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하면서 가족과 떨어져서 경기도로 올라오게 됐다. 대학교 4년 동안 늘 ‘졸업하면 취업은 서울로 가야지.’라며 서울살이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했다. 서울의 높은 빌딩숲을 나도 당당히 휘젓고 싶었다. 드라마 속 멋진 커리어 우먼을 떠올리며, 부모님께도 ‘졸업하면 서울로 갈 거야.’라는 말을 틈날 때마다 반복했다.
나중에는 부모님도 지겨웠는지, 그러든가 말든가 하는 반응을 보이셨다.
그리고 대학교를 스트레이트로 졸업 후에 1년 동안 나의 진로를 찾아 방황하다가 취업을 했는데, 차별과 배제로 가득한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투쟁심에 불타올랐다. 그래서 가장 열악하다고 알려진 분야에 취업했다.
아쉽게도 서울이 아닌 경기도이긴 하지만 서울과 붙어있고 수서나 잠실과는 지하철로 20분이 걸리지 않는 곳이라 꽤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어쨌든 내 인생 첫 자취는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고 잘 풀렸다. 친구의 도움으로 회사 근처 주택에 월세를 얻었는데 채광이 좋고 방보다 화장실이 넓은 특이한 집이었다. 1층에는 가족이 살아 안전했고 건너편 아파트 관리실은 우리 집에서 경비실아저씨 얼굴이 보일만큼 가까워 밤에도 안심이 되었다.
바로 옆집 여자와도 대면할 일이 없어 나의 자취 7~8년 생활은 안정적이었다.
혼자 살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했다. 그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릇들을 모아 예쁘게 차린 식사를 즐기는 일이었다. 월급을 받으면 사고 싶었던 그릇들을 가장 먼저 사기도했다.
먹는 것에 진심이라 혼자라도 밥, 국 혹은 찌개, 반찬 두세 가지는 꼭 있어야 하는데 내가 산 예쁜 그릇을 날마다 바꿔가며 차려먹는 건 큰 즐거움이었다.
혼자 서울 구경을 하고, 본가에는 없는 예쁜 카페들을 투어하고 마음에 드는 책방을 자주 갔다. 자취생활하며 키운 능력 중 가장 잘했다싶은 것은 ‘혼밥’ 실력이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뭔가 쑥스럽고 친구 없는 외톨이라고 오해받는 것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자취를 해보니, 생각보다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한 번, 두 번 마음에 드는 곳에서 혼밥을 하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곳에서의 혼밥은 별일도 아니다.
물론 주변에는 곧 죽어도 혼밥은 절대 못한다는 친구도 있다. 내가 혼밥을 즐겨하게 된 이유는 식사할 때 쩝쩝거리는 소리를 잘 못 참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혐오에 가까운 수준이다.
때문에 회사에서도 점심시간이 되면 이어폰을 꽂고 영상 소리를 최대로 올려서 보고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나간 후에 홀로 점심을 먹는 걸 즐긴다.
혼밥이 주는 가장 최대의 장점은 음식을 ‘나만의 속도’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 상대방의 속도에 어쩔 수 없이 맞춰야 하는 때가 있는데 대부분은 내가 먹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음식을 먹는 게 아닌 ‘먹어치우는 것’에 가깝다. 소화기능이 좋지 않은 나에게는 식사시간이 유쾌할 수가 없다. 단, 술자리는 또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메뉴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 가보지 않은 음식점의 메뉴를 맘껏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천천히 음식의 냄새와 맛을 음미하며 음식이 주는 행복감을 최대한 즐기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혼밥’ 시대가 자유롭게 열린 점이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사실 혼밥 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에는 1인용 테이블이 있는 식당은 거의 없었고, 2인부터 가능한 메뉴도 많았다. 혼자 식사를 하러 가면 주변 손님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혼밥’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더니 혼밥 전문 식당이며, 1인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 많아졌다.
지인들과 괜찮은 식당을 가면 1인 좌석이 있는지 확인하고, 사장님께 혼자 와서 먹어도 되냐고도 물어본다. 미리 인사를 해두면, 나중에 혼밥하러 가는 게 한결 수월할 때도 있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갔었던 꽤 괜찮은 이자카야를 알게 됐는데 1인 테이블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식당이 작은 편이고 웨이팅도 있는 곳이라 혼자오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사장님께 여쭤보니 간혹 혼자 오시는 분들이 바 테이블을 이용한다고 해서 어찌나 반가웠던지. (아쉽게도 아직 혼자 간 적이 없다. 조만간 가야겠다. )
혼밥에도 레벨이 있다던데, 그만큼 혼밥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문화로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이건 혁명이다. 딱 나 같은 혼밥러를 위한 문화라니.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많이 찾는 고급 레스토랑도, 한정식 집까지도 홀로 잘 즐겼는데 아직 횟집과 고기 집은 남겨뒀다. 여기까지 혼밥을 하면 고레벨이라고 하던데!
결국 혼밥이란, 누구와 먹느냐보다 ‘나와 잘 먹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아닐까. 그러니 오늘도 나는 나와 함께, 맛있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