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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Jun 20. 2019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하루 6시간 학습'은 불가능한가


약 130년쯤 전, 미국의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파업과 시위에 나섰다. 하루 10시간을 훌쩍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돌려받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요구했다. 이 사건은 5월 1일 노동절의 유래가 되었고 그 후 20세기에야 8시간 노동은 노동시간에 대한 보편적 약속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은 비록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으로 1, 2위를 다툴 만큼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된 나라지만,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노동시간에 대한 규범이 있기에 그나마 장시간 노동이 억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이슈가 된 '주 52시간 노동' 역시 본래는 '주 40시간'에 추가로 연장 노동이 최대 12시간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법이 명시한 기준은 분명 주 40시간이건만, 초과 노동을 시키는 52시간조차도 논란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학습시간도 규제가 필요하다


노동자 말고도 또 다른 의미에서 자기 시간을 돌려받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다.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고등학생들은 평일 학습시간이 평균 10시간 13분에 이르며, 주당 학습시간은 약 60시간이다. 중학생은 평일 평균 8시간 41분, 주 50시간 정도 된다. 초등학생도 평일 평균 6시간 49분, 주 40시간 가까이 된다. 자연히 여가시간, 수면시간은 적다. 2013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로는 초·중·고생 중 60%가량은 평일 여가시간이 2시간 이하이다. 그 결과로 청소년들의 학업 스트레스는 세계 최고 수준, 행복지수는 바닥을 긴다. 과거 한 초등학생이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절규했던 현실은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학습시간 문제는 '세계적'이다. 사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에서의 학습시간도 많은 편으로 총 학습시간은 OECD 평균보다 훨씬 길다.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등은 대개 늦어도 3시에서 4시, 이르면 2시쯤에도 학교 수업이 끝난다. 나라에 따라선 초등학교는 돌봄 기능 등을 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운영하지만 고등학교는 그보다 더 일찍 파하는 경우도 있다. 고교생이 될수록 학습시간이 급격히 늘어나는 한국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예능프로그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했던 터키 출신의 에네스 카야는 "고등학생이 2시면 끝나서 집에 가야지!"라고 말하며 한국 학교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노동과 학습은 동질의 활동은 아니지만, 쉴 시간이나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학습시간도 노동시간의 문제와 별로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노동시간을 사회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필요했다면, 학생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도 학습시간을 규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세계 평균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학습시간 상한선은 하루 6시간, 주 35시간 정도라고 본다. 본인이 원해서 '시간 외 연장 학습'을 한다 해도 여기에 2~3시간을 더한 수준일 것이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2015년 무렵부터 '내 시간을 돌려줘! - 학습시간 줄이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교육 제도의 문제를 교육과정상의 내용이나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점이 아니라, 실제로 그 교육을 경험하고 있는 학생의 삶의 문제로 바라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했듯이, 학생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학습시간 단축을 이루어야 하며, 교육 개혁 역시 이러한 전제하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의 성과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후보 시절 '적절한 휴식권 등을 명시한 아동인권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으나, 대통령 당선 이후 공약 이행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시간에 대한 권리는 곧 자기 삶에 대한 권리이다. 교육 제도 속 학생들의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장시간 학습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흔히 과도한 사교육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흔히들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공교육, 학교 교육의 과도함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과도한 사교육은, 학교 교육에서의 너무 많은 학습 내용과 경쟁적인 방식이 낳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교육, 공교육 할 것 없이 학습시간과 학습 부담을 모두 줄여야 의미가 있다. 


장시간 학습을 '교육열'이라며 미화하고 공부를 많이 할수록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는 '악습'은 그만두자. 경쟁과 불안의 논리 속에서 늘어나는 학습시간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줄여나가야 한다. 학습시간의 상한선에 대한 기준은, 노동시간에 대한 기준이 그러하듯이, 바로 현실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장시간 학습을 억제하는 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8시간 노동'이 일반적인 기준이 되어온 역사처럼, 언젠가는 '하루 6시간 학습'이 학생의 인권을 위한 당연한 규범이 되리라 믿는다.





※ 2015년 3월 〈한겨레〉에 쓴 글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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