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무더운 여름의 초복을 지나갑니다” 퇴근하는 라디오의 작은 울림이다. 무더운 여름, 한 발자국만 내딛어도 땀이 뜨거운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유난히 올해 여름은 더 더운 것 같은 느낌이다. 일을 열심히 해보려 해도 더위 탓인지 손에 잡히지 않고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그냥 더위 탓이라 하자.‘
항상 어떤 일을 해도 조금 더 실수 없이 옥죄이는 성격 탓에 작은 실수도 크게 보인다. 신체적 더움도 있기 마련이지만 나의 옥죄임에 마음도 타버린 재로 변했다. 잘하고 싶어 열심히 해보려 하는데 머피의 법칙인가. 잘하려고 하면 꼭 넘어지는 돌덩이가 내 발 앞에 놓이는 기분. 이런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니 저절로 더위 탓을 했다. 내리쬐는 햇빛이 따스한 것이 아니라 따가운 하루였다. 그렇게 더위에 지친 탓일까. 퇴근길 지하철 창문 밖의 나무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무들에겐 햇빛은 따스함이겠지 저 빛이 없다면 살 수 없으니“ 약간의 변화였다. 큰 움직임도 아닌 정말 작은 순간의 변화였다. 현재 상황이 저 나무와 같다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잘해보려 애쓰니 작은 시선을 돌릴틈도 없이 지내왔던 것은 아닐까. 정말 찰나의 순간의 변화였는데 더위로 우울했던 지금의 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의 과정은 어쩌면 저 햇빛과 같을지 모르지. 여름엔 더움으로 다가오지만 겨울엔 따스한 햇빛, 나는 여름의 순간을 기다리는 게 아닌 겨울의 햇빛 한 줄기를 바라보는 거야.’ 현재의 상황이 지치고 힘들다 느끼며 나를 옥죄이는 시간 속 작은 시선은 내 삶을 거대하게 변화시키지는 못했지만, 마음의 잠깐의 휴식을 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삶이 바뀌고 있는 것이었다.
요즘 sns는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들어내기보다, 멋진 자신의 삶 중 한편의 순간을 담아 올린다. 그렇기에 타인과 비교가 되는 자신이 삶이 초라해 보이고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왜 그럴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모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일상의 순간보다 가장 완벽한 한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이기에 부러워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순간도 내려가는 내리막길, 혹은 평지를 걷고 있다 생각 들어도 결국 올라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이 지금이 아니라도 조급하더라도 그 자체로 바라보자. 찰나의 순간들은 이면적인 면이 존재한다. 엄청난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잠깐의 순간 뒤 행운이 있을 수 있다. 우울할 것만 같은, 한 여름의 무더위 같은 순간이라도 결국 지나가는 과정이고 흘린 땀방울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어보자.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과정이 쌓이는 순간, 지금 잘하지 못하는 나라도 결국 빛날 것이며 잘하게 되는 때가 찾아온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생각하지만, 그 말 뒤의 깊은 의미는 ‘급할수록 한 걸음 뒤에서 쉬어가며 바라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모든 일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정말 기쁘기만 할 텐데 그러지 못하는 삶이라 생각했다. 옆의 사람들이 나와는 다르게 앞서 나가는 삶이라 생각했다. 비교로부터 나를 갉아먹는 삶이, 조급하고 무더운 여름과 같은 찝찝한 삶이 계속되기만 할 줄 알았지만 찰나의 순간이 나를 변화시켜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너무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충분히 잘하고 있고, 천천히 조금씩 쌓아가면 된다고 전하고 싶다.
현재의 삶이 무더운 여름 같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너무 나를 탓하지 말아 보자. 결국 겨울은 찾아오고 추위 속 따스한 햇빛 한 줄기가 당신의 삶에 비칠 것이다. 너무 잘하려, 잘 보이려, 잘 살아가려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이기에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길, 그런 연습을 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