어가 되겠다고 열심히 책을 읽고 리뷰를 업로드 하고 있다. 한 달에 다섯 편 정도는 올리려고 했는데 이것도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다. 헬스장도 삼 개월 정도 열심히 다니다 그만둔 지 몇 년째다.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은 중단된지 몇 년째.
정말, 이것저것 찍먹하고 결국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지 않나? 오늘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경험하는 중이고 비록 일회성이라고 한들 어쨌든 경험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 찍먹이든 부먹이든 이토록 다양한 것을 해보고 싶어 하는 그 열정이 남아있어 감사하다.
한 분야에 진득하게 몰입하고 집중해서 최고가 된다면 부러운 것이 없겠지만, 우리의 삶이 다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나처럼 이것저것 살짝 발만 담그고 빼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자! 우리의 찌먹파들이여, 우리 앞으로 더 열심히 이것저것 찍먹해보자구요.
한 번뿐인 인생! 궁금하면 해보고, 가보고, 먹어보고 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그러다 나와 소울메이트 같은 직업이든, 취미든, 여행지든 뭐든 만날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우리는 진득하게 찍먹을 해보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짧디짧은 찍먹파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