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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Aug 10. 2019

적절한 방학은 중요하다

청소년의 권리로 본 방학일수 문제

2014년에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인권교육을 가게 됐다. 한데 교육한 날이 보통은 한창 방학 중일 8월 첫째 주였다. 동네 식당들도 모두 문을 닫은 휴가철에 학교에 가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방학 특강 같은 거라도 여나 보지,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학생분들에게 물어보니 바로 그날이 개학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방학을 시작한 것은 7월22일인가 23일이었다고 했다. 여름방학이 대략 보름밖에 안 됐다.


이 학교만 유별난 것이 아니다. 2013년 8월에는 청소년인권단체들이 "내 이름은 방학, 짧죠!"라는 이름의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방학이 2주밖에 안 되는 사례들이 소개됐다. 방학 좀 해 준다는 학교들도 대개 3주 남짓인 형편이다.


한국의 방학은 분명 짧다


교육부의 2013년 보고서를 보면, 한국 학교의 방학일수는 약 78일. 이것도 초·중·고등학교 1개씩 샘플로 조사한 것이니 이보다 더 적은 곳도 부지기수일 터이다. 교육당국은 주5일제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마찬가지로 주5일제인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별 설득력이 없다. 같은 보고서에도 프랑스 방학일수가 120일, 미국이 102일, 영국이 91일이다. 공휴일 수 등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너무 차이가 난다. 자료들을 살펴보면 한국 초·중·고 학교들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방학일수는 적고 수업일수는 많은 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백경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13), 〈교육과정 편제 및 수업시수에 대한 국제 비교 연구〉, 교육부


한국의 수업일수를 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일 이상 긴 195~197일에 이른다. (2012년 조사 결과, OECD  평균 수업일수는 초등학교 187일, 중학교 185일, 고등학교 183일이었다.) 수업은 많이 하고 덜 쉬고 있는 것이다. 현행〈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법정 수업일수를 "190일 이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190일도 그리 적은 편은 아닌데, 대부분의 중·고등학교는 190일보다 수업을 더 많이 한다.


여기에 방학 중 운영되는 보충수업 및 방과 후 학교 같은 것까지 헤아리면 수업일수는 얼마나 늘어날지 두렵다. 보충수업 등도 무늬만 선택이고 강제적인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말이다. 요즘처럼 여름방학이 2주밖에 안 된다거나 겨울방학도 1달밖에 안 된다거나, 방학에도 보충수업을 시키는 등의 사례들을 접하다 보면, 한국의 방학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절한 방학이 중요한 이유


한국의 청소년들은 평소 학교 안팎에서의 학습시간 자체가 매우 길다.("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에 더해 수업일수까지 많다는 것은 연간 청소년들의 학습시간은 사실상 더 클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방학은 곧 적절한 휴식 기간을 뜻하고, 방학이 짧다는 것은 휴식이 적다는 것과 같다.


수업일수 자체가 길다는 것은, 애초에 국가교육과정에서 요구하고 있는 수업 시간과 수업 내용의 총량이 과다한 탓이 크다. 또한 입시 경쟁 등으로 인해 공부를 더 많이 시키는 것이 좋다고 여기고 청소년들의 휴식 및 여가의 권리를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많은 학교들이 수업일수를 늘리는 것을 선택하기 쉽다. 그러나 학생들은 수업일수나 방학기간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해서 의견을 낼 통로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다. 청소년의 휴식권, 여가권, 참여권 등의 인권이 열악한 현실이 방학일수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방학은 학교에 따라 또는 국가별 교육 제도에 따라 알아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국의 방학이 본격적으로 짧아진 것은 주 5일제 시행이 계기였는데, 주 5일제를 해서 토요일 수업을 안 하게 되었으니 그만큼 방학이 짧아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애초에 우리 사회에서 주 5일제 시행은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를 늘리기 위한 취지였다. 이러한 취지에 맞게 주 5일제 시행 이후 이에 맞게 수업일수와 교육과정을 줄이는 것이 필요했다. 실제로도 법정 최소 수업일수 등은 약간 줄어들긴 했으나, 정부의 불충분한 개혁 때문에 방학이 크게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또한 방학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시간이다. 학생들에게 적절한 휴식과 여가를 보장하기 위한 것은 물론이며, 교육적인 의미 역시 있다. 근대 학교 교육은 보편적인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나, 청소년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학교 안에서만 생활하게 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는 청소년들이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다양한 경험을 가질 기회, 삶을 향유할 기회를 박탈한다. 나는 학교 제도에서 적절한 방학기간을 두는 것은 학교 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양한 배움과 삶의 경험을 만나고 더 잘 성장할 기회를 열어 놓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학기간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것은 학교 안에 청소년들의 삶을 묶어 둠으로써 교육적으로나 청소년 개개인의 성장 면에서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휴식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온전한 방학이 줄어들고 사라져가는 모습은 한국 교육과 청소년의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는 표지다. 한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는 현실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일터들을 보면, 여름 휴가 기간은 보통 3일 내지 5일 이하이고, 연가를 쓰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는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들에서 1주 이상 여름 휴가를 가고, 1년 중 약 30일의 휴가가 보장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휴식과 여가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될수록 우리의 삶도 행복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줄어드는 방학과 휴가 그리고 쉼과 여가시간을 지키고 늘리기 위한 사회적 힘과 운동이 절실하다. 적어도 1년에 3개월 이상은 방학을 하자는 것이 무리한 주장은 아닐 것이다. 수업일수에 대한 하한선만 있고 상한선은 없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학생의 쉴 권리 등을 보장하는 장치를 만듦으로써, 충분한 방학을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지.




※ 2014년 8월 〈한겨레〉에 쓴 글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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