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사회의 대륙 (거짓의 재판소) #8

1장-4. 노인의 마지막 한마디: “그게… 인간이니까.”

by 공인멘토

가온은 광장에서 발걸음을 돌렸지만, 내면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노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는데도,
그 존재감은 오히려 더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한동안 무작정 걸었다.
손목 장치의 경고가 여전히 점멸하는 걸 느끼면서도,
그는 숫자를 확인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점수가 아니라, 방금 사라진 그 눈빛의 의미였다.

도시 한복판에 조용한 정자 공간이 있었다.
나무는 아니지만 나무처럼 보이는 합성소재로 만든 쉼터.
그러나 실제로 이곳에서 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멈춤’은 점수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 앉은 가온은 처음으로 숨을 내쉬었다.
도시의 공기는 맑았다.
하지만 숨을 쉬어도, 정화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노인의 입술, 떨림 없는 시선,
터널로 끌려가며 마지막으로 던진 고개 돌림.
그 짧은 순간의 교차 속에서,
가온은 자신도 모르게 어떤 ‘낮은 울림’을 들었다.

그건 언어가 아닌 감정이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종류의 이해.
말을 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무엇.

그리고 가온은 되돌아갔다.
아무 의무도 없었지만,
발걸음은 저절로 광장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엔 더 이상 시민들도, 경고음도 없었다.
다만 한 남자가 터널 앞 대기 공간에 서 있었다.
보안 유닛은 노인을 잠시 그곳에 남겨두고, 절차 확인을 위해 안쪽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노인은 혼자였다.
하얀 벽 앞에 마치 조형물처럼 서 있었다.
가온은 멀리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걸었다.

노인이 먼저 눈치챘다.
가온의 접근에 놀라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엔 어떤 형식도 없었다.
그저, 사람이 사람을 마주 보는 순간.

가온이 말을 걸었다.

“왜 그러셨어요?”

그 말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왜 침묵하지 않으셨나요?’
‘왜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으셨나요?’
‘왜... 사람의 눈을 하고 계셨죠?’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꺼내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그러더군.
말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고개를 돌리면 평점은 유지된다고.
웃고만 있으면 문제없다고.
…하지만 그게 사는 겁니까?”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곤 가온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살아 있다는 건…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하는 겁니다.
내가 맞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침묵이 싫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졌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 말은 길지 않았지만,
가온의 가슴에 깊이 내려앉았다.
그 순간 그는 모든 질문을 내려놓았다.
해답은 언어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전해졌다.

그 짧은 교류 뒤,
보안 유닛이 돌아왔다.
“이동하겠습니다.”

노인은 미소를 짓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등은 굽었지만, 그의 뒷모습은 이상하게 곧았다.

가온은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정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그 한마디를 조용히 되뇌었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 말은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온몸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진리도 아니고 교훈도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마지막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 신념은,
이 도시에선 누구도 말하지 않는 종류의 숨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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