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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 Feb 19. 2022

39. 내 어디가 좋아? 왜? 쟤가 나아 내가 나아?

말못회 [말 못 하는 작가의 회고록] : 호구



39. 내 어디가 좋아? 왜 좋아? 쟤가 이뻐 내가 이뻐? 

    

나는 연애를 잘 못하는 편이다. 연애할 때는 조금 방목형이 되어버려서 상대방에게 비난을 많이 받곤 했다. 

상대방이 이른 저녁 술을 마시고 온다기에 그러라고 했고 다음날 아침까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방도 연락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업무를 보고 있었고, 상대방은 술덜깬 목소리로 전화해 내게 화를 냈다. 왜 자신에게 관심 가지지 않느냐고 말이다. 

한 날은 온종일 연락이 없던 상대방이 바쁜가 보다 싶어 무시하고, 결혼식장을 갔다. 숙소에서 자려고 한 늦은 저녁, 상대방에게 전화가 오길래      


“나 지금 강원도야. 결혼식 왔어.”     


했더니 또 대뜸 화를 내더라. 왜 자신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몇 명의 애인을 만나보고 나니, 내 애정표현의 형태가 조금 소극적이었을 수도 있나 싶더라. 벽을 보고 말하듯 공감능력이 부족한, 소위 요즘 말하던 ‘한남충’이 내 모습 같기도 했다. 

나는 제 나름 상대가 바쁘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판단하여 언성을 높이기 싫어 싸움을 피하려 했었는데, 상대방은 내게     


“나 왜 만나는 거야? 내가 어디가 좋아서? 진짜 나 좋아해?”     


하며 자꾸만 애정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리고 자꾸 떠보기를 시전 했다. tv속 멋진 연예인이 나오면 ‘쟤 어때?’, ‘저 사람이 나아 내가 나아?’, ‘내가 이렇게 고민 이야기했는데, 넌 왜 같이 안 울어줘?’ 등 나에게 자꾸만 정답이 내려져 있는 사랑의 형태를 강요했다. 아니, 솔직히 원빈이 잘생겼고 김태희가 예쁘지 않겠나.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의 연애는 참 힘들더라. 그것은 전염성이 강해서 쉽게 옮게 되는 역병이었다. 나는 당신을 애정 한다. 그 ‘무엇’ 때문에 애정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애정 한다. 


돈 좀 보고 끌리면 어떠랴, 얼굴 몸매 보고 끌리면 어떠랴. 처음 만나는 당신의 모습이 그리 생겼는데, 어찌 그걸 배재하고 볼 수 있는 가. 

나는 4차원 투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콩팥 심장 같은 장기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난 당신의 돈과 얼굴에 끌린 게 맞다. 그게 뭐 나쁜 것이더냐. 비단 그것으로 우리의 연결고리가 완성되었을 정, 우리는 그 교차점을 지나 그것은 지금 집합점이 되지 않았더냐.      


호구(虎口)

[명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호구’가 되기를 무서워한다. 내가 이만큼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는데, 상대방이 그렇지 아니하다면? 대부분은 그를 증오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호구가 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모두 소유욕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도 당해보고, 호구가 된 적도 여럿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좋은 마음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이걸 주면 좋아하겠지? 기뻐하겠지? 내 생각해주겠지?’ 하지만,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던 상대방을 발견한 순간, 당신은 ‘순수한 마음’에서 ‘흑심(黑心) 품은 호구’로 전략하고야 만다. 그렇게 우리는 상대 관계에 항상 give&take를 요구하고 있었다. 언젠간 돌아오겠지. 너도 답례를 주렴. 하고 말이다.     


우리 엄마는 참 유쾌하시다. 취미가 여럿 있는데, 문화센터를 다니시며 취미는 자주 바뀐다. 

요즘은 또 주식인가 보다. 늦은 나이 뒤늦게 입성한 주식시장이 재미있으신가 보다. 얼마 전, 증시 하락으로 몇백만 원대의 마이너스를 보셨단다. 초기입 문자에게는 제법 큰돈 일터, 나는 엄마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엄마는 호구가 아닌 듯하다.     


“할 때 재밌었으면 됐지 뭘”     


엄마는 일개 개미일지언정, 주식 공부를 하고 차트를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것에 답례를 받고 싶어 하진 않았으셨다. 말 그대로 본인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상대방에게 원금과 이자를 요구할 순 없더라. 

     

인간관계도 이와 같더라. 주식처럼 돌려받으려고 집착하다 보면,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마음이 아니게 변질되어 버리더라. 나는 엄마의 라이프스타일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한다면 호구 정도 되면 어떠냐! 


어수룩한 사람을 뜻하는 호구(虎口)는 ‘호랑이의 입’이라는 한자어이지만, 호구(虎九)라는 ‘아홉 마리 호랑이’에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용맹하고 순수한 동물의 본성을 지닌 호랑이처럼 말이다. 

본디, 어수룩하다는 뜻은 순진하며 치밀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순애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상대방에게 어수룩한 호구가 되고 싶다. 앞으로 상대방에게 선물을 할 때,      


‘이거 주면 (나를) 좋아하겠지?’     


우리는 괄호를 한번 빼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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