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1. 봉인된 층
새벽 4시 15분.
가온은 북동 구역 외곽의 폐쇄형 물류 터널 앞에 섰다.
‘OUTBOUND’라고 찍힌 녹슨 철문, 그 위엔 ‘관제 제외 구역—안전 책임 외’라는 낡은 표지판이 기울어 있었다.
이곳은 원래 루세온 시티가 돔을 덮기 이전, 외부로 화물을 반출하던 시설.
돔 완공 후엔 지도에서 지워졌고, 데이터베이스에도 좌표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온은 에단 기록 속 좌표 잔흔(Checksum Offset)으로 이 터널을 추적해 냈다.
철문은 바깥쪽에서 용접 자국까지 남아 있었지만,
안쪽 자물쇠는 옛 규격 그대로였다.
3핀 회전 실린더를 뽑아내고,
수동 바렐키를 끼워 27°—43°—12° 순으로 틀자 텅 하고 걸쇠가 빠졌다.
문을 밀어 열자 곰팡이 냄새와 함께 얼음처럼 찬 공기가 뿜어졌다.
벽면 전등은 모두 꺼져 있었으나,
덕트 아래 유리섬유 바닥이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사되었다.
가온은 헤드램프를 켜고,
터널을 따라 안쪽으로 60 m쯤 들어갔다.
바닥엔 먼지 대신 미세한 결정체가 깔려 있었고,
센서는 습도 9 %, 온도 6 ℃를 가리켰다.
터널 끝 T자 구간.
왼쪽은 완전히 봉쇄된 벽,
오른쪽엔 오래된 화물 엘리베이터 샤프트.
엘리베이터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샤프트 1단 플랫폼 위에
‘ARCH-Δ STORAGE’라고 찍힌 스틸 캐비닛 네 동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각 캐비닛에는 아날로그 열쇠 잠금과 패시브 RFID 태그가 동시에 달려 있었다.
가온은 열쇠 구멍 위를 손가락으로 훑어 지문 가루를 살폈다.
가장 많이 쓰인 건 3번 캐비닛—
고정핀 두 번째 이빨이 특히 닳아 있었다.
쇠고리를 열어 덮개를 젖히자
내부에 진공 포장된 마이크로필름 카트리지 수백 개가 금속 레일까지 연결돼 있었다.
필름 측면에 적힌 코드: M-CR-197 ~ M-CR-312.
‘CR’은 “Court Record”—도시가 전자 기록 이전에 쓰던 원본 매체였다.
가온은 인덱스 화일에서 M-CR-221을 찾아 뽑았다.
카트리지를 리더기에 끼우고 손잡이를 돌리자,
필름이 LED 광원 위를 지나 작은 뷰어 화면에 투영됐다.
흑백 사진 한 장.
젊은 이레가 양복 차림으로 서명 문서를 들고 있고,
그 앞 연단에는 수감복을 입은 에단이 수갑을 찬 손으로 종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뒷배경 현수막에는 낡은 로고.
“정의 평점 β 버전 시범 적용 기념 / 최초 표준 판결식”
가온은 숨을 삼켰다.
‘β 버전’—즉, 지금의 완성 시스템 이전, 시험판 시절의 공개 재판.
그리고 이레는 이미 그때부터 집행관 배지를 달고 있었다.
다음 필름 프레임엔
– 에단이 판결 직후, 호송관 둘에게 끌려가며
– 관람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무엇인가를 외치는 순간 –
입이 ‘소리 없는 발음’으로 열려 있었다.
가온은 화면을 멈추고 입 모양을 따라 읽었다.
“숨을 멈추지 마라.”
필름이 돌아가던 중, 터널 천장에서 붉은 LED가 점멸했다.
폐쇄된 구역에도 남아 있던 잔류 센서가
‘비인가 전력 사용’ 신호를 중앙 서버에 송신한 것이다.
남은 시간은 90 초 가량.
가온은 카트리지를 즉시 역회전시켜 제자리에 꽂고,
뷰어 내장 배터리를 강제 분리해 LED 신호를 끊었다.
이어 엘리베이터 샤프트로 뛰어올라 쇠살대를 타고 4 m를 기어올랐다.
샤프트 상단엔 녹이 슨 환기구가 있었다.
덮개 볼트 두 개를 맨손으로 뜯어내고,
몸을 비집어 위로 빠져나오는 동안
터널 아래로 파란 서치라이트와 발소리가 번갈아 스쳤다.
새벽 05:02.
도시 외벽 서비스 통로로 연결되는 환기구 출구에서
가온은 하늘빛이 옅어지는 것을 보았다.
손목 점수 5.65 → 5.20 (“금지 기록 열람” 자동 감점).
하지만 손엔 에단 β 판결의 진본 사진이 디지털 캡처로 남았다.
그는 메모에 한 줄을 더했다.
“숨을 멈추지 마라.
시작은 β 버전의 거짓 정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