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은 체육대회 준비로 시끌벅적하던 며칠 전과 달리, 오늘은 책상들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적은 주제는 ‘게임은 해로운가?’였다. 토론 수업.
아이들은 웅성이며 손을 들고 의견을 쏟아냈다.
“게임은 머리 나빠져요.”
“아냐, 집중력 좋아진다니까!”
“밤새 하면 당연히 해롭지.”
소리가 얽히고설켜 뒤엉켰다. 그러나 이천재의 귀엔 필요 없는 잡음으로만 들렸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연필을 굴리며, 칠판 옆에 붙은 시계를 보았다. 초침의 움직임처럼, 논리의 틀만이 분명하게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이 민석을 지목했다.
“민석아, 넌 어떻게 생각해?”
민석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임은요, 솔직히 스트레스 풀어주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친구들이랑 같이 하면 더 재밌고요. 공부만 하다 머리 터질 때 잠깐 하면 완전 힐링이에요.”
반 아이들 사이에서 웃음과 동조의 고개 끄덕임이 이어졌다.
“맞아, 맞아!”
“그래, 안 하면 더 답답하지.”
천재는 그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도표가 그려졌다. 뇌의 도파민 분비 그래프. 수면 부족 통계. 집중력 저하 실험 자료.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불려 올라왔다. 그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게임은 자극 중심의 쾌락 행위입니다. 단기적 스트레스 해소 효과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학습 효율을 저하시킵니다. 도파민 과잉은 의존성을 유발하고, 실제 인간관계를 대체합니다. 따라서, 게임은 해롭습니다.”
순간 교실이 정적에 잠겼다. 몇몇은 감탄처럼 “와…”를 내뱉었지만, 대다수의 얼굴에는 묘한 부담이 스쳤다.
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야, 또 시작이네. 너는 맨날 그렇게 따지고 들어? 그냥 재밌으면 되는 거잖아.”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맞아, 천재는 너무 딱딱해.”
“게임 얘기하다가 갑자기 뇌 과학까지 나오냐.”
천재는 미동도 없이 민석을 응시했다.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논리적으로 틀린 것은, 재밌다는 감정으로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공기 속에 맴도는 동안, 아이들은 잠시 서로 눈치를 보다가 대화의 방향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이천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자신이 옳았다. 그런데도, 누구도 민석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 순간, ‘옳음’과 ‘인정’ 사이에 벌어진 틈이 또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석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너는 진짜 맨날 맞는 말만 해서 피곤하다니까.”
그 말에 옆자리 친구들이 킥킥 웃었다. 웃음소리는 교실 전체를 타고 번졌다. 누군가는 “로봇 같다”는 속삭임을 던졌고, 또 다른 아이는 “논문 쓰냐?” 하고 장난 섞인 농담을 던졌다.
이천재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웃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표정을 스캔하듯 바라봤다. 그는 머릿속으로 분류를 시작했다.
민석: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했으나, 다수의 지지를 얻음.
다른 아이들: 사실 확인 없이 감정적으로 동조.
자신: 논리적으로 완전하나, 고립.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옳은 쪽은 자신이었지만, 다수는 민석의 말에 끌려갔다.
천재는 입술을 조금 다물었다 열며,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논리의 오류는 명백합니다. 감정으로 정당화한다는 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회피입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튕겨나갔다. 아이들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민석이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반격했다.
“그게 내 생각이고, 내 경험이야. 틀렸다고 해도, 난 그렇게 느껴.”
교실이 잠시 정적에 잠겼다. 이천재는 이해하지 못했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그런데 민석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서 있었다.
천재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경험은 검증 불가능합니다. 검증 불가능한 것은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민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래도 그게 내 기준이야. 난 그게 맞다고 생각해.”
천재의 안쪽에서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논리라는 절대적 도식 안에 감정이라는 알 수 없는 변수가 끼어들며 모든 체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쉬는 시간, 교실은 다시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 찼다. 민석은 친구들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과자 봉지를 돌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방금 있었던 토론 이야기를 흥미로운 농담처럼 흘리고 있었다.
“야, 아까 내가 말했을 때 너 봤지? 천재 또 딱딱하게 반박하더라니까.”
“아, 진짜 웃겼어. 근데 민석 말도 맞지 않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민석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이천재의 가슴속 어딘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틀린 건 분명히 틀렸다. 그런데… 왜 저들은 그를 중심으로 모이는가?”
머릿속에서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자신의 주장: 논리적 완결성 100%
민석의 주장: 검증 불가, 논리적 타당성 20% 이하
친구들의 반응: 민석에게 동의율 80% 이상, 자신에게 0%
수치와 통계가 명확한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천재는 그 모순을 이해하지 못한 채, 몸으로만 느꼈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나는 맞았다. 그런데 왜 인정받지 못하는가? 나는 옳았다. 그런데 왜 외면당하는가?”
그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단순히 의견이 무시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준, 자신이 믿어온 절대적 ‘옳음’이 부정된 것처럼 느껴졌다.
책상 위에 두었던 손을 움켜쥐었다. 목덜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감정은 기준이 없다. 그래서 무질서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러나 그 순간, 천재는 동시에 깨닫고 있었다.
그 무질서가 지금 자신의 가슴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복도에서 마주친 민석은 여전히 가벼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까의 토론이 그냥 잠깐의 놀이였던 듯했다.
“야, 아까는 미안. 근데 너 진짜 너무 딱딱해.”
민석은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그 말이 이천재의 귓속에 깊숙이 박혔다.
이천재는 잠시 멈춰 서서 곱씹듯 대답했다.
“나는 너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네 기준이라면… 나는 여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말이 끝난 순간,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졌다.
민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래, 뭐. 너답네.” 하고 떠났지만, 이천재의 발걸음은 복도에 멈춰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방금의 대화가 계속 맴돌았다.
‘다름은 곧 틀림이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의견을 용납하면 기준은 흐려지고, 질서는 무너진다. 그런데 왜 저들은 다름을 받아들이는가?’
가슴이 답답했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하게 방어한 답변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불편감이 끈적하게 남아 있었다.
그 불편감은 단순히 민석의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 짓는 자신의 태도가 더 이상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그 낯섦이 불편했다.
이천재는 벽에 기대어 작게 중얼거렸다.
“다름은 오류인가, 아니면… 또 다른 기준인가?”
그 질문은 대답을 찾지 못한 채, 그의 내면 깊은 곳에 미세한 진동처럼 남았다.
집에 돌아온 이천재는 책상에 앉아 교재를 펼쳐놓았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페이지 위의 활자는 그저 검은 선의 집합일 뿐, 낮에 나눈 대화의 잔향이 그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민석은 경험을 근거로 말했다.
그 경험은 검증 불가능하다. 나는 그것을 틀렸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는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자신의 진실을 말한 것이다.’
손가락으로 교과서 여백을 무의식적으로 긁적이며 생각을 이어갔다.
논리의 세계에서 ‘진실’은 하나여야 했다. 증명되지 않으면 거짓이고, 틀린 것이다.
그런데 감정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진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민석이 말한 “게임은 즐겁다”는 경험은 그에게 분명한 사실이었다.
반대로, “게임은 비효율적이다”라는 자신의 주장은 데이터와 통계에 기반한 사실이었다.
둘 중 하나만 옳은 게 아니라, 두 개가 동시에 ‘사실’ 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이천재는 펜을 들어 종이에 ‘진실 = 단일?’이라고 적고, 옆에 작은 물음표를 붙였다.
그리고 다시 적었다.
‘진실 = 다원?’
심장이 묘하게 빨라졌다. 이 깨달음은 두렵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이 열린 듯한 감각을 안겨주었다.
‘논리의 기준만으로 세상을 재단한다면, 나는 계속 누군가를 틀렸다고 단정 지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의 기준은 다르다. 다름은 오류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진실일 수도 있다.’
이천재는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름은… 틀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말은 공기 속에 사라졌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마치 오래 묵은 돌이 굴러 떨어지듯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감정 관찰 보고서 15호
오늘, 나는 민석과 의견이 달랐다.
나는 그를 틀렸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에 어떤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 판단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민석은 자신의 경험을 말했을 뿐이다.
그 경험은 검증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그에게는 그것이 진실이었고, 나에게는 그것이 오류였다.
그러므로 진실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깨달았다.
논리의 세계에서는 진실이 하나지만, 감정의 세계에서는 각자의 진실이 존재한다.
그 차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만들고, 때로는 다툼을 낳는다.
나는 민석의 말을 여전히 논리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를 단순히 ‘틀렸다’고 부르지 않는다.
그의 말은 다를 뿐이었다.
오늘의 결론:
다름은 곧 틀림이 아니다.
감정은 단일한 기준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다름은 불편함을 낳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연다.
마지막 문장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다른 마음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