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고요함’속에 있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늘 수많은 소리 속에 살고 있어 어느 정도의 소리가 소음이 됨에도 익숙해졌다.
익숙함에 고요함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소리와 소음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에어컨 소리, 외부의 차 소리가 들린다. 집안이 소리로 찼는데도 거기에 더해 유트브로 음악을 켜둔다. 머리를 질끈 묶고 침대 정리를 하고 욕실에 갈 때는 아이패드를 챙겨 좋아하는 영상을 켜둔다.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하고 화장을 다 한 후에도 영상은 계속 재생된다.
반려묘의 아침밥을 준비하고 출근직전까지 영상은 계속 재생된다.
영상을 보지 않아도 집안에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게 안심이 된다. 반려묘와 아침인사를 나누고서야 영상을 끈다.
출근하는 차안에서는 핸드폰으로 노래를 듣는다. 버스소리, 사람소리 온갖 소리가 가득 찬 세상에서도 나는 소리를 더한다. 사무실에서도 늘 음악이 흐른다. 동료들과 실없이 나누는 농담들, 많은 이야기들, 노래 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퇴근한다.
퇴근하면 또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틀어둔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소리 속에 파묻혀 지내는데, 그러다 자기 직전 모든 소리를 다 없애고 누우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소리의 시달림으로부터 오는 피곤함이 아닐까도 싶다.
지난주부터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막 첫 수업을 하고 왔는데 생소한 경험을 했다.
앞으로 수어 교육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강사선생님은 농인이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시는 분이고 오로지 수어와 몸짓과 표정으로 소통을 한다. 물론 강사님의 수어를 통역해주시는 분이 계시지만 이 분외에는 말이 아닌 수어로 소통하기로 약속했다.
두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말없이 수어를 배우는데, 첫 수업은 한시간정도로 소개만 하고 일찍 끝냈다.
강사님이 수어로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통역사분이 대신 전한다. 수강생들은 익숙하게 ‘네, 아니오, 감사합니다, 이해했어요.’등의 대답을 한다.
물론 우리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강사님은 우리의 입모양을 보고 다 이해하셨겠지만, 이러한 것들도 모두 수어로 하도록 가르쳐주셨다.
‘이해했다’는 의미는 양손을 얼굴높이로 들고 엄지와 검지를 붙여 ○모양을 만들면 된다.
수강생들은 모두 말없이 가르쳐준 대로 수어를 했다.
박수는 양손을 펼쳐서 앞뒤로 흔들어 준다. 마치 반짝반짝이라는 율동처럼 말이다.
짧은 시간임에도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는 한 시간 가량 말하지 않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교육장의 삼십 여명 정도의 수강생 중 그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묘한 침묵이 주는 불편함이 나를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한 시간 가량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적이 처음이라, 이 침묵이 굉장히 불편했다.
게다가 교육장은 꽤나 넓은 편이라 순간의 침묵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인위적으로 만든 ‘고요함’이 오랜만이라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내뱉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말소리뿐만 아니다. 종이 넘기는 소리, 마우스 클릭소리, 키보드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등 수많은 소리 속에서 침묵이라니.
낯설고 불편한 경험이지만 한편으로는 일주일 두시간이만이라도 고요함속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내가 만든 소리를 줄이고 ‘고요함’을 즐겨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