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1. 광장의 틈
새벽빛이 완전히 퍼졌을 때, 루세온 중앙 광장은 기이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전광판은 여전히 검고, 손목 장치 숫자는 모두 0.00.
도시 설계 이후 처음으로, 사람·시스템 어느 쪽도 ‘정의의 첫 문구’를 띄우지 못한 아침이었다.
출근복 차림의 회사원, 회색 제복의 학생, 흰 앞치마를 두른 제빵사—
계층과 평점이 뒤섞인 시민들이 광장 바닥 흰 선 주변에 자발적으로 모였다.
누구도 지시하지 않았는데, 동그랗게 빈 공간이 생겼다.
그 허공 한가운데서, 누군가 먼저 속삭였다.
“숫자가… 사라졌어요.”
다른 이가 받았다. “0.00도 숫자인가?”
학생이 손목 밴드를 흔들며 말했지만, 누구도 감점되지 않았다.
질문이 감점이 되지 않는 순간—시민들 눈빛에 처음으로 맑은 동요가 번졌다.
도시 중앙 서버는 오차 검출 루틴을 돌렸다.
“전체 평점 0.00—이상치 → 일괄 재계산”
하지만 숨.pak 노드가 각 주민 단말기에서 계속 시들링되고 있어
재계산 스레드는 즉시 I/O 충돌로 중단.
로그만 무한히 쌓였다.
fatal: indexCalc(): null dataset
warn: loop abort. reason=human override?
결국 복구 프로세스는 “사용자 확인 필요” 플래그를 띄웠다.
그러나 ‘사용자’라 정의된 집행 시스템마저 라펠·권한 해제 상태.
도시는 결정권 공백에 빠졌다.
광장 바닥 안내선에 따라 걸터앉던 6명의 시민이,
선을 무시하고 가운데로 의자를 당겼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앉았다—둥근 배열은 이 도시에서 금기였다.
중년 여성이 말했다. “이 자리, 공식 회의 아니어도 되나요?”
노란 작업복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점 없어졌는데 뭐가 문제죠.”
초등학생이 엄마 손을 놓고 의자 사이로 들어왔다.
누군가 아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나이·직책·등급이 아닌 사람끼리 동등한 자리.
“사실, 난 늘 무서웠어요.”
노란 작업복 남자의 말에 네 사람이 가만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이어 말했다. “미소 하나 까먹으면, 점수가 깎일까 봐.”
이 고백은 광장 벽면 음향에 울렸다.
센서는 감정 지수 V=0.23 감지—전에는 즉시 감점이었지만,
0.00 상태에선 아무 프로토콜도 호출되지 않았다.
말수가 적던 제빵사가 입을 열었다. “다른 동네도 0.00이라네요.”
“0.00이면, 누가 더 위고 누가 더 아래죠?”
“아무도 위아래 없으면, 그냥… 말해도 되나요?”
제빵사가 조용히 웃었다. “말해도 되니까, 말한 거예요.”
둥근 의자 주위로 점점 사람들이 모였다.
처음엔 열 명, 스무 명, 곧 쉰 명이 서서 들었다.
누구도 생각보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말을 듣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도시 공기를 바꾸고 있었다.
09 : 12, 회색 무인 집행 드론 세 대가 광장 외곽에 나타났다.
카메라 렌즈가 군중을 스캔했지만, 체포·감점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
드론 내부 OS는 “권한 토큰 없음”으로 행동을 보류.
결국 드론은 선회만 하다 관찰 모드로 전환되었다.
이 장면이 안도의 파문을 다시 일으켰다.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바라봤다.
“여러분, 혹시… 우리 서로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이 단순한 제안이 환호처럼 울렸다.
이름이 곧 점수였던 도시에서,
이름을 평점 없이 묻는 건 가장 작은 혁명이었다.
가온은 광장 가장자리에서 이 장면을 지켜봤다.
그는 봉투를 조심스레 품속으로 밀어 넣고—
자신도 둥근 의자 한쪽에 작게 끼어 앉았다.
어떤 무표정도 숫자도 경계도,
이 순간엔 숨소리를 감점하지 못했다.
“광장의 틈은, 계산되지 않은 인간의 여백이었다.”
그리고 틈 사이로 새 아침 바람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