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집사입니다.

by 공기북

퇴근 후 문을 열었을 때, 반려묘가 반겨주는 소리는 반가움이다. 자박자박 발소리와 내 발걸음에 맞춰 쫓아오다 발 앞에 툭 누워버릴 때 ‘퉁’하는 소리에 으레 무릎을 꿇고 궁디팡팡을 해준다.

‘톡톡톡’ 아닌 ‘팡팡팡’으로 해줘야한다.

찰싹도 아닌 퉁퉁도 아닌 손바닥을 약간 오므려서 ‘팡팡’소리를 내줘야 한다.

그러면 곧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앞발을 머리위로 쭉 올리며 발가락을 쫘악 펴고 기재를 켠다.

그럴 때는 꼬리도 살짝 부르르 떨기도 한다.

발가락을 쫙 펼 때의 귀여움이 한도초과라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도 핸드폰을 드는 순간 놓친다.


새삼 반려묘의 신체 길이에 놀란다. 꼬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쭈욱 늘어트리면 내 하체 길이만큼 될 터이다. (집사는 키가... 작다. 고로 다리도 짧다.) 그렇게 반려묘의 팡팡 충족이 만족될 때까지 한참을 해주면 갑작스레 반려묘는 앙칼진 소리를 내며 손가락 끝을 살짝 깨문다. 이제그만하고 저녁을 차리라는 신호이다.


‘네네. 진지 자셔야죠.’하며 외출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반려묘의 저녁을 차릴 때가 있다.

주식 캔 6가지 맛 중에 하나를 골라 전용 밥그릇에 잘 말아주고 물그릇 3개를 새로운 물로 갈아준다.

아침, 저녁으로 물그릇 3개를 하루 두 번씩 갈아주는데 이 녀석이 먹고 버리는 물이 내가 집에서 하루 마시는 물의 몇 배는 된다.


밥을 차려주면 양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조금씩 깨작깨작 먹는다.

다른 집 고양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 반려묘는 밥을 허겁지겁 먹은 적이 없다.

선비라도 되는 냥 한입씩 오뇸뇸하고 먹는다.

캔을 먹을 때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씻고 나온다.


그럼, 밥을 다 먹고 물을 할짝거리는 걸 보면 다행이라는 마음이다. 고양이는 음수량이 적어 항상 신장병의 원인이 된다하니, 어찌됐든 물만 많이 마셔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을 마시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안 된다.

시선이 느껴지면 물을 그만 마시기 때문이다. 무심한 척 소리를 내지 않고 있어야 한다.


선비를 모시는 돌쇠도 이러지는 않았겠다 싶다. 녀석은 항상 ‘좀만 더 마셔줘.’할 때쯤 물마시기를 중단한다. 늘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료그릇에 새 사료를 한 줌 담아준다.

그러면 반려묘는 오며, 가며 한 알씩 깨독거리며 먹는다.

사료도 어찌 한 알씩 먹는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엄마가 밥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며 먹여줄판이다.

그렇다고 말라깽이 고양이는 아니다.


성묘가 됐을 때 도저히 못 키우겠다는 분께 입양을 해왔다. 7.2킬로그램의 뱅갈 수컷이었는데 준비해간 캐리어에 꽉 찰 정도로 엄청 컸다. 동물병원 선생님께서 다이어트를 시켜야 한다기에 적정량의 밥으로 이제는 6.5킬로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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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집사께서는 가구며 벽지며 다 발톱으로 긁어놓고, 말도 듣지 않는다고 했지만 세상에 이렇게 순하고 착한 아이가 있을까 싶다. 데려오자마자 적응도 빠르고 일주일 만에 중성화 수술을 시켰는데도 마치 오래 키운 반려묘처럼 잘 따랐다.

캣폴과 캣타워, 스크래쳐와 숨숨 집을 여기저기 준비해줬더니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구를 긁은 적은 없다. (최근에 집안 각진 곳 벽면을 한두 번씩 긁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긁기 딱 좋은 각도다.)


단지, 이전 집에서 실컷 즐길 수 있는 고양이게 필요한 가구가 없었을 뿐이었다.


책상위에 놓은 컵을 깨트린 적도 충전기를 깨문 적도 없다. 부르면 오고 아침에 눈뜨면 머리맡에서 꾹꾹이를 하며 늦잠을 자면 조용히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러다 도저히 배가 고파서 안 되겠다 싶으면 덩치에 안 맞게 ‘엄마아’하고 부른다.

(정말이다. 야옹이 아니라 엄마아 하고 운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나도 넘치고 흘러, 온통 내 삶이 보들보들해지는 기분이다.

아무리 슬프고 화가 난일이 있어도 반려묘 앞에서는 기분이 무한해제가 되어 그저 행복한 순간만이 펼쳐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반려묘의 배에 얼굴을 파묻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냄새를 맡을 때의 기분은 집사만이 가질 수 있는 행운이다. (잔뜩 묻은 털은 윗옷으로 슥슥 닦아내거나 가끔 돌돌이로 땔 때가 있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겨울에는 감사하게도 내 양다리 사이에 누워 함께 잠을 자준다.

그러다 슬슬 따뜻해지고, 본격적으로 더워지면 어디서 자는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제발 옆에서 같이 자자고 애걸복걸 해봐도 코웃음 치며 통통 걸어 침실을 나가버린다.

‘지가 필요할 때만 찾지…….’ 내심 서운하긴 해도 이 집에 반려묘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여름 날 출근 후 혼자 있을 반려묘를 위해 에어컨을 켜둬야 하고, 겨울이면 온수매트와 보일러를 켜둬야 한다. 원격으로 집안 온도를 체크하고 홈캠으로 별일이 없는지 중간 중간 확인도 해줘야한다.

분기별로 여행을 다녔던 나지만 반려묘를 위해 며칠씩 집을 비우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해 여행을 안간지 꽤 됐다.

매달 간식비, 사료와 주식캔, 영양제값만 해도 지출이 크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수많은 집사들이 그럴 것이다. 반려묘가 주는 행복이 너무나 커서 그 어떤 것보다 가치롭다는 것을.

내가 덜 먹고, 덜 사며 아껴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옆에만 있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우리집 반려묘는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낮잠을 즐기고 있다.

내가 모시는 주인냥의 삶이 늘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집사들이여 주인냥과 함께 행복하시라. (고양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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