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의 초록불이 깜빡이면 빠르게 뛰어 건널 때가 있었다.
타야 할 버스가 내가 미처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와 있으면 죽어라 뛰어서 타던 때가 있었다.
좋아하는 식당에 웨팅이 있어도 괘념치 않고 줄을 서서 먹었을 때가 있었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때도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나이의 앞자리가 3에서 4로 막 바뀌면서 어쩌면 30대의 중반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신호등의 초록불이 깜빡이면 뛰지 않는 걸 깨달았다.
15초 정도의 시간이 남았어도 포기하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길을 걸으며 문자를 보내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길을 걸을 때는 앞을 주시한다.
문자도 보내고 장애물도 잘 피하기에는 집중이 떨어진다.
여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만큼 실패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가끔씩은 뒷수습을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날이 지속되면 익숙한 것들로만 삶이 채워지는 게 아닐까싶다.
그러다보면 자꾸만 뒤로 처지게 되겠지.
막 마흔에 접어든 기분은 마치 길 가다 새똥을 맞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했던 행동들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당황스러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정말 당황스러움 그 자체다.
나이를 말할 때 때로는 민망할 때가 있다.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웃으며 ‘나이 많아요.’하고 대답을 흘려버릴 때도 있다.
누가 들으면 갓 40에 들어섰으면서 유난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내 나이가 익숙지 않아 낯설다.
20대가 되었을 때에는 사회에서 나를 완전한 성인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아 뭐든 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든 원하는 곳에는 다 갈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30대가 되었을 때는 무르익은 성인이 된 것 같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직장에서 적응을 하고 모든 일이 완만히 흘러갔다.
내 삶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타인,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굳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성장하고 싶었고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방황했다.
그러다 순식간에 40대에 가까워져 오면서 신체 변화가 일어났다.
관자놀이 주변으로 흰 머리가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보일 때마다 족집게로 쏙쏙 뽑아버렸다.
그러다 더 이상 뽑아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세면대 앞에서 목 놓아 울어버렸다.
‘한 것도 없는데 왜 벌써 이렇게 늙어버렸을까.’하며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만 자꾸 났다.
기미가 하나 둘 생겼던 날, 잘만 보이던 책을 눈앞에서 조금 더 떨어트려야 잘 보인다는 걸 깨달았을 때(실제 나이보다 노안이 빨리 왔다는 진단을 받았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을 때, 회사에서 하루에 두 번의 프로그램 진행을 할 때면 예전 같지 않아 ‘나 진짜 늙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이 마흔이 되면 거창하게 뭔가 삶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불안했다. 많은 부를 쌓지는 않아도 40대에 퇴사해도 1,2년쯤은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여행이나 다니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하루살이처럼 한달 벌이 삶을 살고 있으니 ‘이게 맞나.’하는 현타가 온다.
유튜브에서도 sns에서는 다들 잘만 살던데, 늘 열심히 살았던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책도 들었다.
물론 유튜브든 sns든 영상 너머에는 그렇지 못한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이게 또 나름 위안이 될 때도 있다.
다들 어떻게 나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만 이렇게 유난인가 싶은데, 정말 나빼고 다들 괜찮은 걸까.
억울해서 불안해서 자꾸만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 싶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이대로 자꾸 더 늙어갈 수는 없으니 뭐든 해봐야한다.
적어도 40대 중반 전까지는 일단 해봐야한다. 만45세가 넘으면 은근히 제한되는 체험이 있더라.
그러니 시간이 없다. 당장 리스트 만들고 하나씩 실천해야지.
자 우리 막 40대에 발을 담근 자들이여! 당장 투두리스트 만들고 실천해보시라. 나이‘만’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말인데, 올해에는 꼭 타투를 해보려고 한다. (마치, 타투하려고 빌드업한 것 같지만) 그리고 패러글라이딩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