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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Jan 20. 2019

오늘날의 참정권 운동

청소년 선거권 등 다양한 참정권 보장이 민주주의의 과제


"여자들은 판단력이 부족해서 잘생긴 남자에게나 투표할 거다.", "여자들은 월경주기에 따라 감정에 휘둘려 일관된 판단을 할 수 없으니 투표를 해선 안 된다.", "여자들은 남편을 따라 투표를 할 테니 투표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가정에 분란이 생길 테니 더더욱 안 된다."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여성의 참정권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내세웠던 논리다. 지금은 황당하게까지 보이는 내용들이지만 그때는 다들 공공연하게 이런 주장을 펼쳤다. 차별은 편견으로, 때로는 과학의 외피를 쓰고 정당화되곤 했다. 여성 참정권 운동뿐 아니라 유럽 등지의 노동자·빈민들의 참정권 운동이나 미국에서 흑인의 참정권 운동도 이와 비슷한 논리들과 맞서 싸우며 이루어졌다.



참정권은 권력관계의 문제


참정권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등으로 대표되는 권리다. 대개의 인권이 그렇듯, 참정권도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역사적으로 만들어지고 재구성되어 온 권리다. 우리는 흔히 참정권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에게 보장된다고, 그리고 성숙함을 편의상 ‘나이’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과거 노동자·빈민·여성·흑인들은 공부를 하고 지성을 발달시켜서 참정권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일까? 그 밖에도 나라마다 서로 다른 선거권 연령 기준 등을 생각해보면, 참정권이 단순히 합리성이나 성숙도에 따라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참정권은 말하자면 '누가 시민이냐' 하는 문제이며, 어떤 집단이 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해 그들의 의견과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느냐 하는 권력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참정권을 가질 만큼 성숙함을 갖추었는지 합리적 판단능력이 있는지 어떤지, 그 판단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자체가 이미 정해져 있으며, 성숙함의 기준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정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가령, 여성들의 미성숙함은 월경주기까지 들먹이며 언급됐지만, 여성 참정권에 반대하며 무리한 억지 주장을 내세우던 이들의 미성숙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한국 정치의 큰 병폐로 지역주의 문제를 꼽곤 하지만, 지역주의 묻지마 투표를 하는 이들의 참정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게임기 준다는 후보나 뽑을 테니 투표권을 못 준다" 같은 말은 공감을 얻지만, 집값 올려주겠단 후보를 뽑는 이들의 참정권을 제한하자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합리적이고 성숙한 이들이 권리를 가지는 게 아니다. 권리를 가진 이들이 스스로 합리적이고 성숙하다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참정권 운동



참정권 운동은 노동자 참정권 운동이나 여성 참정권 운동, 흑인 참정권 운동 등을 끝으로 1900년대 중반에는 이미 마무리된, 과거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참정권 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들은 선거권·피선거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과소대표되고 있는 정치 현실 속에서 대표성 강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노동자들도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늬만 민주주의인 국회와 정부를 바꾸기 위해 노동자 정당을 만들고 맞서 싸워 왔다. 장애인들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시설의 변화를 요구하고, 장애인을 대변하는 정치를 만들기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선거권이 아직 없는 연령대에서도 정책 결정과 정당에 참여하고 시민으로서의 주권을 행사할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선거권 연령 제한 기준이 18세인 국가에서는 16세 등으로 더 낮추자는 요구도 일고 있다. 


참정권 운동은 역사 속의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운동이다. 이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참정권을 갖고 있고 누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한국 사회에는 선거 운동과 정치적 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선거법의 문제는 물론, 빈약한 자치권과 참여권의 문제, 비례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대량의 사표를 발생시키는 승자독식 선거 제도의 문제 등 참정권이 제대로 실현된다고 볼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선거를 통한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한편, 선거 외에도 일상적으로 참여와 정치가 가능하도록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더 나은 참정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


참정권 운동은 과거에 끝난 운동이 아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갖고 있는 참정권을, 각종 참정권 운동들에 힘을 실어 주고 참정권을 더욱 보편적이고 온전한 형태로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행사해야 할 것이다.





※ 2012년 3월 〈한겨레21〉에 쓴 글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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