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3. 메모리 칩 LCN-βψ13 복호화
밤 00 : 47. 루세온 남단 고가 철도 아래, 사용 중지된 화물 정차소.
폐선 터널 깊숙이 마련된 비공식 해커 셸터에는 소형 발전기, 광섬유 라우터, 그리고 20년 된 범용 프로토콜 어댑터가 놓여 있었다.
가온은 손전등 대신 레일 위에 매단 보조 배터리 LED를 켜 주변을 비췄다. 먼지 냄새에 쓰인 이정표들—‘통신 불가 지역’, ‘RF 음영’. 역설적으로 해킹엔 최적의 장소였다.
칩 LCN-βψ13은 세라믹 코어·단자 9핀·용량 128 MB. 루세온 초기 군사용 사양과 동일.
가온은 구형 SOP-9 소켓을 변환기에 연결하고,
전력 3.3 V → 2.5 V 강압,
병렬 버스 8비트를 SPI 2선식으로 변환,
기본 ECC 로직을 우회하는 딥웨어 덤프 모드를 설정했다.
10초 뒤 콘솔에 **“raw image 134 MB / parity err 0.00”**가 떴다.
HEX 뷰어에 뜬 최초 256바이트에 낯익은 서명 문자열이 있었다.
JIX-beta.core ver0.92
author: IRL
checksum: 9AC2-E01F-Δ13
IRL—이레 R. Lucian. 그가 β 시절 직접 컴파일한 코드 베이스였다.
칩 중간 오프셋 0x3A000에는 AES256-CTR로 암호화된 8 MB 블록이 묶여 있었다.
키 힌트는 ‘ψ13’. 가온은 에단의 메모 “숨을 멈추지 마라”를 ASCII-SHA256으로 해시해 키 후보 3개를 생성, CTR 논스 값을 칩 시리얼 뒤 8바이트와 조합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 해시 키가 맞물렸다.
암호 블록이 열리며 TXT 헤더가 눈을 떴다.
Δ-FILE/CONFIDENTIAL
Title: CUT-OVERFLOW CONTINGENCY
Compiler: IRL / Ethics Risk Div.
Date: D-10Y-029
“Δ-C.O.C. 는 ‘감정 지수 V’ 폭주 시 즉시 평점 0.00 수치로 도시를 리셋한다.
단계 1) 고위험 감정자 전원 격리.
단계 2) 전체 지수 재평가 — 모든 시민 평점 초기화.
단계 3) 재차 감정 파동 발생 시 도시 봉쇄(돔 실링 잠금).
목표: 질서 절대 복원.”
하단 각주에는 에단의 필체로 보이는 손글씨.
“이 계획은 숨의 제거다.
숨 없는 정의는 가장 조용한 폭력이다.”
그리고 옆에 덧댄 이레의 각주.
“폭력 없는 숨은 없다.
숨을 허용하면 질서를 비용으로 치러야 한다.”
칩 최하단 트레일러 블록에 >>trapcall() 문자열이 떠 있었다.
복호 후 120초 내 외부 네트워크 연결이 감지되면,
자폭 루틴이 메모리 전부를 소거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가온은 즉시 라우터를 오프라인 전환, 전원선을 뽑아 내부망으로 격리했다.
칩은 소거 루틴을 실행하지 못한 채 SAFE=TRUE 플래그를 띄웠다.
RAW 이미지 → 3중 ZIP 암호 → 휴대 SSD 1TB에 저장.
해시 값 SHA-512: A7C9…EF2D.
백업 완료와 동시에 칩을 아스테이트 에폭시로 봉인, 금속 케이스에 밀봉했다.
“이레는 β 단계에서 이미 ‘도시 리셋’ 시나리오를 쥐고 있었다.
에단은 이를 막으려 했고, 그 대가로 0.00에 사라졌다.
― 도시가 숨을 막는 최종 스위치를 빼앗기 전까지 시간이 없다.”
가온은 손목 밴드의 점멸을 바라봤다. 4.95 → 4.70 → 4.55.
경계선을 더 깊이 밟았지만, 눈빛은 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