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종이 울리고 1분이 지났을 때, 복도는 금세 비었다.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2초. 마신 양은 110ml. 컵을 제자리에 두고 돌아서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소음은 78 데시벨에서 36 데시벨로 급락했고, 바닥의 형광등 반사가 더 선명해졌다. 복도 끝, 창가 쪽 벤치에 한 학생이 앉아 있었다.
여학생. 고개는 아래. 어깨는 아주 작은 주기로 들썩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발걸음 감속률 약 40%. 의도하지 않았다.
‘복도는 통행 공간이다. 울음의 평균 발생 위치는 화장실, 보건실, 빈 교실.
→ 현재 위치: 비정상.’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원인 후보를 빠르게 세웠다.
① 성적 문제 ② 또래 갈등 ③ 가정 연락 ④ 신체 통증 ⑤ 기타.
더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사회적 규범: 모르는 학생의 사적 순간에 접근 금지.
대신 내 시선만이, 규범을 약간 위반했다. 정확히는, 시선을 거두는 데 실패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소리 없는 울음이었다.
소매 끝으로 눈가를 가볍게 눌렀다가 떼는 동작이 7초 간격으로 반복됐다.
입술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고, 턱선이 잠깐 굳어졌다가 풀렸다.
눈꺼풀의 떨림—미세 진동.
울음을 멈추려는 노력의 패턴.
나는 그 노력에 데이터를 붙였다.
‘억제형 울음: 호흡 억제 → 횡격막 미세 경련 → 어깨 미동.
효율성: 낮음. 감정은 억제에 반비례.’
그녀의 옆에는 휴지가 없었다. 가방 지퍼는 반쯤 열려 있었고, 투명 포켓 안쪽에 접힌 가정통신문이 보였다. 글자를 읽으려 하진 않았다. 나는 이 장면의 원인을 추측할 수 있지만, 지금 필요한 건 원인 파악이 아니라 내 몸의 이상을 진단하는 일이라고, 이상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내 발은 멈춰 있었다.
멈추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관찰자였고, 지금도 관찰 중이었다. 다만—관찰 속도가 느려졌다.
‘시선을 유지 중. 불필요하다.’
머릿속에서 스스로에게 명령했지만, 시선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의 손등이 다시 눈가를 스쳤다.
그 순간, 상관없는 내 목 안쪽이 조여들었다.
아파서가 아니라, 비었기 때문에 조여드는 느낌. 마치 목젖 뒤편에 작은 마개가 끼워진 것처럼.
심박수는 평소 대비 +6회/분. 호흡은 0.5초 늦어졌다.
‘원인: 수분 섭취 부족? — 방금 물을 마셨다.
원인: 실내 공기 건조? — 체감 습도 정상.
원인:…’
나는 말을 멈췄다. 머릿속의 체크리스트가 공중에서 느리게 회전하다가, 한 항목에서 멈췄다.
‘공명.’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의 현상은 물리에 가깝다.
바이올린 현 옆에서 다른 현이 울릴 때 생기는, 그 ‘같이 울림’ 같은 것.
그녀의 어깨가 아주 조금 들썩이는 순간, 내 가슴도 아주 조금 내려앉는 것.
내가 울지 않았는데, 내 안쪽이 젖는 느낌.
나는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틀어 창밖을 봤다. 운동장의 햇빛은 평소와 같았다. 바람은 커튼을 3cm 정도 일렁이게 했다. 모든 데이터는 일상 범위. 그런데 내 내부 데이터만 일상에서 벗어났다.
‘선택지를 나열하라.
A.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
B. 보건실을 호출한다.
C. 말을 건다.
D. 가만히 선다.’
나는 A를 선택하려 했다. 내가 개입할 근거가 없었다. 내 역할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위로의 언어를 모른다. ‘울지 마. 수분 손실.’— 그 말은 다른 장면에서 이미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D를 했다. 가만히 섰다.
가만히 서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면서, 이상하게는 어떤 참여이기도 했다.
벗어나지 않는 것. 도망치지 않는 것.
그녀가 고개를 아주 조금 들었다.
우리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치지는 않았다. 5도쯤 어긋난 궤도.
하지만 그 5도가—충분했다.
내 안쪽에서 다시 무언가가 통과했다.
아닌 척했지만, 통과했다.
‘나는 왜 여기서 멈춰 있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답 대신, 내 등줄기를 따라 얇은 한 줄의 차가움이 흘렀다.
몸은 뒷걸음을 원했고, 발은 전진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있었다. 멈춤의 자세로.
누군가 우르르 복도를 지나가며 그녀를 힐끗 보고 지나쳤다.
그들의 시선은 튕겨나갔고, 내 시선은 붙들렸다.
그 차이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데, 존재했다.
그녀의 눈물이 다시 한번, 소리 없이 떨어졌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상상 속으로 그 소리를 채워 넣었다.
‘틱.’
정확한 음이 아니다. 하지만 내 가슴에서는 분명 작은 충돌이 났다.
“괜찮습니까.”
그 말을 했다면 좋았을까? 나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공기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내 안에서 또 한 줄의 문장이 흘렀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슴이 젖는다.’
나는 고개를 아주 조금 숙여, 무언의 인사를 대신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도 모른다.
다만, 도망치지 않는다는 뜻으로—내가 지금 배울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로.
종이 다시 울렸다. 쉬는 시간 종료.
나는 발을 뗐다. 한 걸음, 두 걸음.
발바닥 밑에서 복도의 타일이 일정한 간격으로 통과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보지 못했다.
돌아보는 순간, 내가 아직 모르는 무언가가 더 커질 것 같아서.
교실 문 앞에 섰을 때, 내 가슴의 눌림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가 내 하루에 들어왔다.
문손잡이를 잡으며, 나는 아주 조용히 결론을 보류했다.
결론 대신, 보류.
보류한 채로, 나는 교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분필 먼지 냄새가 오늘은 더 습하게 느껴졌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내 자리는 창가 세 번째 줄이었다. 늘 앉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았지만, 의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엉덩이 밑의 딱딱한 감촉은 평소와 같았으나, 몸의 무게가 조금 더 가라앉는 것 같았다.
칠판 위에 선생님의 목소리는 일정한 톤으로 흘러갔다. “다음 단원은 여기서부터…” 분명 들리는데, 내용은 잘 안 들어왔다. 내 귀에는 다른 소리가 잔향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들은 소리 없는 울음. 소리가 없었는데, 소리가 남아 있었다.
나는 책을 펴고 연필을 잡았다. 글자를 눈으로 따라가며 읽으려 했지만, 눈앞의 글자보다 자꾸 그녀의 어깨가 먼저 떠올랐다. 아주 작은 진동. 눈에 보였던 건 단순한 미세 운동이었는데, 지금은 내 안쪽에서 그 진동이 반복되는 듯했다.
심장이 두 박자마다 조금씩 무거워졌다.
호흡은 평소와 같았지만, 공기가 목을 지날 때 묘하게 걸리는 감각이 있었다. 마치 아주 얇은 필름이 목구멍 안쪽에 붙어 있는 것처럼.
나는 즉시 자기 진단을 시작했다.
‘원인 후보 ① 점심 소화 과정의 가스 압력.
② 아까 마신 물의 잔여 흡수.
③ 일시적 긴장 반응.
④… 아니면, 감정.’
나는 마지막 항목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은 내 안에서 생성되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사건도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답답함은 나에게 남아 있는가?
책상 위에 펼쳐진 연습장 여백에 나는 숫자를 적었다. 78, 36, 7.
복도의 데시벨, 정적의 데시벨, 그녀의 어깨 떨림 간격.
숫자는 정확했다. 그런데 숫자에는 지금 내 상태가 담기지 않았다.
연필 끝이 잠깐 멈췄다. 손가락에 불필요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건, 분명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이 된 어떤 무게였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가슴은 방금 누군가 울었던 자리처럼 젖어 있었다.
연필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깍지 끼었다. 눈앞에 펼쳐진 교과서 문장은 그대로였지만, 머릿속은 복도에 멈춰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집중하라. 지금은 수업 중이다.”
그러나 명령은 지켜지지 않았다.
내 시야의 가장자리에는 계속 그 아이의 뒷모습이 스며들었다. 고개 숙이고 있던 어깨,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던 움직임.
나는 즉시 분석을 시작했다.
“이건 감정 전염 현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무리 속에서 감정 신호를 모방한다. 웃음을 보면 웃음이 나오듯, 울음을 보면 울음이 유발될 수 있다. 단순 모방일 뿐이다.”
그렇게 정의를 내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만약 단순한 모방이라면, 지금쯤 나는 이미 잊었어야 했다. 그런데 내 가슴은 여전히 무겁다.
나는 또 다른 가설을 세웠다.
“과민 반응일 수도 있다. 내가 오늘 피곤하거나, 체력이 떨어져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사소한 장면에도 불필요한 신체 반응이 일어난다.”
하지만 손목 위의 맥박은 평소와 같았다. 피로는 아니었다.
마지막 가설은 이렇게 적혔다.
“착각이다. 그녀가 울지 않았는데, 내가 울었다고 오인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론 눈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은 곧 스스로 무너졌다. 내 눈은 분명히 보았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물방울. 손등에 묻어나던 습기.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칠판의 분필 소리가 커졌다. 선생님이 새로운 단원을 시작했지만, 나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하나였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도 그 아이처럼 가라앉고 있는가?”
논리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감정은, 논리를 우회해 내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급식실 줄에 서 있는 동안, 나는 평소처럼 계산된 움직임을 반복했다. 식판을 잡고, 국을 받고, 반찬을 옮기는 일련의 과정. 손은 익숙하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앞사람이 깔깔 웃으며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그 웃음소리가 나를 더 깊이 고립시켰다. 내 안에서 가라앉은 무언가가 올라오지 못한 채 눌려 있는 듯, 답답함이 퍼졌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이건 내 감정인가, 아니면 그녀의 감정인가?”
내겐 아무 일도 없었다. 모욕당한 것도, 거절당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만 무거워지는가.
자리에서 밥을 먹는데, 숟가락이 자꾸 멈췄다. 쌀알이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몸은 문제없이 움직였는데,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민석이 내 눈빛을 보고 물었다.
“야,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는 즉각 답했다.
“없습니다.”
짧고 단호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나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없다’라는 답은 거짓처럼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숟가락을 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전해져 온 것처럼 내 안에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내 안엔 눈물이 남아 있다. 그건 분명,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 감정처럼 느껴진다.”
하교 시간이 되어 복도를 지나가면서, 나는 아침의 그 자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창가 옆, 의자가 놓여 있던 곳.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건 햇살의 기울기와 묘한 정적뿐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 있었다. 이상했다. 그 아이는 사라졌는데,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 듯했다. 눈물 자국도, 떨리는 어깨도 보이지 않는데, 마치 그 장면이 아직도 그 공간에 흡착되어 있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없어졌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그 순간 안에 서 있는가?”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감정은 사건과 함께 끝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원인이 사라지면 결과도 사라지는 것이 수학적 순리다. 그런데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원인이 사라졌는데도, 결과가 남아 있었다.
나는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더 깊은 질문을 떠올렸다.
“이건 내 감정이 아닌데… 왜 나는 그 감정 안에 붙잡혀 있지?”
내가 흘리지 않은 눈물이 내 가슴에 남아 있었고, 내가 경험하지 않은 슬픔이 내 마음에 고여 있었다. 이건 착각일까? 아니면 정말로 감정이 옮겨온 것일까?
복도를 떠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누군가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면서 동시에 내 것이 되어 있었다.
감정 관찰 보고서 14호.
오늘은 기록을 시작하기 전에 손끝이 오래 머뭇거렸다. 이유 없는 무거움이 손목을 눌렀다.
나는 이렇게 적었다.
“감정은 전염되지 않는다고 배웠다. 감정은 개인의 뇌 신호이며, 생리적 반응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그 규칙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다.”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내 가슴은 답답했고, 목 안쪽이 묘하게 조여 왔다. 나는 사건의 원인도, 그녀의 사연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감정이 내 하루를 바꿔버렸다.
나는 덧붙였다.
“감정은 반드시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눈물은, 소리 없는 파동처럼 주변을 적신다. 나는 그 파동 속에서 흔들렸다.”
펜 끝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그녀를 모른다. 이름도, 이유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슬픔이 내 안에 남아 있다. 감정은 정보가 아니다. 감정은 스며드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오래 고민하다 적었다.
“공감은 감정의 이해가 아니라, 감정의 감염이다. 나는 오늘, 내 것이 아닌 감정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점 하나를 더 찍고 펜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여전히 그 복도의 공기 속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