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사회의 대륙 (거짓의 재판소) #16

3장-4. 집행관 이레와의 비공식 재회

by 공인멘토


1. 익명 초대

오후 18 : 42, 가온의 손목 장치에 발신자 불명 메시지가 떴다.

“21 : 30, 동부 수로 제어실. 단독 입장.”

보안 서명은 없었지만, 패킷 헤더의 암호화 서명이 I.R.L.—이레 R. Lucian—의 개인 키 해시와 87 % 일치했다. 가온은 미끼인지 회동인지 분간할 새도 없이 “수락”을 눌렀다.


2. 동부 수로 제어실

돔 지하 70 m, 하수·냉각·통신 케이블이 교차하는 Y형 관제 구역.
통상 근무자는 2인 1조지만, 야간 셔틀이 지나간 뒤 근무 인력은 없다.
가온이 접근하자 자동 조명이 켜지고, 제어실 내부 방수벽 하나가 슬라이드처럼 열렸다.

거기, 은 라펠을 떼어낸 검은 셔츠 차림의 이레가 서 있었다.
빛이 없는 눈, 그러나 어딘가 흔들리는 숨.


3. 서류 봉투

이레는 말없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외피엔 ‘C.O.C. / CUT-OVERFLOW CONTINGENCY—원본’이 적혀 있었고,
하단에 β 시절 이레의 자필 서명이 있었다.

가온이 묻지 않자, 이레가 먼저 말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기계음 같은 평탄함이 깨져 있었다.

“당신이 찾은 칩은 사본이다.
진본—여기에 있다.”


4. 대치

가온: “왜 내게 줍니까? 지금이라도 삭제할 수 있잖습니까.”
이레는 봉투에서 한 장을 꺼냈다. 에단의 필체가 붉은 펜으로 표시된 페이지.

“숨 없는 정의는 가장 조용한 폭력이다.”

이레는 그 문장을 다른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10년 전, 나는 그것을 ‘리스크’라 정의했다.
… 오늘, 내 정의가 맞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침묵이 수로관의 물소리 위에 얹혔다.
가온은 한 발 다가섰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멈추십시오.”

이레는 고개를 저었다. “멈추면 돔 봉쇄 절차가 발동된다. C.O.C. 는 나 혼자 막을 수 없다.”
그는 숨을 길게 토했다—4박자의 떨림. 심박 66 → 69.

“그래서 선택권을 당신에게 준다.
진본을 외부—돔 밖—로 보내라.
도시가 듣지 못해도, 세계는 판단할 것이다.”


5. 경보와 결의

머리 위 스피커가 갑자기 울렸다. “비인가 접촉 경보—레벨 2.”
보안 드론 진입까지 45초. 이레는 봉투를 가온 손에 쥐여주더니, 자신의 장신구가 달린 제복 상의를 가온 반대 손에 넘겼다.

“내 신분 태그를 사용하면 출구까지 1회 통과가 가능하다.
…그 후,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가온: “당신은?”
이레: “여기서 시스템을 지연시키겠다. 숨이 멈추지 않도록.”

30초. 드론 카메라 빔이 통로를 구석구석 비추기 시작했다.
가온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 지금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까?”

이레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 느끼지 않았다면, 이런 선택도 없었겠지.”


6. 이탈

가온은 제복 상의를 걸치고, 봉투를 가슴에 품은 채 보안 통로로 달렸다.
장신구의 최우선 권한이 리더를 속이고 문이 열렸다.
뒤를 돌아보자, 이레는 여전히 수로 제어 패널 앞에 서 있었다.

드론 빔이 그를 포착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제어실 셔터를 닫으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제어실 통제권—수동 유지. 자동 봉쇄 해제 30분 지연.”

문이 닫히며 두 사람의 시야가 완전히 끊겼다.


7. 지상 탈출

가온은 동부 정비 갤러리를 거쳐 12 분 만에 돔 외벽 서비스 리프트까지 도달했다.
손목 점수 4.55 → 4.20 → 3.95. 격리 확정 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제복 상의의 마스터 태그가 마지막 차단기마저 열었다.

리프트가 바깥공기층까지 치솟자,
돔 내부의 조명 도시가 멀어지고,
손 안 봉투가 싸늘한 밤바람에 흔들렸다.

“숨이 멈추지 않게 하라.” —에단
“숨을 선택하라.” —가온
“숨을 지연시키겠다.” —이레

세 문장이 그의 귓속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가온은 봉투를 꼭 쥔 채, 돔 외부 안전 데크 위로 몸을 내디뎠다.
샛별이 돔 곡면에 겹쳐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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