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친구는 그냥 계속 같이 있는 사람인가요?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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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직전, 교실 안은 들뜬 공기였다. 한쪽에서는 작은 고리 모양의 팔찌들이 오가고 있었다. 색색의 실로 엮은, 손재주 좋은 아이가 만든 ‘우정팔찌’였다. 아이들은 서로의 손목에 걸어주며 큰 소리로 웃었다.

“야, 이제 우리 절친임~!”
“이거 안 끼면 배신이야!”

팔찌 하나로 관계가 규정되는 순간처럼, 그들은 장난과 진심을 섞어 떠들었다. 어떤 아이는 일부러 팔찌를 두 개 겹쳐 차고, 어떤 아이는 “이거 평생 간직할 거야”라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다. 웃음소리와 농담이 얽혀 교실이 한순간에 들썩였다.

그때 민석이 이천재 쪽으로 다가왔다. 반쯤은 장난스럽게, 반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의 손목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야, 우리도 이 정도면 친구지?”

교실 분위기는 여전히 가볍고 산만했지만, 그 말은 이천재의 귀에 묘하게 선명하게 박혔다. 그는 잠시 민석을 똑바로 응시하다가, 차갑게 물었다.

“그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민석은 순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야, 또 시작이다ㅋㅋ 그냥 친구라니까~”

주변 친구들도 함께 웃으며 상황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천재는 웃지 않았다. 그는 손목에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친구라는 단어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 붙는가? 단순히 팔찌를 주고받으면 되는가? 아니면 일정 시간을 공유하면 되는가?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아이들의 웃음은 멀리서 웅웅 울려오는 잡음처럼 들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새로운 관찰 항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천재는 교실 구석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공책을 펼쳤다. 수학 문제를 적던 노트 여백에, 새로운 항목들이 차례로 기입됐다.


대화량: 하루 평균 대화 횟수
함께 보낸 시간: 수업 외 활동 포함

정서적 교류: 웃음·분노·위로의 빈도
갈등 횟수: 싸움이나 언쟁의 기록

연락 빈도: 교실 밖 접촉 여부

그는 한 줄 한 줄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친구를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곧바로 의문이 따라왔다.

“만약 대화량이 많지 않아도, 친구라 부르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하지? 갈등이 잦은데도 여전히 함께 다니는 아이들은 무엇인가? 반대로 조건이 충족돼도, ‘아닌’ 경우도 있다.”

그는 팔을 꼿꼿이 세우며 책상에 팔꿈치를 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교실 한쪽에서 들려왔지만, 그의 시선은 종이에만 꽂혀 있었다.

“기준이 모호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 단어를 이렇게 쉽게 쓸까? 근거도 없으면서, ‘친구’라는 말은 어떻게 이토록 자주 발화되는 걸까?”

펜 끝이 잠시 멈췄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친구’라는 단어 사용: 자의적, 감정적, 논리 부재

종이에 적힌 문장은 차갑고 건조했지만, 천재의 가슴 안쪽에서는 묘한 공백감이 번지고 있었다.
마치 지금 그 웃음소리와 팔찌 교환 장면에서, 자신만이 배제된 듯한 느낌이 따라왔다.

급식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줄을 섰다. 이천재도 식판을 들고 줄에 섰지만, 그의 시선은 줄 맞추기보다는 사람들의 관계에 고정되어 있었다.

앞쪽에서 매번 싸우는 아이 둘이 또다시 티격태격했다.
“야, 너 내 반찬 훔쳐갔지?”
“뭐래, 네가 놓친 거잖아.”
서로 헐뜯듯 말하면서도, 그들은 결국 나란히 식판을 들고 같은 자리에 앉았다.
이천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갈등 횟수는 이미 열 번 이상이다. 그런데 왜 떨어지지 않는가? 갈등은 관계 단절 요인이 아닌가?”

반대로, 늘 붙어 다니던 또 다른 두 아이는 이 날따라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말도 섞지 않고, 식판만 바라본다.
“함께한 시간과 대화량은 충분하다. 그런데 왜 오늘은 침묵인가? 그럼 친구 관계는 중단된 것인가?”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서도, 이천재의 사고는 계속되었다.
“시간, 거리, 빈도… 모든 조건은 계산 가능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측 불가하다. 싸우면서도 친구, 가까이 있어도 친구 아님. 수학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잠시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식판을 응시했다. 반찬의 배열은 일정했지만, 아이들의 관계는 예측 불가한 무늬를 그렸다.
“이건 함수도 아니고, 통계도 아니다. 감정은 왜 이렇게 불규칙한가?”

가슴 안쪽에서 미묘한 불안이 스며들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교실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식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이천재는 창가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숫자와 지표로 정리해 둔 목록이 빼곡했지만, 어느 하나도 “정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펜을 들고 중얼거렸다.
“친구 = 대화량 + 시간 + 공감… 그런데, 이 식은 완성되지 않는다.”

민석과의 장면이 떠올랐다. 수업 시간에 늘 다른 의견으로 부딪히고, 복도에서는 장난 반 진심 반의 말을 주고받는다. 윤아와의 기억도 스쳐 갔다. 칭찬을 했을 때, 자신이 그 말을 거짓이라며 잘라냈던 순간, 그리고 그 뒤에 남은 어색한 공기.

논리적으로는 불필요한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이 지워지지 않고 자꾸 떠올랐다.

“나는 그들과 자주 대화했다. 때로는 다퉜고, 때로는 무시당했다. 웃은 기억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얼굴이 자꾸 기억 속에 남는다.”

펜 끝이 종이에 작게 떨렸다.
“내가 그들을 찾고, 다시 떠올리고, 놓치지 못하는 이유는… 감정 때문인가?”

창밖 운동장에서 민석이 또 다른 친구들과 농구하는 모습이 보였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이 들어왔다.

“나는 그와 다투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없어지면 허전할 것 같다. 이 감정이… 친구라는 것인가?”

말로 정리되지 않는 감각이 가슴에 남았다.
논리가 아닌, 낯선 단어 하나가 서서히 떠올랐다.
‘그립다.’

이천재는 펜 끝으로 그 단어를 노트 여백에 조심스럽게 적었다.

이천재는 노트 위에 적힌 단어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립다.’
이 단어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수학처럼 정의된 것도 아니고, 과학처럼 측정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한 글자가, 자신이 민석과 윤아를 떠올릴 때 느꼈던 묘한 감각을 가장 가깝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는 다시 정리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친구란,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 생성되는 관계가 아니다. 시간, 대화, 빈도… 그 어떤 수치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머릿속에 장면들이 잇달아 떠올랐다.
민석이 자신을 향해 “너랑 얘기하면 피곤하다”라고 했던 순간, 윤아가 그림을 보고 “멋있다”라고 말했던 순간. 논리적으로는 불필요하거나 거짓이 섞인 장면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들이 자신을 묶어두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기억하고, 다시 보고 싶고, 없어지면 허전하다. 이런 감각들이 쌓여서 남는다. 그게 아마, ‘친구’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던 단어가, 감정의 누적치라는 새로운 언어로 모습을 드러냈다.
친구는 조건이 아니라, 남아 있는 감정의 잔여량이었다.

그는 펜을 다시 들고 여백에 썼다.
“친구 =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감정.”

적는 순간, 가슴이 묘하게 편안해졌다. 마치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방정식이 완성된 것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증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도착한 답이었다.


감정 관찰 보고서 16호

오늘 나는 ‘친구’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깊게 고민했다.
수치로 정의하려 했으나, 조건은 모호하고 결과는 일관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었다. 나는 몇몇 사람들을 계속 떠올린다.
그들의 표정이 기억 속에 남아 있고, 그들이 사라지면 허전하다.

이 감정은 논리적 설명보다 오래 머물렀다.

나는 누군가를 친구라고 말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다시 만나고 싶고, 그 순간을 떠올릴 때 미소가 남는다면, 우리는 이미 친구일 수 있다.


마지막 문장:
“친구는 감정의 잔여량이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감정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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