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사회의 대륙 (거짓의 재판소) #19

4장-2. 심문의 낮

by 공인멘토

그리고 도시 밖에서 부는 바람이
심문청 환기구로 스며들어 작은 휘파람을 냈다.

정오를 막 지난 시간, 돔 천장 투명 패널이 정각 광을 도시 한복판으로 쏟아냈다.
루세온 시티의 중앙 회의홀—보통 ‘심문청’이라 불리던 그곳—이 급히 임시 공청회 장소로 지정됐다.



1. 무대 없는 회의


평소라면 집행관들이 단상을 차지했겠지만,
이번엔 긴 ‘U’ 자 테이블만 바닥에 놓여 있었다.
책상 앞엔 이름패도, 평점표도 없었다.
그 자리에 앉은 것은 6명의 시민 대표
제복을 벗은 이레, 그리고 관찰자로 배석한 가온이었다.

도시 역사상 처음으로,
집행관과 시민이 동일 판단권을 가진 자리였다.



2. 숨의 기록 실시간 시연


회의 시작과 동시에 벽 스크린이 켜졌다.
가온이 준비한 ‘숨.pak’ 핵심 클립—
에단의 재판 영상, β 시절의 ‘cut’ 문서,
그리고 방금 새벽 전역으로 퍼진 시민 반응 로그가
순차 슬라이드 형식으로 재생됐다.

“정의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에단, D-10Y-031

영상이 끝나자 3초 정적.
시민 대표 중 회색 정장을 입은 노(老) 교육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수년 동안 진실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점수가 책, 점수가 교사가 되어버렸습니다.”



3. 패널 감정 지수 급등


테이블 위엔 구형 ‘감정 지수 패널’이 놓여 있었는데,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바늘이 V=0.45를 찍었다—
평상시 기준치의 네 배.
예전이라면 즉시 감점·경보였지만, 0.00 상태인 지금
패널은 숫자만 흔들고 있었다.

집행부 잔존 직원이 긴급 채널로 이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감정 지수 위험 레벨! 조치 필요!”

이레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어 시민 대표들을 바라봤다.



4. 이레의 내부 고발


테이블 중앙 브리핑 화면에
C.O.C. 원본 서명이 띄워졌다.
이레 스스로 “작성자: I.R.L.”이라 표시된 페이지를 열어
모두에게 선언했다.

“이 문서는… 제 과거 작품입니다.
질서를 위해, 감정을 숫자로 ‘잘라’ 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 믿음이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숨을 말살한 사실을 인정합니다.”

말이 끝나자 패널의 바늘이 V=0.57까지 튀었다.
그러나 회의장은 조용했다.
고함도, 야유도 없었다.
대신, 스피커에 잡히지 않는 억제된 숨이
공동으로 ‘내쉬어지고’ 있었다.



5. 심문 시스템 일시 정지 결의안


시민 대표(노 교육자) :
“집행관 이레, 그리고 시민 여러분.
우리는 이 자리에서
‘심문 시스템 일시 정지’를 결의하려 합니다.
평점 복구 이전에, 질문과 경청을 우선시하겠습니다.”

세 명의 시민 대표가 찬성 손을 들었다.
이레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패널 V=0.63.
남은 두 대표도 손을 들어 표결은 만장일치가 되었다.

결의-01

심문 시스템 전면 일시 중지

평점 재가동 전, ‘듣기 포럼’ 30일 시험 운영

집행관 권한 일시 정지, 시민 위원회 및 외부 감사단 동시 구성

홀 스피커가 자동으로 명령을 재확인했다.
“결의안 확인—심문 프로토콜 중지, 평점 엔진 슬립모드.”

광장과 전역 전광판엔 빠르게 메타데이터가 띄워졌다.

“심문 시스템 30일 정지(시민 청취 포럼 기간)”

패널 바늘이 V=0.70까지 올랐다가,
이상하게도 곧 0.40으로 가라앉았다.
누군가 훌쩍였고, 누군가는 미소 지었다.
숫자가 아닌, 사람들의 호흡이 공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끝맺음


가온은 테이블 끝에서
어제까지 ‘집행관’이라 불리던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레는 고개를 돌려 짧게, 그러나 확실히 응답했다.

“숨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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