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사회의 대륙 (거짓의 재판소) #17

3장-5 폭로의 새벽

by 공인멘토

새벽 04 : 11, 돔 외부 안전 데크—

차가운 바람이 플라스틱 방진막 사이를 울렸다.

가온은 손등에 스치는 서리를 털어 내며, 휴대 송신기를 돔 곡면 콘센트에 연결했다.

이 회선은 평점 유지용 백업 채널이지만, 돔 밖에선 인증 우회를 감시할 장치가 없다.


1. 숨의 패킷 준비


봉투에서 꺼낸 CUT-OVERFLOW CONTINGENCY 진본 문서,

β 시절의 군중 제어 시뮬레이션 소스,

그리고 에단 영상·음성 파일을 하나로 묶어

압축률 92 % ‘숨(suum).pak’ 패키지를 생성.

헤더엔 SHA-512 해시와 함께 짧은 설명을 넣었다.


“정의 지수 아래 가려진 숨의 기록.

루세온 시민에게 우선 배포,

외부 네트워크로 자동 릴레이.”


패키지가 완성되자 손목 점수는 3.95 → 3.70.

‘감정 기반 활동’이 아닌 ‘시스템 불가침 위반’으로 다시 감점.

가온은 숫자를 흘려보내듯 숨을 들이쉬었다.


2. 도시 외부 네트워크 접속


돔 외벽을 감싸는 마이크로 통신망은

위성 릴레이→외부 백본→루세온 내부 DNS를 이중화해 둔다.

가온은 우회 DNS에 ‘/public/ru-open-relay’ 노드를 호출,

숨.pak을 다중 파편화(64 KB 조각 2 , 048개)해 순차 업로드했다.


“조각 512 / 2 , 048 … 업로드 중”

4분이 지나자 재시도가 급증했다—

도시 중앙 서버가 비인가 패킷을 탐지해 회선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온은 즉시 전송 방식을 ‘폭포(flood)’에서 ‘세이프티멀(safetimal)’로 변경.

무작위 라우트, 랜덤 latency 삽입, 패킷 서명을 5초마다 바꾸어가며

전송 손실률 0.02 % 이하를 유지했다.


3. 지연 타이머 종료


04 : 26—수로 제어실에서 설정된 30분 지연 타이머가 만료되었다.

돔 내부 총괄 서버가 다시 가동되자,

평점 시스템은 오류 플래그를 띄운 채 복구 루틴을 돌렸지만

가장 먼저 감지한 건 “숨.pak 수신 중” 상태였다.


중앙 로그에 기록:


“비인증 자료—대상: AllLocalNode—취소 불가.”


지연 덕에 이미 85 % 이상의 조각이 업로드를 마쳤다.

가온은 업로드 대시보드가 **100 %**에 도달하자

외벽 콘센트를 분리하고 송신기를 가방에 밀어 넣었다.


4. 숨을 듣는 방송


05 : 01—도시 남부, 한 카페 외벽 스크린이 깜박이며

“외부 방송 수신”이라는 파란 알림을 띄웠다.

언제나 평점 지도를 보여주던 화면에,

에단의 얼굴이 흑백으로 서서히 나타났다.


“정의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첫 화면이 뜬 지 20초 만에,

북부 주거 블록 7, 동부 공업단지 3, 서부 교육구역 5,

총 54개 공공 스크린이 같은 스트림으로 바뀌었다.

루세온 시민들은 각자의 손목에서 계속 0.00이 깜빡이는 사이,

에단이 삭제됐던 과거 재판을,

그리고 β 시절 시스템의 ‘cut’ 문서를 처음으로 보았다.


5. 도시에 번지는 진실 패킷


시민 호스트 1,462대가 숨.pak을 자발적으로 시드(Seed)하기 시작했다.

평점과 무관해진 네트워크는

8 분 만에 확산율 73 %.


관리 AI: “비인가 정보 정지 불가. 노드 수 과다.”


집행부 잔존 고위 직원: “긴급 차단 명령?”


중앙 서버: “파일 내부: 정책 문서 → 신뢰도 절대값 충돌. 차단 거부.”


도시 시스템은 정의 프로토콜과 회사법 정보 자유 조항이

동일 우선순위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05 : 37, 광장 스피커가 자동 부팅 과정을 끝내며

에단의 마지막 음성을 도시 전역에 재생했다.


“숨을 멈추지 마라.”


그 순간,

하늘을 덮은 유리 돔 안에서

수만 명의 사람에게서 집단 호흡이 터져 나왔다.

센서는 아직도 그 숨을 숫자로 바꾸려 했지만—

정의 지수 알고리즘은

감정 지수 V = ∞(무한대)란 값을 해석하지 못한 채

무한 루프에 빠졌다.


그리고 해는 떠올랐다.

폭로의 새벽이,

숫자를 삼킨 숨소리 위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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